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서호정 기자 = 후반 추가시간 문전에서 때린 구자룡의 강력한 슛이 정성룡의 손에 걸렸다. 1년 5개월 전만 해도 수원 삼성의 승리를 위해 함께 뛴 두 선수는 한쪽은 넣어야 하고, 한쪽은 막아야 하는 사이가 됐다.
25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G조 5차전. 정성룡의 선방과 함께 경기는 가와사키 프론탈레의 1-0 승리로 끝났다. 경기 내내 수원의 날카로운 공격을 막아낸 정성룡은 결승골을 넣은 수비수 나라 타츠키와 함께 승리의 일등공신이었다.
그 마지막 선방으로 수원과 가와사키의 상황은 뒤바뀌었다. 2승 2무를 기록 중이던 수원은 이날 비기기만 해도 16강 진출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날 패배로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광저우 헝다와의 원정경기에서 승리해야만 자력 진출하는 상황이 됐다. 반면 앞선 4경기에서 4무를 기록했던 가와사키는 탈락 위기를 극복하고 승점 3점을 추가했다. 조 최약체인 이스턴SC와의 마지막 홈 경기에서 승리하면 16강에 오른다.
정성룡은 최후의 위기였던 그 장면을 회상하며 복잡함 심경을 나타냈다. 그는 “그걸 먹으면 우린 승점 2점이 날아가고 챔피언스리그는 끝나는 거였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집중한 것이 그런 선방으로 이어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서는 “끝나고서야 자룡이가 슛을 했단 걸 알았다. 평소엔 그런 슛을 안 하던 선수인데. 그만큼 수원도 절실했다는 얘기다. 그걸 막아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수원에 대한 미안함도 들었다”라며 승리의 기쁨과 옛 소속팀의 패배에 대한 미안함이 섞였던 당시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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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을 떠나 가와사키로 이적하고 1년 5개월 만에 빅버드를 찾은 정성룡은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에 있었다. 원정팀 라커룸을 찾은 것은 수원에서 뛰기 전 성남 소속이었던 2010년 이후 7년 만이었다. 경기 중 수원 팬들이 부르는 응원가도 귀에 익었다. 그는 “고향에 온 것 같았다. 다른 원정 경기보다는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라며 빅버드의 분위기가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설명했다.
가와사키 구단은 수원전을 이틀 앞두고 정성룡에게 경기 전날 공식 기자회견에 나가겠냐고 의사를 물었다. 전 소속팀과의 경기인 만큼 미디어의 주목도가 커질 수 있었다. 그러나 정성룡은 입단 후 처음으로 구단에게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 “이번에는 하지 않는 게 맞다고 정중하게 얘기했다. 예전에 서정원 감독님이 해 주신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말보다는 운동장에서의 모습을 진짜 나를 보여준다던 조언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라며 그 이유를 밝힌 정성룡이었다.
수원의 전력에 대한 얘기도 팀에 따로 하지 않았다. 보통 전소속팀 선수들은 상대 전력과 특징을 가장 잘 아는 만큼 그 부분을 공유한다. 그러나 정성룡은 다른 말 없이 자신의 역할에만 집중했다. 가와사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도 예의라고 생각해서 따로 묻지 않았다.
정성룡에게 수원은 특별한 팀이고 서정원 감독은 감사한 스승이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의 실망스러운 성적을 남기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남긴 트윗으로 그는 국민 역적이 됐다. 전국민이 그를 조롱하는 가운데서도 변함 없는 믿음을 준 것은 수원을 사랑하는 이들이었다. 서정원 감독은 일부러 정성룡에게 휴식을 주며 몇 경기에서 빼 분위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당시 서정원 감독과 팬들의 배려가 무너질 수 있었던 선수를 살렸다.
수원을 챔피언스리그 탈락 위기로 몬 선방에도 불구하고 수원 팬들은 경기 후 정성룡에게 응원과 환영의 박수를 보냈다. 정성룡도 원정을 온 가와사키 팬들에게 인사한 뒤 수원 팬들에게 인사를 했다. 들어가는 길에는 옛 동료들과도 만났다. “(조)원희 형이 팔을 툭 밀면서 그걸 막냐고 장난으로 혼을 냈다. 내가 미울 수도 있는데 격려해주시는 수원 팬들을 보며 감사했다”는 게 정성룡의 소감이었다.
새로운 무대, 새로운 팀으로 가서도 정성룡은 수원에서처럼 신뢰받고 있다. 가와사키는 지난 시즌 리그에서의 선전과 일왕배 준우승을 도우며 자신들을 다시 챔피언스리그 무대로 이끈 수호신을 높이 인정하고 있다. 가와사키 원정 팬들이 준비한 응원 도구 중 단연 눈에 띈 것은 한자로 된 정성룡의 이름과 용이 그려진 대형 걸개였다. 정성룡 역시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경기지만 골키퍼는 골을 넣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선수다. 내 할 일을 가장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라며 그런 신뢰에 보답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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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사키의 오니키 토루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정성룡의 기량 뿐만 아니라 인성에도 극찬을 보냈다. 그 얘길 전해들은 정성룡은 오히려 가와사키 구단에 감사를 표했다.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를 줬고, 그 안에서 인정을 받으며 J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정성룡은 “가와사키 팬들의 응원과 큰 걸개가 여기서도 내가 수원에서처럼 신뢰 받고 있다는 걸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의식해서 하는 행동은 아니지만 이 곳의 사람들도 모두 따뜻하고 친절하다. 내가 더 도움을 받고 있다”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숙소로 돌아간 정성룡은 주장인 고바야시 유, 골을 넣은 나라 타츠키 등 동료들과 함께 수원에서 후배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가서 삼겹살 회식을 가졌다. 수일 전부터 팀 동료들이 한국에 가면 삼겹살을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정성룡은 팀 내 신뢰와 친밀을 더욱 다지고 있다.
26일 새벽 일찍 일본으로 돌아간 정성룡은 가와사키와 수원을 모두 응원했다. 가와사키는 3승 4무 1패로 7위를 기록 중이다. 지난 시즌에 비해 전반기 페이스가 좋지 않다. 간판 골잡이 오쿠보 요시토가 떠난 상황에서 핵심 선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차이가 크지 않으니까 매 경기 집중하고 있다”라고 말한 정성룡은 “부상자들이 하나 둘 돌아오고 있다. 이번 승리로 팀이 얻은 자신감도 크다. 다음 챔피언스리그 경기까지는 리그에 집중하겠다”라며 의지를 불태웠다.
수원의 선전도 빌었다. 수원이 광저우를 잡고, 가와사키가 이스턴을 잡으면 G조에서는 두 팀이 16강에 진출한다. 정성룡이 그리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우리도 광저우에 가서 선전했고 비겼다. 다들 광저우가 어려운 상대라고 하지만 수원은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꼭 같이 16강에 올라갔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