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투트가르트는 바이에른 뮌헨 다음으로 남독 지역을 대표하는 구단이다. 이로 인해 바이에른과 슈투트가르트의 맞대결은 '남독 더비(Suedderby)'로 불리기도 한다.
이는 통산 성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슈투트가르트는 분데스리가 통산 1,798경기로 역대 최다 경기 4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740승에 승점 2,654점으로 바이에른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베르더 브레멘, 함부르크에 이어 5번째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다만 슈투트가르트의 단점은 확실한 황금기를 뽑기 힘들다는 데에 있다. 꾸준하게 호성적을 올린 편에 속하지만 분데스리가 우승은 1983/84 시즌과 1991/92 시즌, 그리고 2006/07 시즌 3회가 전부이다. 게다가 2시즌 연속 4위 이내를 기록했던 것도 단 2회(요아힘 뢰브 감독 시절이었던 1996/97, 1997/98 시즌과 펠릭스 마가트 감독 시절이었던 2002/03, 2003/04 시즌) 밖에 없다.
그래도 슈투트가르트는 뛰어난 유스 시스템을 바탕으로 많은 스타 플레이어들을 배출해냈다. 이것이 슈투트가르트가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1980년대 초중반은 푀르스터 형제와 구이도 부흐발트를 중심으로 한 단단한 수비에 한지 뮐러와 카를 알괴베어를 앞세워 호성적을 올렸고, 1990년 중후반은 에우베르와 프레디 보비치, 크라시미르 발라코프의 매직 트라이앵글을 앞세워 화끈한 공격 축구를 구사했다. 2000년대 초반엔 케빈 쿠라니와 알렉산드르 흘렙, 안드레아스 힌켈 영건 삼총사를 중심으로 바이에른 임대생인 필립 람과 같은 신예 선수들이 맹활약을 펼치면서 '무서운 영건들(Junge Wilde)'로 분데스리가 무대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고, 2006/07 시즌은 마리오 고메스를 중심으로 사미 케디라와 세르다 타스치, 로베르토 힐베르토 같은 어린 선수들로 우승을 차지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GK 티모 힐데브란트
2000년대 초반 슈투트가르트 영건 군단 중 맏형에 해당하는 수문장(아버지가 솔도, 어머니가 발라코프). 슈투트가르트 유스 출신으로 1999년 프로 데뷔해 2007년까지 8시즌 동안 활약했다. 특히 2002/03 시즌 바이에른 뮌헨과의 33라운드 후반 30분 실점을 마지막으로 2003/04 시즌 9라운드 베르더 브레멘과의 경기에서 후반 25분경 실점을 허용하기 전까지 884분 무실점을 이어오면서 분데스리가 역대 최장 시간 무실점 기록을 수립했다. 2006/07 시즌엔 고메스와 사미 케디라, 세르다 타스치 같은 어린 선수들을 이끌고 슈투트가르트 우승을 선사한 뒤 새로운 도전을 위해 발렌시아로 떠났다. 이후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저니맨 생활을 이어오다가 은퇴했으나 슈투트가르트 시절의 그는 꽃미남 골키퍼로 인기를 구가하던 선수였다.
CB 카를하인츠 푀르스터
슈투트가르트 구단 역대 최고의 수비수. 유로 1980 우승 당시 독일 대표팀 핵심 수비수로 당대 세계에서 가장 대인 수비 능력이 뛰어난 수비수로 명성을 떨쳤다. 슈투트가르트 유스 출신으로 1977년에 데뷔해 1986년까지 9시즌 동안 핵심 수비수로 활약했다. 특히 1983/84 시즌엔 구단 최초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견인해 슈투트가르트 선수로는 처음으로 독일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는 영예를 얻었다. 이후 그는 프랑스 명문 올랭피크 마르세유로 이적해 선수 경력의 마지막을 보냈다. 슈투트가르트 소속으로 공식 대회 364경기에 출전했다(구단 역대 8위).
CB 구이도 부흐발트
카를하인츠 푀르스터와 함께 슈투트가르트 역대 최고의 수비수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선수. 특히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독일이 우승했을 당시 결승전에서 당대 최고의 선수였던 디에고 마라도나를 꽁꽁 묶어 마라도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의미에서 '디에고'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 슈투트가르터 키커스에서 프로 데뷔해 1983년 슈투트가르트에 입단했고, 이후 11시즌 동안 활약하면서 슈투트가르트 선수로는 귄터 셰퍼와 함께 분데스리가 우승 2회(1983/84, 1991/92)를 달성한 2명의 선수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후 우라와 레즈와 칼루어에서 선수 경력의 마지막을 보냈다. 슈투트가르트 소속으로 분데스리가 325경기에 출전하면서 구단 역대 최다 출전 3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CB 베른트 푀르스터
카를하인츠의 친형. 동생의 위대한 업적에 다소 가려진 감이 있지만 그 역시 당대를 대표하는 수비수였다. 발드호프 만하임에서 1974년 프로 데뷔해 바이에른과 자르브뤼켄을 거쳐 1978년 여름, 동생이 뛰고 있는 슈투트가르트에 입단했다. 이후 8시즌 동안 슈투트가르트에서 동생과 함께 찰떡 호흡을 과시하면서 짠물 수비를 자랑했다(이는 독일 대표팀까지 이어졌다). 푀르스터 형제와 부흐발트가 지키고 있는 슈투트가르트 수비 라인은 수비력에 있어서 만큼은 분데스리가 역사를 통틀어 보더라도 최상위권에 해당할 정도였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면 동생이 슈투트가르트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해 마르세유에서 은퇴했다면 형은 다른 구단들을 거쳐 슈투트가르트에서 은퇴했다는 데에 있다.
