구자철 은퇴한국프로축구연맹

[GOAL 종로] 축구화 벗은 ‘레전드’ 구자철 “기분 홀가분해…제주서 은퇴하는 꿈 이뤘다”

[골닷컴, 종로] 이정빈 기자 = 한국 축구에 수많은 추억을 선사한 구자철이 유니폼을 벗었다. 17년 동안 푸른 잔디에서 존재감을 내뿜었던 그는 제주SK FC 유스 어드바이저로 ‘제2의 축구 인생’을 시작한다.

구자철은 14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축구회관에서 현역 은퇴 기자회견 및 유스 어드바이저 위촉식을 진행했다. 구자철은 이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현역 선수 생활을 마치겠다고 알렸다.

구자철은 한국 축구에 빼놓을 수 없는 전설이다. 2007년 제주유나이티드(現 제주SK FC) 유니폼을 입고 K리그 무대를 밟은 그는 빼어난 재능을 선보이며 2011년 독일 분데스리가 구단인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했다. 이후 아우크스부르크로 자리를 옮긴 그는 이곳에서 155경기 동안 23골과 13도움을 올리며 구단 레전드로 자리매김했다.

구자철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했다.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결정적인 쐐기포를 터트린 장면은 여전히 많은 축구 팬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이밖에 3번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2번의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나서는 등 친구인 기성용(FC서울), 이청용(울산 HD)과 한국 축구를 지탱했다.

은퇴를 알린 구자철은 “기분이 홀가분하다. 은퇴는 수년 전부터 준비했다. 한국 축구를 위해 뛰는 거 외에 받았던 사랑과 누볐던 경험을 지나치고, 간과하지 말자는 생각이 확고했다”라며 “독일에서 유소년, 경영 쪽에 심혈을 기울였다.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뛸 당시에도 뮌헨에 왔다 갔다 하면서 프런트 일에 대해 배웠다”라고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였는지 묻자 “사실 축구화를 신고 있을 때는 아니다. 동메달을 걸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시상대에 올라 대한민국 국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메달을 걸었을 때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라고 회상했다.

2011년 ‘삿포로 참사’는 구자철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일본에 0-3으로 무너진 구자철은 이를 되새기며 다시는 한일전에 패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유럽 진출 후 첫 번째 국가대표 경기였는데, 오랜 비행시간을 거치느라 몸에 큰 부담이 갔다. 한일전에서 패했을 때 정말 부끄러웠다”라며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았고, 다음 한일전도 지면 다시는 축구 안 하겠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다. 0-3 패배 부끄러움을 반성하고 그 기억을 통해 런던 올림픽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라고 돌아봤다.

국가대표 득점 중 기억에 남는 세 골을 뽑아달라는 질문에는 “첫 번째는 2009년 이집트에서 열린 U-20 월드컵 미국전 득점이다. 셀레브레이션하면서 전율을 느꼈는데, 이 전율을 위해 그동안 고통을 이겨냈다는 느낌이 아직도 팔에 남아 있는 것 같다. 두 번째는 2011년 아시안컵 호주전 득점이다. 중요한 경기에 득점이 나온 짜릿함이 아직도 발끝에 남아 있다”라며 “마지막으로는 자세한 날짜는 기억이 안 나지만, 서울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전 (홍)철이가 올린 크로스를 (김)신욱이가 떨궈준 후 왼발로 마무리한 기억이 난다. 영상을 돌아보면서 수많은 득점이 떠오르겠지만, 이 세 골이 기억난다”라고 웃었다.

곧바로 잠시 기억을 더듬더니 구자철은 “아, 한일전 골까지 3+1로 해달라. 저는 제가 뛰었던 중요한 경기에서 매번 득점을 기록했다. 올림픽 당시 첫 경기에서 골대를 맞혔고, 이후에도 계속 골대를 맞혔음에도 득점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준결승 브라질전에서도 득점이 안 나왔지만, 한일전에서 아픔을 털어냈다”라고 덧붙였다.

