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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 이동국 무릎에 감긴 테이핑과 이란전 승리

[골닷컴] 서호정 기자 = 2000년 10월 23일. 레바논의 트리폴리 스타디움에서는 한국과 이란의 AFC 아시안컵 8강전이 열렸다. 양국의 15번째 격돌이었다. 

당시 위기와 치욕을 딛기 위한 승부였다는 점에서 현재 상황과 닮았다. 4년 전 UAE에서 열린 아시안컵 8강전에서 한국은 이란에 그 유명한 2-6 패배를 당했다. 레바논 아시안컵은 그 뒤 양국이 맞붙은 첫 경기였다. 치욕을 씻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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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을 앞두고 열린 시드니 올림픽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승승장구하던 허정무호는 좌초 위기에 몰렸다. 명예회복을 노린 아시안컵에서도 조별리그 3경기에서 중국과 비기고, 쿠웨이트에 패하며 와일드카드로 간신히 8강에 오른 터였다. 반면 이란은 다에이, 바게리, 마다비키아 삼총사를 앞세워 A조 1위로 여유 있게 진출했다.

후반 26분 카림 바게리에게 선제골을 내 준 한국은 후반 시계가 멈출 때까지 끌려가고 있었다. 기적은 추가 시간에 벌어졌다. 윤정환의 코너킥을 이동국이 슛으로 연결한 것을 이란 골키퍼 브룬만드가 막자 김상식이 문전 혼전 상황에서 동점골을 만들었다. 

연장전에 돌입했고, 10분만에 이동국의 골든골이 터졌다. 오른쪽 측면에서 올라온 노정윤의 크로스를 쇄도하며 차 넣어 경기를 끝냈다. 한국이 자존심을 지키며 위기에서 탈출하는 순간이었다. 

환호하며 달리는 이동국의 오른쪽 무릎에는 덕지덕지 붙은 테이핑이 있었다. 당시 최고의 유망주였던 만 21세의 이동국은 혹사의 대상이었다. 1998년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2년 사이 청소년 대표팀, 올림픽 대표팀, 성인 대표팀을 오가며 49경기를 뛰었다. 소속팀 경기 외의 각급 대표팀 경기만 따진 숫자다. 

1999년과 2000년 사이에는 사실상 포항 스틸러스가 아닌 대표팀 소속의 선수였다. 1999년과 2000년에 포항을 위해선 27경기를 뛰는 데 그친 이동국이 같은 시기 각급 대표팀에서는 31경기를 뛰었다. 대표팀에 주로 있다가 포항으로 역차출 되는 기형적 구조였다.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한국 축구의 행정이란 게 오직 대표팀을 위해 돌아갔다.

올림픽 전에 이미 부상을 입고 치료와 재활을 반복하고 있던 이동국은 무릎을 질질 끌면서 경기에 나서고 있었다. 이란전에도 후반 30분에 강철과 교체돼 들어갔지만 중요한 2골에 모두 관여했다. 인도네시아전(조별리그) 해트트릭, 사우디 아라비아전(4강) 추격골, 중국전(3-4위 결정전) 결승골까지 도합 6골로 대회 득점왕에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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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동국의 투혼은 대가가 컸다. 대회가 끝나고 그토록 원했던 유럽 진출(독일 베르더 브레멘)에 성공했지만 그 무릎 부상의 여파로 제대로 된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부진은 길어져 2002 한일월드컵 최종 엔트리에도 탈락했다. 20대의 입구에서 대표팀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화려하게 불태운 그가 부활한 것은 4년 뒤였다.

지금 현재 소집된 신태용호에는 만 39세의 이동국이 있다. 이란을 상대로 4연패를 기록 중인, 또 월드컵 본선 탈락의 위기에 몰린 대표팀을 위해 한국 축구 현역 최고령 선수인 그가 왔다. 이동국의 곁에는 17년 전 그처럼 무릎에 테이핑을 동여 맨 유망주 황희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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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란전은 총력을 다해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경기다. 베테랑 이동국부터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막내 황희찬, 김민재까지 모두 결연한 각오다. 신태용 감독과 코치진이 치밀하게 준비한 전략과 6만 관중을 예고한 경기장의 열기까지 더해진다면 홈에서 치욕을 씻을 수 있다. 

기나긴 곡절의 시간을 거쳐 다시 한번 월드컵 최종예선으로 돌아온 이동국이 동료들과 함께 이란을 무너트릴 수 있을까? 연륜이 다져진 그가 다시 한번 포효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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