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등번호 특집] 12번의 전설 지레스와 그의 후배 톨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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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닷컴] 김현민 기자 = 이제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까지 11일 남았다. 세계인의 축구 네트워크 골닷컴은 월드컵 디데이에 맞춰 과거 해당 번호를 대표했던 전설과 이번 월드컵에서 이를 계승할 후계자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다(번호는 디데이의 역순).

축구에서 등번호가 달리기 시작한 건 192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이전까지는 축구에 등번호 자체가 없었다. 그마저도 월드컵에서 처음 도입된 건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였다. 당시엔 고정된 등번호가 아닌 선발 출전하는 선수에게 해당 경기마다 1번부터 11번의 등번호를 달고 출전하는 형태였다.

결국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이르러서야 지금처럼 선수 고유의 등번호를 가지고 경기에 나섰다. 이를 기점으로 등번호는 제각각의 의미를 띄기 시작했다. 몇몇 선수들은 특정 등번호를 통해 개인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월드컵 참가 선수가 22명에서 23명으로 늘어난 건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이다. 이전까지는 22인으로 월드컵 로스터가 정해져 있었다. 즉 등번호 23번이 등장한 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그런 관계로 골닷컴에서 제공하는 등번호 특집 칼럼에서 등번호 23번은 제외했다).

상당수의 경우 등번호 1번부터 11번까지는 전통에 따라 주전 선수들이 많이 다는 번호이다. 자연스럽게 12번은 백업 골키퍼들이 즐겨 달고 있다. 지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32개국 중 무려 22개국의 골키퍼가 12번을 달았다. 

과거 12번을 단 골키퍼들 중 가장 대표적인 예로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골키퍼 세르히오 고이코체아가 있다. 그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 백업이었으나 조별 리그 2차전 소련과의 경기에서 원래 주전 골키퍼였던 네리 폼피도가 골절상을 당하는 바람에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유고슬라비아와의 8강전과 이탈리아와의 준결승전에서 연달아 승부차기 영웅으로 등극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World Cup Backnumber


# 12번의 전설 지레스와 그의 후배 톨리소

하지만 이런 전통에서 벗어나는 국가가 있다. 바로 '혁명의 나라' 프랑스다. 프랑스 혁명부터 68 혁명에 이르기까지 프랑스는 기존 관습을 깨는 데 앞장 섰다. 프랑스 혁명에서 자유와 평등, 연대를 부르짖었다면, 68 혁명에선 반체제, 반문화를 주창했다. 이런 영향 때문일까? 프랑스는 매번 월드컵 때마다 12번에 골키퍼가 아닌 다양한 선수들을 배치했다.

1954년과 1958년 월드컵에선 측면 미드필더 장-자크 마르셀이 12번을 달았고,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선 1998년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 우승 주역인 유리 조르카예프의 부친이기도 한 수비수 장 조르카예프가 12번을 달고 뛰었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선 공격형 미드필더 클로드 파피가,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선 수비형 미드필더 리오 마뷔바가 12번의 주인공이었다.

프랑스 12번 하면 가장 유명한 건 티에리 앙리일 것이다. 앙리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시작으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까지 총 4번의 월드컵에서 등번호 12번을 달고 대회에 참가했다. 비록 앙리만큼 국내 축구팬들에게 알려진 선수는 아니지만 프랑스가 자랑하는 전설적인 미드필더 알랭 지레스 역시 12번을 달고 뛰었다.

Thierry Henry Confederations Cup France 2003

지레스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프랑스 명문 보르도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추앙받고 있는 미드필더다. 실제 보르도 역대 최다 출전(587경기)과 최다 골(182골)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그는 163cm의 단신으로 '인형(Le Puppet)'이라는 애칭이 붙었으나 뛰어난 기술적인 능력에 더해 정교한 패스와 강력한 킥으로 신체 조건의 한계를 뛰어넘은 선수다. 게다가 3살 아래 후배인 '프랑스 축구 대통령' 미셸 플라티니의 등장 이후 중앙 미드필더로 보직을 변경하면서 궂은일도 도맡아 했다.

그는 1974년 9월, 폴란드와의 평가전을 통해 프랑스 대표팀에 승선했으나 단신이라는 신체상의 한계 때문에 대표팀에서 중용되지 않았다. 심지어 후배 플라티니가 등장하면서 그의 입지는 한층 더 좁아졌고, 결과적으로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승선에 실패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소속팀에서의 활약상과는 별개로 대표팀과는 크게 인연이 없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프랑스는 유로 1976과 1980에서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1978년 월드컵 본선에선 조별 리그에서 조기 탈락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플라티니 홀로 쟁쟁한 강호들을 상대로 이겨나가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에 미셸 이달고 프랑스 대표팀 감독은 1981년부터 지레스를 꾸준하게 대표팀에 뽑아서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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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주효했다. 지레스가 경기에 나서면서 플라티니는 한결 더 편하게 공격을 이끌 수 있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개막전에서 프랑스는 라이벌 잉글랜드에게 1-3으로 패했으나 지레스는 24분경 제라르 솔레르의 동점골(1-1)을 어시스트하며 성공적인 월드컵 본선 데뷔전을 치렀다. 이어진 쿠웨이트전에서 4-1 대승을 거둔 프랑스는 체코와의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1-1 무승부를 거두며 2차 조별 리그 진출에 성공했다.

