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등번호 특집] 1번의 전설 카시야스와 후계자 데 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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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 Images
[골닷컴] 김현민 기자 = 이제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까지 22일이 남았다. 세계인의 축구 네트워크 골닷컴은 월드컵 디데이에 맞춰 과거 해당 번호를 대표했던 전설과 이번 월드컵에서 이를 계승할 후계자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다(번호는 디데이의 역순).

축구에서 등번호가 달리기 시작한 건 192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이전까지는 축구에 등번호 자체가 없었다. 그마저도 월드컵에서 처음 도입된 건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였다. 당시엔 고정된 등번호가 아닌 선발 출전하는 선수에게 해당 경기마다 1번부터 11번의 등번호를 달고 출전하는 형태였다.

결국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이르러서야 지금처럼 선수 고유의 등번호를 가지고 경기에 나섰다. 이를 기점으로 등번호는 제각각의 의미를 띄기 시작했다. 몇몇 선수들은 특정 등번호를 통해 개인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월드컵 참가 선수가 22명에서 23명으로 늘어난 건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이다. 이전까지는 22인으로 월드컵 로스터가 정해져 있었다. 즉 등번호 23번이 등장한 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그런 관계로 골닷컴에서 제공하는 등번호 특집 칼럼에서 등번호 23번은 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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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의 경우 등번호 1번부터 11번까지는 전통에 따라 주전 선수들이 많이 다는 번호이다. 그 중에서도 다른 등번호와 달리 1번은 골키퍼 번호로 고정이 되어 있다. 물론 1998 프랑스 월드컵 우승 주역 파비앙 바르테즈처럼 독특한 번호(16번)를 다는 경우들이 있지만 레프 야신(구소련)을 필두로 고든 뱅크스(잉글랜드), 제프 마이어(서독), 디노 조프(이탈리아), 피터 슈마이켈(덴마크) 같은 대부분의 전설적인 골키퍼들은 등번호 1번을 달고 월드컵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적어도 1번은 골키퍼 고유 번호이고, 골키퍼만이 달 수 있다.

아직 현역으로 뛰고 있는 골키퍼들 중에서도 이미 전설의 반열에 올라선 인물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스페인의 이케르 카시야스와 이탈리아의 잔루이지 부폰이다. 그 중에서도 카시야스는 스페인 축구사에 있어 큰 획을 그은 인물이기에 큰 의미를 안고 있다.

Iker Casillas - 2010 World Cup


# 등번호 1번의 전설 카시야스와 후계자 데 헤아

카시야스는 등장부터 충격적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만 21세의 어린 나이에 '무적함대' 스페인의 주전 골키퍼로 나선 것. 이는 사실 다소 행운이 따른 것이었다. 당초 주전 골키퍼로 낙점됐던 산티아고 카니자레스가 월드컵을 앞두고 떨어지는 화장품 병을 발로 차는 실수를 저질러 발 골절상을 당한 것. 급작스럽게 주전 골키퍼 역할을 수행했음에도 그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분한 골키핑을 구사하며 스페인의 8강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한일 월드컵을 시작으로 스페인 골문엔 카시야스 시대가 열렸다. 2014 브라질 월드컵까지 12년 동안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면서 A매치 167경기에 출전하며 유럽 선수 역대 A매치 최다 출전 기록을 수립한 카시야스다.

게다가 그는 2006년 독일 월드컵이 끝나고 스페인 주장직에 올랐다. 그가 주장 완장을 차자 이전까지 화려한 선수단 면면에 비해 성적이 나오지 않았던 스페인이 유로 2008에 이어 2010 남아공 월드컵, 그리고 유로 2012까지 연달아 우승을 차지하면서 황금기를 구가했다. 

많은 축구 전문가들은 카시야스가 주장으로 부임하기 이전까지 스페인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역 감정을 꼽고 있었다. 카탈루냐와 바스크 지역의 경우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까지 주장하고 나설 정도이다 보니 선수들 간의 반목이 상당히 심한 편에 속했다(지금도 카탈루냐 지역은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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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하나로 묶은 인물이 카시야스다. 카시야스는 상당히 독특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분명 마드리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마드리드 토박이지만, 그의 부친은 과거 빌바오에서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아틀레틱 빌바오 팬이 됐다. 그러하기에 그의 부친은 카시야스가 어린 시절 레알 마드리드와 빌바오 혹은 레알 소시에다드(바스크 연고지)가 경기를 가질 때면 카시야스를 베르나베우 구장에 데려가곤 했다고 한다.
 
이에 더해 카시야스의 7살 어린 친동생 우나이는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 광팬이다. 자연스럽게 그는 다른 카스티아(마드리드 지역) 출신 선수들과는 달리 카탈루냐와 바스크에 대한 포용력을 가지고 있다. 그가 대표팀에서 한창 활약하던 당시 가장 친하게 지냈던 인물이 바로 바르셀로나 토박이 사비였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 한다고 할 수 있겠다.