Kicker
DM 츠보니미르 솔도
크로아티아를 대표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9년 간의 크로아티아 리그 경력을 뒤로 하고 1996년, 만 26세에 슈투트가르트에 입단하면서 빅리그 진출에 성공한 그는 이후 정확하게 10시즌 동안 뛰다가 은퇴했다. 수비 특화 미드필더로 궂은 일을 도맡아하면서 슈투트가르트 영건들의 성장에 있어 큰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외국인 선수임에도 슈투트가르트 주장으로 무려 200경기에 가까운 출전 수를 기록하면서 코칭 스태프들과 동료들은 물론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슈투트가르트 소속으로 399경기에 출전하면서 구단 역대 최다 출전 4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CM 카를 알괴베어
슈투트가르트 역대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칭송받는 선수. 2부 리가 구단 슈투트가르터 키커스에서 프로 데뷔해 1980년 여름, 슈투트가르트에 입단한 이후 11년 동안 활약하다 은퇴했다. 데뷔 시즌부터 은퇴 시점까지 단 한 번도 주전 자리를 내준 적이 없을 정도로 꾸준함이라는 측면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특히 '쾅괴베어(독일어로 폭발음에 해당하는 Knall과 알괴베어의 이름을 합성한 Knallgoewer)'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강력한 슈팅을 바탕으로 많은 골을 양산해냈다. 이미 슈투트가르터 키커스에서 3시즌 연속 두 자릿 수 골(특히 마지막 2시즌은 23골과 25골을 연달아 넣으며 20골 이상을 달성했다)을 넣으며 놀라운 득점력을 자랑하던 그는 슈투트가르트에서도 11시즌 중 7시즌에서 두 자릿 수 골을 기록했다. 특히 1982/83 시즌 21골에 이어 1984/85 시즌엔 19골을 기록했고, 또 다시 1985/86 시즌엔 21골을 넣으며 미드필더라고는 믿기기 어려운 득점 행보를 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슈투트가르트 선수들 중 구단 역대 분데스리가 최다 출전(338경기)와 최다 골(129골)을 동시에 달성하고 있다.
CM 한지 뮐러
슈투트가르트가 자랑하는 중앙 미드필더. 슈투트가르트 유스 출신으로 1975년에 프로 데뷔해 7시즌을 뛰면서 분데스리가 최정상급 중앙 미드필더로 군림했다. 1976/77 시즌 8골을 넣은 그는 1977/78 시즌부터 1980/81 시즌까지 4시즌 연속 두 자릿 수 골(1977/78 14골, 1978/79 13골, 1979/80 14골, 1980/81 11골)을 넣으면서 '미들라이커(미드필더+스트라이커의 합성어로 골 넣는 공격수를 지칭하는 표현)로 명성을 떨쳤다. 유로 1980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독일의 우승을 견인했다. 하지만 1981/82 시즌 잦은 부상으로 16경기 출전에 그쳤고, 인테르 이적 이후 하향세를 겪으면서 칼치오 코모를 거쳐 오스트리아 구단 스바로프스키 티롤(현재는 바커 인스브루크로 구단 명칭이 바뀌었다)에서 선수 경력의 마지막을 보냈다. 슈투트가르트 소속으로 223경기에 출전해 81골을 넣으며 공격수 못지 않은 출전 시간 대비 득점률을 자랑하고 있다.
AM 크라시미르 발라코프
흐리스토프 스토이치코프와 함께 불가리아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선수이자 슈투트가르트 역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에타르 벨리코 타르노보와 스포르팅 리스본을 거쳐 1995년 여름, 만 29세의 나이로 슈투트가르트에 입단했다. 그는 슈투트가르트 데뷔 시즌부터 7골 9도움을 올리면서 지오반니 에우베스, 프레디 보비치 투톱과 함께 '마법의 삼각편대(Magisches Dreieck)'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이어서 1996/97 시즌엔 포칼 우승에 크게 기여했고, 2시즌 연속 두 자릿 수 골과 도움(1996/97 13골 10도움, 1997/98 11골 14도움)을 올리며 분데스리가 최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로 명성을 떨치던 발라코프였다. 하지만 1997년 여름에 에우베르가 바이에른으로 떠난 데 이어 1999년엔 보비치마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하면서 삼총사가 흩어지자 홀로 남은 그는 하위권으로 추락한 슈투트가르트를 지탱해주었고, 어린 선수들의 멘토 역할을 자처하면서 2000년대 초반 슈투트가르트의 '무서운 영건들' 시대를 이끌어냈다. 특히 그의 애제자격에 해당하는 흘렙에겐 '마법자의 수제자'라는 애칭이 붙었다. 슈투트가르트 소속으로 공식 대회 298경기에 출전해 73골 64도움을 올리면서 구단 역대 최다 도움 기록자로 여전히 군림하고 있다.
