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한만성 기자 =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감독은 모로코전을 하루 앞두고 "수비만 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란은 정말 그렇게 했다. 그리고 이겼다.
이란은 16일(한국시각) 모로코를 상대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B조 1차전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했다. 양 팀이 0-0으로 팽팽히 맞선 이날 경기가 이란 쪽으로 기운 건 경기 종료 직전인 94분. 이란이 공격 진영 왼쪽 측면에서 올린 프리킥을 아지즈 부하두즈가 자책골로 연결하며 극적으로 승부가 갈렸다. 그러면서 이란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미국전 이후 20년 만에 승리를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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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놀라운 사실은 막바지에 승부가 이란 쪽으로 기운 후반전 기록이다. 이란이 후반 45분간 기록한 슈팅수는 0회. 즉, 모로코 골키퍼 무니르 모하메디는 후반 내내 단 한 차례도 수비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란은 끈질긴 수비를 펼친 끝에 결국 결승골을 만들어냈다. 월드컵 역사상 한 하프(전반, 혹은 후반)에 슈팅을 한 차례도 기록하지 못한 팀이 해당 시간에 골을 넣고 이긴 건 1966년 이후 52년 만에 이란이 처음이다. 양 팀은 이날 전반에는 슈팅수 9대9로 공방전을 펼쳤다. 그러나 이란이 공격을 포기한 채 수비에만 집중하자 모로코도 후반에는 단 네 차례 더 슈팅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이란은 이날 전후반을 통틀어 패스 성공률이 단 58%에 그쳤을 정도로 사실상 공격 전개를 포기한 채 끈즐긴 수비를 펼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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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이란은 모로코를 상대로 태클 횟수는 30대18, 가로채기 횟수는 13대4로 크게 앞섰다. 모로코의 이날 공격 방향 비율은 왼쪽 측면이 48%로 중앙(23%), 오른쪽 측면(29%)보다 월등히 높았는데, 정작 제 몫을 해줘야 할 왼쪽 측면 미드필더 아민 하리트는 볼 소유권을 잃은 횟수(possession loss)가 7회, 왼쪽 측면 수비수 아치라프 하키미는 6회로 졸전을 면치 못했다.
케이로스 감독은 경기 전날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대회에서도 우리가 90분간 수비만 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겠다. 그렇게 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가장 중요한 건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나서는 것이다. 나는 우리 선수들이 준비를 마쳤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 2회 연속 진출한 이란이 비기기만 해도 만족한다는 것처럼 들리는 말이다.
그러나 케이로스 감독은 승부사 기질이 돋보이는 지도자다. 그를 다섯 번이나 만나고도 매번 무득점에 그치며 1무 4패로 부진한 한국이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있다. 케이로스 감독은 수비만 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이에 앞서 다른 질문에 답할 때는 "무조건 이기겠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약속을 지켰다. 그러면서 이란은 20년 만에, 아시아는 8년 만에 월드컵 승리를 따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