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코스타부터 자하까지, ‘국대 유니폼’ 바꿔 입은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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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벌의 유니폼을 수집한 알프레드 디 스테파노부터 브라질에 등을 돌린 야수 디에고 코스타까지, 충성할 대상을 바꾼 선수들을 조명해본다.

[골닷컴] 윤진만 기자= 프리미어리그의 떠오르는 미드필더 데클란 라이스(19, 웨스트햄유나이티드)는 이미 아일랜드 대표팀 일원으로 3경기를 소화했다. 하지만 (마틴 오닐 아일랜드 감독에 의하면)런던 태생 라이스는 잉글랜드 대표팀에 합류하기 위해 아일랜드 대표팀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 

아일랜드 팬들은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느냐’고 분개하겠지만, 축구계에서 이런 경우는 더러 있다. 세 벌의 유니폼을 수집한 알프레드 디 스테파노부터 브라질에 등을 돌린 야수 디에고 코스타까지, 스포츠전문방송 ‘스카이스포츠’가 10일 충성할 대상을 바꾼 주요 선수를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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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프레드 자하 (잉글랜드 2경기 → 코트디부아르 8경기 2골)
소속팀 크리스털팰리스의 가장 노릇을 톡톡히 하는 자하는 2012년 11월 스웨덴전을 통해 잉글랜드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하지만 주요 국제대회에서 부름을 받지 못하자, 자신이 태어난 국가이자 ‘드록신’의 나라 코트디부아르로 날아갔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잉글랜드 감독의 간청에도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나세르 샤들리 (모로코 1경기 → 벨기에 51경기 6골)
2010년 11월 에릭 게레츠 감독의 부름을 받고 모로코 유니폼을 입은 샤들리는 불과 84일 뒤에 두 번째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이중국적자인 샤들리가 태어난 곳, 벨기에를 택했다. 쟁쟁한 선수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 2018러시아월드컵 본선 무대를 누볐다. 16강 일본전 결승골의 주인공이 바로 샤들리다.

디에고 코스타 (브라질 2경기 → 스페인 14경기 10골)
“수백만 명의 꿈을 포기했다. 바로 브라질을 대표해 뛰는 것이다.”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전 브라질 감독은 이렇게 말했지만, 코스타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무적함대에 승선한 선택을 그다지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힘겨운 적응 시기를 겪은 뒤 러시아월드컵에서 3골을 넣는 활약을 펼쳤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아르헨티나 6경기 6골 → 콜롬비아 4경기 → 스페인 31경기 23골)
1950~60년대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던 디 스테파노는 현 FIFA 규정이 만들어지기 전 두 차례나 ‘국가대표팀 이적’을 감행했다. 리버플라테에서 뛸 때는 아르헨티나, 밀로나리오스에서 유니폼을 입은 시절에는 콜롬비아, 그리고 레알마드리드 소속일 때는 스페인을 위해 뛰었다.

저메인 존스 (독일 3경기 → 미국 69경기 4골)
존스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일인 모친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부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블랙번 임대(2011년) 시절을 제외하고 장장 15년이나 독일 무대를 누볐기 때문에, 전차군단에 승선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요아힘 뢰브 감독의 플랜에 자신이 들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2010년부터 미국 대표로 뛰기 시작했고, 선수 말년도 미국 무대에서 보냈다.

요십 베버 (크로아티아 3경기 1골 → 벨기에 8경기 6골)
유고슬라비아의 슬라본스키 브로드에서 태어났다. 크로아티아 대표로 1992년 호주와 A매치 친선전에서 득점하며 주가를 올렸으나, FIFA에 정식 가입하지 않은 크로아티아를 뒤로하고 조부의 조국인 벨기에 문을 열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 참가했고, 9-0 대승으로 끝난 잠비아전에서 개인 득점 6골 중 5골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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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얀 아데미 (크로아티아 3경기 → 마케도니아 6경기 2골)
2013년 2월 대한민국 대표팀과 친선전을 통해 크로아티아 국가대표로 데뷔했다. 하지만 2014년 월드컵을 준비하던 니코 코바치 크로아티아 감독으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마케도니아-알바니아 혈통인 아데미는 곧바로 마케도니아 대표팀을 위해 뛸 의향을 드러냈다. 2015년 11월, 소속팀 디나모자그레브 경기 후 실시한 도핑 테스트에서 약물 양성 반응을 보이면서 4년 출전 정지 징계를 받은 상태다.

하인츠 바르메틀러 (스위스 1경기 → 도미니카공화국 11경기)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스위스 21세 대표팀 핵심 수비수로 활동했다. 하지만 노르웨이전(0-1)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90분 경기를 치른 뒤, 재부름을 받는 데 실패했다. 급기야 2012년 어머니의 나라인 도미니카공화국 엠블럼을 가슴에 달기로 했다. 훗날 주장으로도 임명됐다. 모친이 자랑스러워 할만한 아들이다.

사진=왜?뭐? 뭐가 어때서?.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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