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박병규 기자 = 포항 스틸러스가 2021시즌 등번호를 확정했다. 결정 과정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돋보였고 ‘형님 리더십’ 김기동 감독의 유쾌한 교통정리도 눈길을 끌었다.
포항은 지난 주 올 시즌 선수단의 등번호를 발표했다. 특히 주장 오범석과 부주장 강상우가 유튜브 생방송을 통해 선정 이유, 경쟁 구도 등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혀 흥미를 끌었다. 김기동 감독도 깜짝 등장해 더욱 재미를 더했다.
우선 주장을 맡은 오범석은 어린 시절 포항에서 맹활약했던 기억을 떠올려 14번을 택했다. 그는 초심이자 좋은 기운을 얻기 위한 바람에서 옛 번호를 선택했다. 친정으로 돌아온 신진호(6번)와 신광훈(17번)도 같은 이유에서 예전의 번호를 선택했다.
지난 시즌 77번을 달았던 팔라시오스는 82번으로 변경했다. 8282(빨리빨리) 달리는 스피드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전지 훈련에 늦게 참가한 그에게 빨리 다니기를 바라는 김기동 감독의 의도도 포함되었다.
포항스틸러스대신 77번은 새로 합류한 임상협에게 돌아갔다. 부산, 상무, 수원 등에서 줄곧 11번을 달았기 때문에 애착이 많았지만 팀 내에는 이미 이광혁이 11번을 달고 있었다. 임상협도 내심 11번을 희망했지만, 후배를 존중하며 양보했다. 이에 김기동 감독은 77번을 추천했는데 “올 시즌 번호 폰트 특징상 77번이 11번처럼 보인다. 빠르게 달리거나 멀리서 보면 더욱 11번처럼 보일 것이다. 우리 팀에 77번 달고 맹활약한 선수가 많은데 좋은 선수로 만들 수 있다”라며 격려했다.
예상치 못한 번호를 선택한 선수들도 있었다. 수비수 권완규는 13번을 부여받았지만 1순위로 8번을 제출했다. 수비수로서는 의아한 번호였다. 이에 전화를 걸어 이유를 묻자 “미드필더 감성으로 볼을 차고 싶었다”라고 해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러자 김기동 감독이 한숨을 쉬며 “어제 훈련에서 전혀 그렇지 않았다”라고 맞받아쳐 분위기를 끌어 올렸다.
한국프로축구연맹
포항스틸러스부주장인 강상우는 10번을 선택했다. 측면 수비수, 최전방 공격수까지 볼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이지만 팀 내 에이스를 상징하는 번호라 모두에게 부담이 컸다. 무엇보다 강상우가 1, 2순위를 모두 10번으로 제출할 만큼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에 강상우는 “7번도 생각했지만 중, 고교 시절 좋은 기억이 있는 10번을 달고 싶었다”라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기동 감독이 “처음에 번호를 받아 들고 한동안 고민이 많았다. 농담인 줄 알았다. 10번 아니면 하지 않겠다는 의지 아닌가”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에 강상우는 “처음에 감독님께 건방 떨지 말라며 쓴소리 들었다”라고 고백하여 김기동 감독을 당황하게 했다.
그때 팬들이 2002 한일 월드컵 때 풀백인 이영표가 10번을 달았다고 의미를 부여하자 김기동 감독은 “역시 국가대표 욕심이 있어서 선택한 거 같다”라며 응수했다. 이후 “사실 송민규와 강상우가 모두 10번을 적어냈다. 그래서 두 선수가 대화를 통해 최종 결정을 내릴 시간을 주었다”라며 비화를 설명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포항의 레전드 김광석이 떠난 3번의 자리는 이광준이 택했다. 만 25세의 수비수인 그는 2018년 포항에 우선지명 된 후 K3리그에서 경험을 쌓다가 올 시즌 복귀했다. 포항 관계자에 따르면 김광석 이적 후 선수들이 부담감을 느껴 3번을 제출하지 않았다. 이광준도 여러 번호를 제출했지만 결국 희망 순위에 있었던 3번을 부여받았다. 그는 “부담이 되었다면 달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숫자 3을 좋아하였고 대학교때 3번을 달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김광석 선수가 많이 생각나겠지만 저도 열심히 하여 제 이름을 각인시키고 싶다”라며 응원을 부탁했다.
이외에도 전북 임대를 마치고 돌아온 이수빈이 예전 57번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김기동 감독의 아들 김준호는 아버지의 번호였던 6번의 의미를 되새겨 66번을 달았다. 생방송 중 관계자가 김기동 감독에게 의미를 묻자 “나에게 물어보면 어떡하냐”라며 방송 중 가장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한국프로축구연맹화제를 모았던 방송 후 서면 인터뷰를 가진 김기동 감독은 “선수들이 선호하는 번호의 1~3순위에 가장 초점을 두었다. 그리고 기존 선수에게 조금 더 우선권을 주었다. 그래도 희망하는 번호가 겹치면 두 선수의 의견을 모두 들었고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아갔다”라며 힘겨웠던 번호 선택의 기준을 밝혔다.
사진 = 한국프로축구연맹, 포항 스틸러스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