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한만성 기자 = 잉글리시 리그 원(3부 리그) 팀 브래드포드 시티가 최종 목표인 프리미어 리그 승격을 이루면 홈 경기 입장료를 단 1파운드(약 1천3백 원)로 낮추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직 3부 리그 팀에 불과한 브래드포드가 마지막으로 프리미어 리그 무대를 경험한 건 지난 2000-01 시즌이다. 이후 브래드포드는 한때 리그 투(4부 리그)까지 강등됐다가 2013-14 시즌부터 줄곧 리그 원에 소속돼 있다. 그러나 브래드포드는 올 시즌을 앞두고 독일 컨소시엄이 구단을 인수하며 체질개선에 나섰고, 현재 리그 원에서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권인 4위를 달리고 있다. 게다가 브래드포드는 올 시즌 7경기를 남겨둔 현재 승격 직행이 보장되는 2위 볼튼 원더러스와 격차가 단 승점 6점 차에 불과해 끝까지 치열한 순위 경쟁을 펼칠 전망이다.
이 와중에 지난여름 구단을 인수한 에딘 라히츠 회장이 이색적인 공약을 내걸어 관심을 끌고 있다. 그는 브래드포드가 나중에라도 프리미어 리그로 복귀하면, 홈 경기 입장료로 1인당 단 1파운드만 받겠다고 선언했다. 라히츠 회장은 19세기 말 서민이 살아간 삶 속에서 탄생한 축구의 근본을 되찾겠다며 '프리미어 리그 승격 시 입장료 1파운드' 공약을 세웠다.
주요 뉴스 | 아스널, 이대로라면 4위 과학 깨진다
라히츠 회장은 '더 타임스'를 통해 "브래드포드는 노동자의 도시이며 우리는 노동자의 구단"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걸 걸고 우리를 응원해주는 서민 팬들을 격려해주고 싶다. 팬들을 그렇게 대우하는 게 우리 구단 이미지에도 어울린다. 우리는 축구계에서 약자에 속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강자와 싸우기를 원하는 팀이다. 그러려면 우리에게는 매 경기 2만여 관중이 필요하다. 입장료가 줄어들면 경기장을 찾는 팬들도 더 자유롭게 팀을 응원해준다. 입장료가 저렴해야 팬들이 경기장에서 음식이나 맥주를 더 편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올 시즌 현재 리그 원 경기당 평균 관중수는 7,760명이다. 브래드포드(18,100명)를 비롯해 셰필드 유나이티드(21,079명), 볼튼 원더러스(13,964명), 찰튼 애슬레틱(11,035명), MK돈스(10,040명)를 제외하면 나머지 19팀의 홈 경기 평균 관중수는 1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 이에 라히츠 회장은 "대다수 구단의 홈 경기에 관중이 3~4천 명밖에 없는 모습을 보면 축구 경기장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브래드포드는 프리미어 리그와는 거리가 있는 팀인 만큼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확보하지 못했지만, 현재 경기당 입장료로 단 6파운드(8천3백 원)를 받고 있다.
그러나 라히츠 회장은 브래드포드가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해 거액 TV 중계권료, 스폰서십 등을 확보하게 되면 누구나 구단의 홈구장 밸리 퍼레이드를 찾아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1인당 입장료를 단 1파운드로 낮추겠다는 방침이다. 영국 공영방송 'BBC'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프리미어 리그 20개 구단의 평균 시즌티켓 가격은 480파운드(약 66만 원). 그러나 만약 브래드포드가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해 입장료 1파운드 정책을 현실화하면, 팀의 한 시즌 리그 홈 경기를 모두 직접 관전해도 1인당 입장료로 부담하는 가격은 총 19파운드(약 2만6천 원)에 불과하다.
대개 홈 경기 입장료는 중계권료, 스폰서십과 함께 일반적인 프로 축구팀의 사업 모델을 형성하는 중요한 수익 창구로 쓰인다. 그러나 라히츠 회장은 중계권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프리미어 리그의 현재 추세를 고려할 때 팀이 승격에만 성공한다면 입장료를 낮춰 최대한 많은 팬들에게 홈 경기를 개방해도 구단을 운영하는 데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다는 생각이다.
현재 3부 리그 팀 브래드포드가 최대한 빨리 프리미어 리그 무대를 밟을 수 있는 시기는 오는 2018-19 시즌이다. 3부 리그 팀이 단 2년 만에 2부 리그를 거쳐 프리미어 리그로 오를 가능성이 작다는 점을 고려하면, 브래드포드가 목표를 이루는 데는 이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프리미어 리그는 작년부터 2019년까지 자국 내 TV 중계권료를 판매한 조건으로 무려 64억 유로(한화 약 8조 원)를 받는다. 이 중 절반은 20개 구단에 균등 배분되고, 남은 액수 중 25%는 매 시즌 팀별 순위에 따라 상급으로 지급된다. 나머지 25%는 각 구단 홈구장에 중계 장비를 설치하는 데 쓰인다.
