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등번호 특집] 16번의 전설 라토과 그의 후배 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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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서 등번호가 달리기 시작한 건 192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이전까지는 축구에 등번호 자체가 없었다. 그마저도 월드컵에서 처음 도입된 건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였다. 당시엔 고정된 등번호가 아닌 선발 출전하는 선수에게 해당 경기마다 1번부터 11번의 등번호를 달고 출전하는 형태였다.

결국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이르러서야 지금처럼 선수 고유의 등번호를 가지고 경기에 나섰다. 이를 기점으로 등번호는 제각각의 의미를 띄기 시작했다. 몇몇 선수들은 특정 등번호를 통해 개인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월드컵 참가 선수가 22명에서 23명으로 늘어난 건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이다. 이전까지는 22인으로 월드컵 로스터가 정해져 있었다. 즉 등번호 23번이 등장한 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그런 관계로 골닷컴에서 제공하는 등번호 특집 칼럼에서 등번호 23번은 제외했다).

상당수의 경우 등번호 1번부터 11번까지는 전통에 따라 주전 선수들이 많이 다는 번호이다. 그 중에서 16번은 미드필더들이 많이 다는 번호이다.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다니엘레 데 로시(이탈리아)를 비롯해 세르히 부스케츠(스페인), 하미레스(브라질), 조르디 클라시(네덜란드), 하울 메이렐레스(포르투갈), 기성용(대한민국) 같은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이 번호를 달았다. 

다만 유난히 아프리카 골키퍼들은 16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브라질 월드컵에선 아프리카 5개국 골키퍼들이 모두 16번을 달았고,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모로코를 제외한 4개국 아프리카 골키퍼들이 16번을 선택했다. 

World Cup Back Number


# 등번호 16번의 전설 라토와 그의 후배 브와슈치코프스키

하지만 통상적으로 16번을 다는 수비형 미드필더나 아프리카 골키퍼를 제외한 포지션에서 16번을 다는 케이스도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축구 선수는 바로 1970년대와 80년대 유럽 축구계를 호령하던 폴란드의 전설 그제고시 라토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은 폴란드가 축구에서 그리 유명한 국가가 아니지만, 사실 폴란드는 1970년대부터 80년까지 유럽 축구계를 호령하던 강호였다. 실제 폴란드는 1974년 서독 월드컵부터 1986년 멕시코 월드컵까지 4회 대회 연속 본선에 진출했고, 이 중 2회 대회에서 3위(1974년과 1982년)를 차지하는 괴력을 과시했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도 2차 조별 리그에 진출해(당시엔 1차 조별 리그와 2차 조별 리그 형태로 월드컵 본선이 진행됐다) 5위를 차지했다. 이 기간에 폴란드만큼 꾸준하게 호성적을 거둔 국가는 서독과 브라질, 그리고 아르헨티나 밖에 없었다.

그 중심에 바로 라토와 카지미에시 데이나, 브와디슬라프 츠무다, 그리고 지비니에프 보니엑이 있었다. 이들은 폴란드 역대 A매치 최다 출전 10위 이내에 드는 전설적인 선수들로 폴란드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이 시기에 폴란드 역대 A매치 최다 골 2위(1위는 현역 폴란드 주장이자 간판 공격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다) 브워지미에시 루반스키도 있었으나 그는 잦은 부상으로 인해 월드컵 1회 참가가 전부였다. 

라토는 폴란드 역대 A매치 최다 출전 2위와 최다 골 3위를 기록 중인 선수로 빠른 스피드와 득점력을 갖춘 측면 미드필더였다. 만 24세의 나이로 처음 참가한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그는 무려 7골을 넣으며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Grzegorz Lato Poland

아르헨티나와의 개막전에서 2골 1도움을 올리는 괴력을 과시하며 3-2 승리를 견인한 그는 이어진 아이티와의 경기에서도 2골 1도움을 기록했다(7-0 승). 스웨덴과의 2차 조별 리그 첫 경기에서 팀의 유일한 골을 넣으며 1-0 승리의 주역으로 떠오른 그는 유고슬라비아와의 경기에서 천금같은 결승골과 함께 2-1 승리를 이끌었다. 비록 폴란드는 개최국 서독에게 0-1로 패했으나 브라질과의 3, 4위전에서 또 다시 라토가 팀의 유일한 골을 넣으며 1-0 승리를 선사했다. 데이나의 환상적인 플레이메이킹과 만 20세 신성 수비수 츠무다의 탄탄한 수비의 뒷받침 속에서 라토가 귀중한 골들을 넣어주었기에 폴란드는 3위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릴 수 있었다.

1978년 월드컵에서도 라토의 활약상은 이어졌다. 비록 서독과의 개막전에선 침묵했으나 튀니지와의 1차 조별 리그 2라운드에서 유일한 골을 넣으며 1-0 승리를 견인했다. 멕시코와의 1차 조별 리그 최종전에선 선제골을 어시스트하며 2차 조별 리그 진출을 이끌었다. 비록 2차 조별 리그에서 폴란드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 패해 1승 2패(1승은 페루에게 거둔 것이었다)로 탈락했으나 라토는 2차 조별 리그 3경기에서도 팀이 기록한 2골에 모두 관여하며(1골 1도움)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그는 만 32세에 접어든 베테랑임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전경기에 모두 풀타임을 소화하는 괴력을 과시했다. 비록 파괴력은 예전만 못했으나 그는 1차 조별 리그 최종전 페루와의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올리며 5-1 승리를 선사해 첫 2경기에서 모두 0-0 무승부에 그치며 탈락 위기에 직면한 폴란드를 구해냈다. 벨기에와의 2차 조별 리그 첫 경기에서도 그는 2도움을 올리며 3-0 승리의 중심축 역할을 담당했다. 

