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모의 어시스트+] '벵거 신화'를 만든 주인공에게 벵거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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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모의 어시스트+] '벵거 신화'를 만든 주인공에게 벵거를 묻다

[골닷컴, 런던] 이성모 기자 = 세상의 모든 '킹' 뒤에는 '킹메이커'가 있다. 축구계도 마찬가지다. 축구팬들이 기억하는 위대한 명장과 레전드들 뒤에는 반드시 그들을 발굴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뒤에서 도와준 '숨은 조력자'들이 있다. 

1996년 아스널 감독에 부임해 아스널 뿐 아니라 잉글랜드 축구계 전체를 개혁했다는 평가를 받는 '명장' 아르센 벵거 감독의 뒤에도 그런 '킹메이커'가 있었다.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벵거 감독이 아스널에 올 일도, 그래서 잉글랜드 축구계에 각종 혁신이 등장하고 외국인 감독들의 전성시대가 열렸을 일도 없었을테니, 이쯤되면 이 사람이야말로 '벵거 신화' 혹은 그 이상을 만든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남자의 이름은 데이비드 딘(David Dein), 딘과 벵거 두 사람의 사연은 이렇게 거슬러올라간다.

1989년, 1월 2일. AS 모나코 감독 시절의 벵거가 모나코로 돌아가기 위해 들린 런던의 한 경기장을 찾았고, 그 경기장에서 딘과 처음 만났다. 당시 잉글랜드에서는 프랑스 등 대륙의 축구에 큰 관심이 없던 시절이었고 벵거 감독은 철저한 무명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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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러가지 면에서 '시대를 앞서간 혁신가'로 평가받는 딘은(그는 3년 후인 1992년 EPL 출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미 벵거 감독이 누군지 알고 있었기에 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고,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벵거 감독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단번에 알아챘다. 그 때 딘이 남긴 한 마디는 지금도 프리미어리그 팬들 사이에서 널리 기억되고 있다. 

"아르센과 아스널(Arsene and Arsenal), 이건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르겠군. 이 사람은 훗날 우리 감독이 될 수도 있겠어." 

이후 아스널을 잘 이끌었던 조지 그레엄 감독이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경질당한 1995년, 딘은 벵거 감독을 차기 아스널 후보로 추천했지만 당시까지 외국인 감독을 한 번도 쓴 적이 없었던 아스널 이사진에서는 벵거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레엄 감독의 후임으로 부임한 브루스 리오치 감독이 1년 만에 경질 당한 1996년, 딘은 벵거 감독이야말로 분명히 아스널을 새로운 시대로 이끌 주인공이라며 앞장서서 벵거를 추천했고, 그렇게 당시 일본에서 감독 생활을 하던 '무명'의(그래서 '아르센 누구?'라는 비아냥을 사기도 했던) 벵거 감독은 아스널에 부임해 2년 만에 '더블'을 기록하며 잉글랜드 축구계를 바꿔놓게 된다. 
 

 

10월 1일, 그런 데이비드 딘을 직접 만났다. 런던의 한 대학에서 개최한 특강 자리에서였다. 축구계 거장이 직접 등장하는 특강자리였던 만큼, 이 자리에는 대학생들 뿐 아니라 몇몇 현지 미디어, 영국의 저명한 작가 등도 참가해 강연이 끝난 후 딘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의 강연 내용은 아스널에 국한되지 않고 특히 그가 깊이 관여했던 1992년 EPL의 출범과정 등에 대한 것이었으나(이 부분은 주최측과 딘 본인의 요청으로 기사에 공개하지 않기로 한다), 강연이 끝나고 Q&A 시간이 되자 필연적으로 아스널과 벵거 감독에 나오기 시작했다. 

* 데이비드 딘은 1983년부터 아스널 부회장직을 역임하며 아스널의 무패우승까지를 이끌었을 뿐 아니라 1992년 EPL 출범, 아스널 레이디스 회장, 잉글랜드 FA 부회장 등 다양한 역할을 하며 축구계에 많은 혁신을 가져온 인물이다. 

좌중의 분위기가 아스널과 벵거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갈 무렵, 그에게 아르센 벵거 감독에 대해 직접 물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당신은 축구계에서 정말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아르센 벵거 감독을 아스널 감독에 임명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있다. 본인도 그 일이 자신의 커리어에서 최고의 일이었다고 생각하는가?"

딘은 잠시 웃음을 보이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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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론 많은 일을 했지만, 벵거를 아스널로 데려온 것은 분명 내 커리어의 하이라이트였다고 생각한다." 

이미 나의 질문에 답한 딘이었지만, 그는 늘 그렇듯, 벵거 감독에 대한 질문에는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았다.

"아르센 벵거는 아스널이라는 클럽을 완전히 바꿔놓은 인물이다. 그가 아스널에 처음 왔을 무렵 아스널은 아주, 아주 술을 잘 마시는 클럽이었다.(이 부분에서 청중 사이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벵거는 부임한 직후, 선수들에게 새로운 식단, 새로운 훈련법 등을 도입했다. 그런 부분에 대해 처음에는 선수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결국 그 덕분에 많은 선수들이 1년, 2년을 더 뛸 수 있었다. 

그리고 한가지 강조하자면,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그가 아스널에 도입한 새로운 방식들은 프리미어리그의 다른 클럽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아스널을 개혁했을 뿐 아니라 잉글랜드 축구계를 바꾼 인물이었다." 

나의 질문이 끝난 후, 벵거 감독에 대한 몇몇 질문이 더 나왔다. 그 질문들 중, 딘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나는 전세계를 다니고, 아르센 벵거는 전세계에서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최근 몇년 사이 그가 존경받지 못했던 곳은 유일하게 한 곳 '북런던'이었다. 그건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나는 그가 마침내 자신의 일을 끝내고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강연히 모두 끝난 후, 나는 딘을 기다렸다가 그에게 다가가 훗날에 따로 인터뷰를 가질 수 있겠는지 부탁하며 한 가지 질문을 더 했다. 현재 아스널을 이끌고 있는 에메리 감독이 '넥스트 벵거'가 될 수 있겠냐는 질문이었다. 

그는 싱긋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에메리 감독은 현재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좀 더 두고봐야 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에게 시간을 줘야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딘은 1983년 아스널 부회장에 부임하며 축구계에서의 커리어를 시작해 4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축구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지켜본 인물이다. 그가 '시간을 줘야한다'라고 말할 때, 그 말에는 글로 읽을 때와는 다른 시간의 무게가 느껴졌다. 

* 축구팬들께 알립니다. 

칼럼에 서술한대로 데이비드 딘은 EPL 출범에도 큰 기여를 한 인물입니다. 강연의 주요 내용은 그에 포커스가 맞춰줬으나, 주최측의 의견을 존중하여 이 칼럼에서는 그에 대한 주제를 다루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선 훗날 별도의 인터뷰를 통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성모의 어시스트+]는 축구팬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가는 칼럼입니다. 여러분이 궁금하신 점, 인터뷰를 통해 만나고 싶은 인물 등에 대해 의견 주시면 늘 유심히 보고 더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성모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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