2차 조별 리그부터 본격적으로 지레스의 활약이 이어졌다. 플라티니가 부상으로 결장한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 지레스는 프랑스의 공격을 진두지휘하며 1-0 승리를 이끌었다. 이어진 북아일랜드와의 경기에서 선제골과 마지막 골을 직접 넣으며 4-1 대승을 견인했다. 지레스가 프랑스의 준결승행을 이끌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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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과의 준결승전은 혈전 그 자체였다. 서독이 특급 윙어 피에르 리트바르스키의 선제골로 기선을 제압했으나 프랑스는 에이스 플라티니의 페널티 킥 동점골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후반전엔 주전 미드필더 베르나르 겡기니의 부상으로 인해 교체 투입된 파트릭 바티스통이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에서 하랄트 슈마허의 주먹에 안면을 강타 당해 들것에 실려나가는 사태가 발생했다(이는 페널티 킥이 주어졌어야 했다. 즉 오심이었다). 

연장전에서 지레스가 원맨쇼를 펼쳤다. 연장 전반 2분경 정교한 프리킥으로 마리우스 트레소의 골을 어시스트한 지레스는 후반 8분경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추가골을 넣으며 승부를 3-1로 벌려나갔다. 하지만 서독은 에이스 칼-하인츠 루메니게의 골과 클라우스 피셔의 전매특허 오버헤드 킥 골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승부차기에서 첫번째 키커로 나선 지레스는 차분하게 골을 성공시켰다. 승부차기 스코어 3-2에서 前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으로 국내 축구팬들에게도 친숙한 서독의 전설적인 수비수 울리 슈틸리케가 실축했(이는 독일이 월드컵에서 기록한 유일한 승부차기 실축으로 기록되어 있다). 프랑스 쪽으로 승리가 기우는 듯싶었다. 하지만 프랑스 4번째 키커 디디에 디디에 식스와 6번째 키커 막심 보시스의 슈팅이 모두 서독 골키퍼 슈마허의 선방에 막혔고, 결국 프랑스는 승부차기 스코어에서 4-5로 패하며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비록 서독에 의해 탈락했으나 스페인 월드컵에서 4위를 차지하면서 1958년 스웨덴 월드컵 이후 24년 만에 월드컵 준결승 무대를 밟은 프랑스는 자국에서 열린 유로 1984에서 스페인을 2-0으로 꺾고 감격적인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그 중심엔 바로 '마법의 사각형(Carre Magique)'이라는 애칭으로 불린 플라티니와 지레스, 장 티가나, 루이스 페르난데스로 이어지는 미드필더 사각 편대가 있었다.

Alain Giresse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프랑스는 아르헨티나와 함께 우승후보 1순위로 거론되고 있었다. 당시 지레스는 이미 만 33세의 베테랑으로 1982년 월드컵만한 활약상을 펼쳐보이지는 못했으나 노익장을 과시하며 매경기 소금같은 보조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플라티니와 지레스를 위시한 미드필더 사각편대의 맹활약 속에 프랑스는 승승장구했으나 이번에도 또다시 서독과의 준결승전에서 0-2로 패하며 탈락했다.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지레스는 대표팀을 떠났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프랑스 12번은 코랑탱 톨리소가 차지했다. 톨리소는 지레스와는 달리 181cm의 큰 키에 탄탄한 피지컬을 자랑한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선배 지레스처럼 뛰어난 공격력을 갖춘 미드필더다. 특히 2016/17 시즌 친정팀 올림피크 리옹에서 공식 대회 47경기에 출전해 14골을 넣으며 주가를 높였다. 이에 힘입어 그는 지난 여름, 구단 역대 최고 이적료 기록(4150만 유로, 한화로 약 520억)을 수립하며 분데스리가 명문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했다.

사실 그는 러시아 월드컵 명단에 뽑혔을 당시만 하더라도 백업 미드필더로 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5월 28일, 아일랜드와의 평가전에서 선발 출전해 맹활약을 펼치며 2-0 승리를 견인한 데 이어 이탈리아와의 평가전(6월 1일)에서도 선발 출전해 3-1 승리에 기여했다. 실제 프랑스 정론지 '레퀴프'는 2경기 모두 톨리소를 최우수 선수로 선정했다(반면 이탈리아전에 선발 출전한 포그바는 최악의 선수로 뽑혔다). 이에 프랑스 현지 언론들은 부진한 폴 포그바 대신 톨리소를 중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제 그는 A매치 6경기에 불과한 신출내기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프랑스 미드필더들 중 가장 컨디션이 좋은 건 톨리소이다. 지레스 역시 1982년 스페인 월드컵 개막전 이전까지 A매치 14경기에 불과했다. 프랑스는 에이스 앙투안 그리즈만과 포그바의 공존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고민거리다. 이를 고려하면 어쩌면 프랑스의 이번 월드컵 성패를 쥐고 있는 건 중간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톨리소일지도 모르겠다. 그가 위대한 보조자 지레스의 역할을 재연해야 한다.

Corettin Tolis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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