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등번호 특집] 2번의 전설 카마초와 후계자 카르바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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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닷컴] 김현민 기자 = 이제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까지 21일 남았다. 세계인의 축구 네트워크 골닷컴은 월드컵 디데이에 맞춰 과거 해당 번호를 대표했던 전설과 이번 월드컵에서 이를 계승할 후계자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다(번호는 디데이의 역순).

축구에서 등번호가 달리기 시작한 건 192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이전까지는 축구에 등번호 자체가 없었다. 그마저도 월드컵에서 처음 도입된 건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였다. 당시엔 고정된 등번호가 아닌 선발 출전하는 선수에게 해당 경기마다 1번부터 11번의 등번호를 달고 출전하는 형태였다.

결국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이르러서야 지금처럼 선수 고유의 등번호를 가지고 경기에 나섰다. 이를 기점으로 등번호는 제각각의 의미를 띄기 시작했다. 몇몇 선수들은 특정 등번호를 통해 개인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월드컵 참가 선수가 22명에서 23명으로 늘어난 건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이다. 이전까지는 22인으로 월드컵 로스터가 정해져 있었다. 즉 등번호 23번이 등장한 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그런 관계로 골닷컴에서 제공하는 등번호 특집 칼럼에서 등번호 23번은 제외했다).

상당수의 경우 등번호 1번부터 11번까지는 전통에 따라 주전 선수들이 많이 다는 번호이다. 그 중에서도 2번은 베르티 포그츠와 에릭 게레츠, 쥐세페 베르고미, 카푸, 게리 네빌 , 다리오 스르나 같은 측면 수비수들이 즐겨 다는 번호이다. 

원래 이 시리즈물을 기획했을 당시엔 카푸와 다니엘 아우베스를 2번의 주인공으로 낙점짓고 있었다. 하지만 아우베스가 부상으로 월드컵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면서 불가피하게 1번에 이어 2번도 스페인 선후배가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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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번의 전설 카마초와 그의 후배 카르바할

아마도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라고 하면 요즘 축구 팬들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스페인 대표팀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감독을 떠올릴 것이다. 그는 감독 이전에 스페인을 넘어 유럽 정상급 왼쪽 측면 수비수였다.

그는 만 18세였던 1974년, 레알 마드리드에서 프로 데뷔해 15년간 선수로 한 구단에서만 뛴 대표적인 원클럽맨이다.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우승만 무려 9회로 레알의 전설적인 측면 공격수 파코 헨토(12회)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는 명선수였다. 그와 함께 레알에서 뛰었던 선수로는 前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울리 슈틸리케를 비롯해 후아니토, 비센테 델 보스케, 가르시아 레몬, 산티야나 같은 당대 내로라하는 스타 플레이어들이 있다.

이미 어린 나이에 두각을 드러낸 그는 만 19세였던 1974년 2월,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으나 1978년 1월, 훈련 도중 심각한 부상을 당해 장기간 그라운드를 떠나있어야 했다. 이로 인해 아쉽게도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엔 불참해야 했었던 카마초였다. 

하지만 1979/80 시즌, 장기 부상에서 돌아온 그는 다시 예전의 기량을 선보이며 레알의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와 코파 델 레이 2관왕에 크게 기여했다. 이어서 1981년 프랑스와의 평가전을 통해 스페인 대표팀에도 복귀하는 데 성공한 카마초였다.

자국에서 열린 1982년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에 등장한 그는 등번호 2번을 달고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인상적인 데뷔 무대를 가졌다. 이어서 유로 1984에선 스페인의 준우승에 기여했다. 

이후 기존 스페인 대표팀 주장이었던 루이스 아르코나다가 1985년, 십자인대 파열로 부상을 당하면서 대표팀에서 하차하자 신임 주장직에 올랐다. 그는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스페인을 1950년 브라질 월드컵 이후 무려 32년 만에 8강으로 견인하며 위대한 주장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8강에서 스페인은 벨기에에게 승부차기 끝에 탈락했다).

카마초는 유로 1988을 마지막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고(A매치 81경기), 1989년 레알 마드리드에서 15년 간의 선수 생활에 작별을 고했다. 우승 횟수만 무려 19회(라 리가 9회와 UEFA 컵 2회 포함)에 달하고, 공식 대회 577경기로 레알 역대 최다 출전 7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레알과 스페인이 자랑하는 전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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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초가 은퇴하고 24년 뒤, 레알에 그의 후계자가 등장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다니엘 카르바할이다. 그 동안 레알에 호베르투 카를로스와 미첼 살가도, 마르셀루 같은 내로라하는 뛰어난 측면 수비수들이 많이 있었으나 레알 유스 출신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카마초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선수는 카르바할이 유일하다(물론 알바로 아르벨로아도 레알 유스 출신이지만 카마초의 명성에는 미치지 않는다).

둘 사이에 차이점도 존재한다. 카마초가 측면 수비수는 물론 중앙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소화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선수였다면 카르바할은 정통파 측면 수비수다. 게다가 카마초는 1982 월드컵을 제외하고는 등번호 3번을 달고 뛰었다. 결정적으로 카마초는 왼쪽 측면 수비수였고, 카르바할은 오른쪽 측면 수비수다.

하지만 카르바할은 카마초와 마찬가지로 파이팅이 넘치고, 터프한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카르바할 역시 카마초와 마찬가지로 부상으로 인해 메이저 대회 데뷔 시점이 실력 대비 다소 늦은 편에 속한다. 카마초가 만 27세였던 1982년 월드컵에서 데뷔했다면, 카르바할은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만 26세의 나이에 메이저 대회 데뷔 무대를 가진다.

스페인은 유로 2008 우승을 시작으로 2010 남아공 월드컵과 유로 2012까지 축구 역사상 최초의 메이저대회 3연패를 달성하면서 황금기를 구가했으나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32강 조별 리그 조기 탈락의 수모를 겪어야 했다. 유로 2016에서도 16강전에서 이탈리아에게 0-2 완패를 당하며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제 스페인은 러시아 월드컵을 통해 명예회복에 나선다. 유럽 지역 예선에서 9승 1무 무패로 '무적함대'의 위용을 일정 부분 회복했고, 독일 원정 평가전 1-1 무승부에 이어 아르헨티나와의 평가전에서 6-1 대승을 거두며 강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스페인 영광의 시대에는 항상 정상급 측면 수비수가 함께 했다. 이번엔 카르바할이 그 역할을 이어가야 한다.

Jose Antonio Cama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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