아쉬운 순간 역시 있었다. 구자철은 2014 브라질 월드컵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말하고 싶은 아픔, 속죄, 아쉬움이 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마음에 남는다. 아쉬운 걸 떠나서 너무 어렸다”라며 “은퇴한다고 했을 때 월드컵 최연소 주장이라는 타이틀이 따라왔다. 개인적으로 그게 자랑스럽지 않다”라고 밝혔다.

이어 “돌이켜보면 프로축구 선수, 국가대표 선수, 월드컵에 나가는 선수는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 당시에는 그런 걸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성장했음에도 저의 부족함 때문에 월드컵 결과가 아쉽게 됐다. 월드컵 결과에 따라 생계를 유지하고, 사회의 덕을 볼 수 있었던 분들에게 너무 책임감이 없었고 죄송하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구자철은 경기장 밖에서도 선수들의 영향력을 강조했다. 구자철은 “제주 후배들에게 이야기하는데, 프로 선수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동경 그리고 배울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제주 팀이 제주도 전반에 걸쳐 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한다. 월드컵에 나가는 선수들도 그렇다. 비단 어린아이들만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친구이자 대표팀에서 동고동락한 기성용과 이청용을 향한 고마운 마음도 드러냈다. 구자철은 “성용이, 청용이는 저에게 있어 큰 힘이 되는 친구다. 단톡방이 있는데 아주 사소한 것도 이야기한다. 은퇴한다고 하니까 아쉬워하면서 고생했다고 전했다. 친구들에게 고맙다”라며 “두 친구를 같은 선수로서 존경했고, 장점을 보면서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제가 흔들려도 그 친구들 덕분에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저 스스로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그 친구들이 더 크다. 선수 생할 내내 고마웠고, 영광이었다”라고 진실한 마음을 건넸다.

뒤이어 “성용이는 유럽 돌아다니면서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고, 행정도 준비하고 있다. 저희는 공통으로 행정과 지도자 모두 배우겠다고 말한다. 단톡방 보면 성용이가 외국 갔다 오면 (정보를) 공유해 해준다”라며 “저희가 뭘 하겠다고 말씀드리기는 힘들다. 저는 지도자 자격증 단계가 남아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경험을 제주에 공유하면서 천천히 도움이 되고 싶다. 기성용과 이청용이라는 한국 축구를 빛낼 친구들이 있기에 열심히 하겠다”라고 했다.

은퇴를 결정한 이유로는 “근육과 무릎이 버텨주지를 못한다. 예전에는 데미지를 받아도 회복하면 어느 정도 됐다. 적당한 통증도 안고 갔다. 그런데 한국 복귀 후에는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기간이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미련 없이 축구화를 벗어야 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다. 제주에서 은퇴하는 게 꿈이었고, 그 꿈을 이루게 해줘 감사하다”라고 답했다.

가족을 향한 애틋한 마음도 보였다. 구자철은 “우선 아버지에게 감사하다. 또한 아내에게도 정말 고맙다. 첫째 낳고 대표팀 경기하러 가면 1달에 10일씩 자리를 비웠다. 외국에서 아이 키우면서도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줘서 고맙고, 옆에서 도와준 처제에게도 감사하다. 가족이 생기면 책임감이 늘어난다. 저 자신에게 매번 이야기하지만, 가족에게 정말 고맙다.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건 가족의 힘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유소년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는 “목표를 정해야 한다. 중학교 1학년 때 목표가 U-23 대표팀 대회 나가는 것이었다.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그 생각으로 몇 년을 뛰었다”라며 “정말 가지고 싶은 목표를 정하는 게 첫 번째다. 동기부여가 행동의 차이를 만든다. 모든 유소년 선수를 책임질 수 없겠다만, 제가 어떻게 해서든 제주 유소년 선수들은 좋은 선수가 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라고 각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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