실제 사비는 "이케르와 난 17세 이하 월드컵서부터 대표팀에서 함께 뛰기 시작했다. 이후 우리는 둘도 없는 사이가 됐다. 난 이케르에게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공개적으로 밝힐 수 있을 정도다. 그는 정말 사랑스러운 남자다. 농담도 잘 하고, 진정성이 있으며 승부욕과 경쟁심도 가지고 있다. 다정하기까지 하다. 레알과 바르사가 경기 도중 마찰로 인해 관계가 악화될 위기에 놓일 때면 그는 언제나 나를 불러 '우리는 이런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가 레알과 스페인 대표팀 주장인 건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덕에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만약 그가 중간에서 중재하지 않았다면 레알과 바르사의 관계는 더 악화됐을 것이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Iker Casillas & Xavi

이렇듯 '대통합의 아이콘' 카시야스가 있었기에 스페인은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유로 2008에서 44년 만에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했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조국에 처음으로 월드컵 우승을 선사했다. 그리고 유로 2012에서 축구사를 통틀어 역대 최초 메이저 대회 3연패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그 중심엔 대표팀 선수들을 하나로 묶은 카시야스의 리더십이 있었다.

골키퍼 본연의 임무에도 충실했다. 위에서 언급한 리더십을 뺀 순수한 골키퍼로서의 모습만 놓고 보더라도 그는 월드컵 역사를 통틀어 손에 꼽힐 정도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위기의 순간마다 기적과도 같은 선방으로 팀을 구해내는 이가 바로 카시야스였다. 이것이 그가 '성자 이케르(San Iker)'라는 애칭으로 스페인 국민들에게 불리는 이유이다.

그 중에서도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활약상은 단연 백미였다. 실제 이 대회 7경기에서 그가 허용한 실점은 단 2골이 전부였다. 이는 1998년 바르테스(프랑스), 2006년 부폰(이탈리아)과 함께 월드컵 우승국 최소 실점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반면 스페인 공격진은 7경기에서 단 8골을 득점하는 데에 그치며 유일하게 두 자리 수 골을 넣지 못한 월드컵 우승국이라는 다소 실망스러운 득점력에 그쳤다(종전 기록은 1938년 이탈리아와 1966년 잉글랜드, 그리고 1994년 브라질의 11골). 즉, 카시야스가 있었기에 스페인이 우승할 수 잇었던 것이다. 당연히 2010 월드컵 최우수 골키퍼(골든 글로브)도 카시야스의 차지였다. 

특히 네덜란드와의 결승전에서 그는 61분경 상대팀 에이스 아르옌 로벤과의 일대일 장면에서 빠르게 각도를 좁히고 나와선 다리를 쭉 뻗어 골과 다름 없는 슈팅을 막아내는 신기를 보였다. 이는 말 그대로 경기의 승패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선방이었다. 이 선방 덕에 스페인은 승부를 연장전까지 끌고 갈 수 있었고, 결국 116분경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했다. 

Iker Casillas vs Arjen Robben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있듯, 카시야스는 2014 브라질 월드컵을 기점으로 급격히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와의 32강 조별 리그 개막전에서 무려 4실점을 허용하며 체면을 구긴 그는 이어진 칠레전에 다시 2실점을 헌납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는 유로 2016 예선까지 주전 골키퍼로 뛰면서 본선 진출에 기여했다. 예선 7경기에서 그가 허용한 실점은 단 2골이 전부였다. 하지만 2016년 6월 1일, 한국과의 평가전을 마지막으로 그는 주전 골키퍼 자리에서 내려왔고, 유로 2016 본선이 끝나자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바로 유로 2016 본선에서 카시야스의 주전 골키퍼 자리를 물려받은 선수가 데 헤아이다. 데 헤아는 카시야스와 같은 마드리드 태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결정적인 차이는 카시야스가 레알 마드리드 유스 출신이라면 그는 더비 라이벌 구단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스 출신이라는 점이다.  

데 헤아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카시야스의 뒤를 이을 대형 골키퍼라는 평가를 들었다. 당장 카시야스부터 2010년, 당시 만 19세에 불과했던 데 헤아를 가리켜 "조만간 우리 모두를 은퇴시킬 선수다"라고 호평했을 정도였다. 다만 카시야스가 버티고 있었기에 그는 유로 2016 본선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대표팀 주전 골키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Iker Casillas David De Gea Spain El Salvador 07062014

대표팀 주전 골키퍼로 올라선 이후 그는 한 단계 더 도약한 모습이다. 러시아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9경기에서 그는 단 3실점 만을 허용했을 뿐이다. 게다가 현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도 연신 환상적인 선방쇼를 펼치며 세계 최고의 골키퍼 반열로 올라서고 있다. 실제 그는 이번 시즌 무려 80.4%에 달하는 높은 선방률을 기록하며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골키퍼들 중 1위를 차지했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은 그가 스페인 대표팀에서 등번호 1번을 달고 참가하는 첫 메이저 대회이다. 이래저래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월드컵이 그가 카시야스의 진정한 후계자라는 걸 만천하에 알릴 절호의 기회이다.

참고로 카시야스가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유로 2008 당시, 그의 나이는 지금 데 헤아와 똑같은 만 27세이다. 스페인 국민들은 데 헤아가 카시야스처럼 수호신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조국에 다시 한 번 메이저 대회 우승을 선사하길 기대하고 있다.

카시야스 "그는 여전히 어리고, 열정이 넘치며, 언제나처럼 매우 뛰어나다. 게다가 이제 그는 더 이상 예전처럼 어리숙하지도 않다.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스페인 대표팀에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는 로페테기(스페인 대표팀 감독)의 가장 확실한 카드이다"

David De Gea
그래픽=골닷컴 박성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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