주요 뉴스 | '결승골' 뮐러, 250경기 출전 자축하다
프리미어 리그는 현재 중계권 계약이 종료되는 오는 2019년부터 계약 조건이 더 큰 규모로 늘릴 게 확실시된다. 해외 중계권료까지 더하면 각 프리미어 리그 구단이 올릴 수익은 대폭 증가한다.
이처럼 홈 경기 입장료를 최소화해 더 많고 다양한 팬들이 경기장에서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즐길 수 있게 하는 건 과거 노동자 계열 서민이 흘린 땀으로 만들어진 축구팀이 추구하는 가치와 일맥상통하다는 게 라히츠 회장의 신념이다. 그는 작년 브래드포드를 인수한 후 지역 일간지 '텔레그래프 앤드 아거스'를 통해 "독일과 잉글랜드 축구 문화가 융화된 구단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독일 분데스리가가 구단별로 해외 투자자에 넘길 수 있는 소유권을 49%로 제한해 정체성을 지키고 내실을 다지는 운영 방식을 브래드포드에도 일부 적용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드러난 발언이다.
라히츠 회장은 "꿈은 프리미어 리그 승격이다. 그 꿈을 이루면 브래드포드의 홈 경기 입장료는 1파운드가 될 것이다. 프리미어 리그 구단은 TV 중계권료로 최소 1억 파운드를 받는다. 어차피 입장료로 올리는 수익은 중계권료보다 훨씬 적다. 그러니 팬들에게 무언가를 되돌려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나는 브래드포드가 잉글랜드 최고의 홈구장 분위기를 자랑하는 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브래드포드는 현재 리그 원에서 20경기 연속으로 홈 경기 무패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미 홈 경기 입장료를 낮추기 시작한 브래드포드의 저렴한 가격에라도 최대한 많은 관중을 유치하려는 노력은 홈구장 분위기를 고조하고, 다른 방법으로 수익을 창출할 노력을 기울이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라히츠 회장에 따르면 올 시즌 구단은 유니폼만 약 12,000장을 팔았다. 세계적인 인지도를 누비는 프리미어 리그 구단이 아닌 3부 리그 구단에 유니폼 12,000장은 적지 않은 물량이다. 브래드포드가 이처럼 많은 유니폼을 판매한 원동력은 입장료가 낮아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 부담 없이 구단 용품이나 장내 음식과 음료를 구입하는 문화가 만들어진 데서 비롯됐다.브래드포드의 올 시즌 시즌티켓 평균 가격은 단 149파운드(약 20만 원). 이는 평균 시즌티켓 가격이 273파운드(약 38만 원)인 리그 원 24개 구단을 기준으로 해도 현저히 낮은 액수다. 그러나 라히츠 회장은 이마저도 비싸다며 "독일에서는 도르트문트나 바이에른 뮌헨도 시즌티켓을 110만 파운드에 판다"며 팬들의 양해를 구했다. 브래드포드는 챔피언십(2부 리그)에 이어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하면, 시즌티켓 가격을 더 낮추겠다는 방침이다. 라히츠 회장은 구단이 프리미어 리그 무대만 밟을 수 있다면, 경기장을 찾아 팀을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굳이 큰돈을 받지 않아도 외부적인 요소로 돈을 벌 기회는 충분하다고 확신하고 있다.
독일인 라히츠 회장은 브래드포드를 인수한 후 팬들에게 자신이 장기적인 안목을 바탕으로 구단을 운영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가 작년 인수를 발표한 자리에서 뱉은 첫 마디도 "나는 이제 단 42세다. 긴 시간 브래드포드를 운영할 계획"이라는 발언이었다. 이후 라히츠 회장은 독일에 거주하던 가족을 브래드포드로 이사하게 했다. 舊유고슬라비아 국적을 보유했던 라히츠 회장의 부모님은 모국의 내전을 이유로 독일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야 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배경이 축구계가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게 하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더 타임스'를 통해 보도된 라히츠 회장의 힘 있는 메시지는 그가 축구를 통해 어떤 사회를 꿈꾸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내 아버지는 항상 내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브래드포드는 내게 완벽한 곳이다. 우리를 응원하는 팬이 백인인지, 흑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모두를 환영한다. 이제 우리에게는 지역 내 동양인 이민자들이 브래드포드에 관심을 느끼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2, 3년 안에 홈에서 열리는 매 경기 입장권 매진을 꿈꾼다. 다만 우리는 단순히 꽉 들어찬 관중석이 아닌 브래드포드에 사는 모든 인종의 지역민을 대표할 만한 다양한 팬층이 경기장을 메워주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