AM 알렉산드르 흘렙
소국 벨라루스가 배출한 축구 영웅. 벨라루스 명문 바테 보리소프에서 프로 데뷔해 만 19세에 발라코프의 후계자로 슈투트가르트가 야심차게 영입했다. 슈투트가르트 입단 첫 시즌엔 주로 2군 팀에서 뛰었으나 간헐적으로 1군에 콜업되어 발라코프를 보고 배웠으며 2001/02 시즌부터 발라코프 옆에서 주전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로 뛰면서 슈투트가르트 영건 삼총사(흘렙, 루카니, 힌켈)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2002/03 시즌을 끝으로 발라코프가 은퇴를 선언하자 흘렙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했고, 2004/05 시즌엔 14도움으로 분데스리가 도움왕에 등극했다. 이러한 활약상을 인정받아 그는 2005년 여름, 아스널로 이적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실패를 맛본 후 슈투트가르트에서 2009/10 시즌 임대로 한 시즌을 소화했고, 저니맨 생활을 하다 2020년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창의적인 패스와 드리블에 일가견이 있었던 선수로 슈투트가르트에서 공식 대회 221경기에 출전해 21골 46도움을 올리면서 발라코프에 이어 구단 역대 최다 도움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CF 마리오 고메스
스페인 부친과 독일 모친 사이에서 출생한 그는 슈투트가르트 유스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대형 공격수 재목이라는 평가를 들으면서 2004년 만 18세의 나이에 프로 데뷔했으나 본격적으로 1군 정식 선수로 뛰기 시작한 건 선배 공격수 쿠라니가 샬케로 이적한 이후인 2005/06 시즌부터였다. 비록 정식적인 프로 데뷔 시즌 당시엔 30경기에 출전해 6골에 그치면서 아직은 경험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들었으나 2006/07 시즌, 그는 14골 7도움을 올리면서 슈투트가르트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견인했다. 이제 만 21세 공격수가 팀의 간판으로 활약하면서 슈투트가르트에 15년 만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선사했다는 것 자체가 독일에선 충격 그 자체였다. 이에 힘입어 그는 어린 나이에 독일 올해의 선수에 뽑히는 영예를 얻었다. 이후에도 그는 2007/08 시즌 19골에 이어 2008/09 시즌 24골을 넣으며 분데스리가 최정상급 공격수로 우뚝 섰고, 결국 독일 최강 바이에른으로 이적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피오렌티나와 베식타스, 볼프스부르크를 거쳐 2018년 1월, 슈투트가르트로 돌아온 그는 후반기 16경기에서 8골을 넣으면서 하위권을 전전하던 팀을 7위로 견인하며 화려한 왕의 귀환을 선보였다. 하지만 더 이상 나이는 속일 수 없는 듯 지난 시즌 그는 31경기에서 7골에 그치는 부진을 보였고, 슈투트가르트 역시 2부 리가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팀이 강등됐음에도 그는 잔류를 선택했고, 2019/20 시즌 18경기에서 6골을 넣으면서 슈투트가르트의 분데스리가 승격 전쟁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25라운드 기준 2부 리가 2위). 슈투트가르트 소속으로 공식 대회 225경기에 출전해 109골 30도움을 기록하면서 구단 역대 최다 골 공동 4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CF 위르겐 클린스만
슈투트가르트를 넘어 독일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공격수. 선배인 알괴베어, 부흐발트와 마찬가지로 2부 리그 구단 슈투트가르터 키커스에서 프로 데뷔해 1984년 슈투트가르트에 입단했다. 분데스리가 데뷔 시즌부터 32경기에 출전해 15골을 넣으며 스타 탄생을 알린 그는 슈투트가르트에서 뛰는 5시즌 내내 모두 두 자릿 수 골을 넣으며 분데스리가 최정상급 공격수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1987/88 시즌엔 19골로 분데스리가 득점왕에 오르면서 독일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는 영예를 얻었다. 이러한 활약상을 인정받아 그는 1989년 여름, 이탈리아 명문 인테르로 이적하기에 이르렀다. 비록 그가 슈투트가르트에서 뛴 기간은 5시즌이 전부이지만 분데스리가 156경기에 출전해 79골을 넣으며 구단 역대 최다 골 5위라는 큰 임팩트를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