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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민.크리그림] 20분도 아까워 2분 만에 싹 다 뺐다

[골닷컴] 얼마 전 아파트에 쓰레기분리수거 협조요청문이 붙었다. 일요일이 되면 박스와 페트병에서 뭔가를 열심히 떼는 이웃을 자주 본다. 사실 대충 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데 다들 귀찮음을 감수한다. 공동체를 위한 작은 매너, 환경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어떤 아저씨와 나란히 서서 종이박스에서 택배 딱지를 뗐다.

그렇게 남편으로서 쓸모를 다한 뒤 수원종합운동장으로 갔다. 하늘은 푸르고 햇살도 눈 부신 일요일 오후다. 수원FC 홈 팬들의 표정은 화창한 날씨만큼 밝았다. 암울한 순위보다 기분 좋은 햇살 아래서 프로축구를 즐긴다는 사실 자체가 더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팀 성적에 지나치게 목숨을 거는 유럽보다 K리그의 이런 캐쥬얼함이 더 마음에 든다. 기성용이란 스타는 상대팀 관중에게도 좋은 볼거리다. 김동진 주심이 킥오프 휘슬을 울렸다. 좋다. 가자. 멋진 90분 갈끄니까.

동작 그만. 전광판 시계가 2분을 가리켰다. 홈팀 수원FC의 선수 두 명이 하프라인 쪽으로 다가왔다. 선수 교체. 김도균 감독은 선발 출전했던 U22 선수인 이영준과 조상준을 2분 만에 모두 뺐다. 나오는 친구들은 머쓱한 미소를 보였다. 덕분에 수원FC는 5인 교체 카드를 전부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2분도 되기 전에 뺄 생각이라면 기자석 옆자리에 앉은 꼬마를 넣어도 됐겠다. 일요일 K리그를 보러 올 만큼 축구를 좋아하는 꼬마 팬에게는 꿈같은 경험 아닌가. 설마 오스마르가 꼬마에게 태클을 걸진 않겠지. 경기 시작 2분 만에 인플레이가 아닌 상황으로 망연자실해질 수도 있구나. 처음 알았다.

올 시즌부터 K리그는 U22 의무 출전 규정을 신설했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U22 규정을 숙지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자. 기본 취지는 유소년 강화다. 어린 선수를 더 잘 가르치고 출전 기회를 제공해 긍정적 구단 살림을 지향한다. 겸사겸사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5인 교체를 임시 허용했다. 매년 K리그 구단들은 예산이 부족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래서 어린 선수를 잘 키워 비용 절감은 물론 향후 ‘대박’ 가능성을 키우자는 얘기다. 이사회 및 정기총회에서 결정된 사안이므로 리그 구성원 모두의 합의라고 해야 한다.

K리그 일선 현장에서 그런 기본 취지는 개막과 동시에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리딩클럽이라는 전북부터 개막전에서 골키퍼 교체 편법을 시전했다. 스쿼드가 두텁기로 소문난 울산도 ‘꼼수’를 마다하지 않는다. 12라운드까지 치러진 총 72경기 중 48경기(66%)에서 전반전 교체가 기록되었다. 하프타임 교체를 이르다고 여겼던 세상이 까마득하다. 이제 전반 20분 교체에도 심드렁하더니 급기야 경기 시작 2분 2인 동시 교체까지 등장했다. 경기 후, 김도균 감독은 “U22 선수가 다들 부상이다”라고 설명했다. 올 시즌 김도균 감독은 12경기 중 7경기에서 전반전 2인 동시 교체 작전을 썼다. 궁여지책으로 이해하기에 수원FC의 교체 운용은 너무 습관적이다.

수원FC한국프로축구연맹

오래 전 한 재벌이 출퇴근길 20인승 승합차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출퇴근길이 막힌다며 혼자 20인승 승합차로 버스전용차선을 씽씽 달리셨다가 여론 재판을 받았다. ‘합법이잖아?’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20인승 승합차 1인 탑승을 정서법 위반으로 받아들였다. 고관대작 중에는 본인이나 가족이 연루된 논란을 ‘불법은 없었다’라는 식으로 해명했다가 화를 키운 사례가 적지 않다. 기술적으로 합법이어도 사회 통념상 불법인 지점은 언제나 존재한다. 김도균 감독의 올 시즌 U22 교체 습관은 규정의 취지와 K리그의 건강한 미래를 위하는 바람에서는 분명한 불법이자 위법이다.

구단마다 선수단 사정이 다르다. 실제로 U22 선수 확보가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U23 관련 정책의 흐름은 이미 오래전부터 출발했다. 2020년부터 팀을 맡은 김도균 감독은 아니더라도 구단 전체적으로 대비할 시간은 충분했다. 수원블루윙즈, 포항, 대구는 올 시즌 나이에 대한 편견이 부질없었음을 직접 입증하고 있다. 강원과 광주도 비교적 정공법으로 시즌을 소화하는 중이다. 다들 어려운 처지인데도 수원FC처럼 U22 규정을 대놓고 우롱하진 않는다. 규정의 짜임새는 완벽하지 않다. 복잡하고 인위적이다. 그래도 경기 시작 2분 만에 2명을 몽땅 빼버릴 만큼 내용이 엉망진창은 아니다.

모든 스포츠에는 규정집에 실리지 않는 상식이 존재한다. 배구에서는 상대를 향해 셀러브레이션을 펼치지 않는다. 미국 야구에서는 타자가 배트를 던지지 않는다. 크리켓에서는 판정 항의시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쓰러진 상대를 일으켜준다든가 먼저 응급처치를 한다. 종목마다 추구하는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매너다. 킥오프 2분 만에 선발 출전한 두 명을 빼도 규정은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같은 경기를 똑같이 준비한 상대팀에 대한 매너도 아니고, 무엇보다 소중한 일요일 시간을 K리그 관전에 할애하는 팬들 앞에서는 더욱 보여선 안 될 모습이다. 심지어 그들 대부분 매년 구단 운영비를 대는 납세자 아닌가.

글, 그림 = 홍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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