1982년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그는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고, 여전히 츠무다와 보니엑이 남아있었음에도 폴란드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16강에 만족해야 했다. 1974년과 1982년 월드컵 3위와 1978년 월드컵 5위를 차지한 폴란드라는 점을 고려하면 다소 아쉬운 성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는 라토의 부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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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월드컵 이후 폴란드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부터 1998년 프랑스 월드컵까지 3개 대회 연속 본선 진출에 실패하며 암흑기를 보냈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라토가 지배하던 황금기를 제외하고는 월드컵과 인연이 거의 없다시피 한 폴란드였다. 그나마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06년 프랑스 월드컵에 연달아 본선 진출에 성공했으나 모두 32강 조별 리그에서 조기 탈락했다. 그 중에서도 오랜만에 월드컵 무대를 밟았던 2002년 월드컵에선 개최국 한국과의 개막전에서 0-2 완패를 당했다.

이후 다시 폴란드는 월드컵 본선 진출에 연달아 실패했으나 그나마 유로 2008과 유로 2012, 그리고 유로 2016에 연달아 참가하며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유로 2016에선 8강에 진출해 종합 성적 5위를 차지하며 서서히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고 있다. 

간판 공격수 레반도프스키를 중심으로 카밀 글리크와 그르제고슈 크리호비악, 카밀 그로시츠키, 피오트르 지엘린스키 같은 선수들이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차근차근 성적을 끌어올리고 있는 폴란드이다. 이에 힘입어 폴란드는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스페인과 잉글랜드, 콜롬비아, 우루과이, 크로아티아 같은 쟁쟁한 팀들을 제치고 1번 시드를 획득했다. 라토 시대 이후 대표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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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초석을 마련한 선수가 바로 베테랑 측면 미드필더로 라토의 등번호 16번을 계승한 야쿱 브와슈치코프스키다. 애칭 쿠바로 더 자주 불리는 브와슈치코프스키는 만 32세 베테랑으로 폴란드가 힘든 시기를 보내던 2000년대 중반부터 팀의 공격을 이끄는 선수였다. 그가 절친 우카시 피슈첵과 함께 폴란드를 지탱해 주었기에 레반도프스키 같은 후배들이 부담감을 다소 덜어낸 채 대표팀에서 자리를 잡아갈 수 있었다.

사실 쿠바에겐 그의 나이 만 10세에 불과했던 어린 시절 알콜 중독자였던 부친이 모친을 살해하는 모습을 목격한 아픈 가정사가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할머니와 삼촌의 손에 길러졌다. 하지만 시련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했던가? 그 누구보다도 더 강인한 정신력을 갖춘 그는 각종 크고 작은 부상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과 유로 2008 본선을 앞두고 부상을 당해 아쉽게 연달아 탈락의 고배를 마셨음에도 그는 더 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자국에서 열리는 유로 2012 본선 개막전을 앞두고 부친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그 동안 인연을 끊고 살았던 그는 부친 장례식에 참석하느라 다소 늦게 대표팀에 합류했음에도 러시아와의 조별 리그 2차전에서 폴란드가 기록한 대회 첫 골을 직접 장식했다. 비록 2013년에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대형 부상을 당한 이후 과거의 폭발적인 스피드가 사라졌으나 그의 강인한 정신력은 폴란드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현재 팀의 주장 자리는 쿠바에서 레반도프스키로 넘어갔으나 여전히 폴란드의 실질적인 주장은 쿠바이다.

Jakub Błaszczykowski vs Russia

게다가 그는 큰 경기에 강한 면모를 자랑하고 있다. 그는 자국에서 열린 유로 2012 본선 조별 리그 3경기에서 1골 1도움을 올리며 폴란드가 기록한 2골을 모두 만들어냈다. 8강전에 진출한 지난 유로 2016에서도 그는 북아일랜드와의 개막전에서 2골 1도움과 함께 팀이 기록한 4골 중 3골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 '주포' 레반도프스키의 부진 속에서도 폴란드가 8강에 진출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쿠바 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고로 쿠바는 A매치 97경기로 데이나와 함께 폴란드 역대 최다 출전 공동 3위에 올라있다. 이제 3경기만 더 출전하면 라토(A매치 100경기)와 함께 공동 2위로 올라선다. 게다가 2경기에 더 출전하면 미할 제브와코프(102경기)와 함께 폴란드 역대 A매치 최다 출전 선수로 등극한다. 전설들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는 쿠바이다.

현 폴란드 대표팀 선수들 중 월드컵 경험이 있는 선수는 전무하다. 이는 1974년 월드컵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12년 만에 월드컵 무대로 돌아온 폴란드가 1번 시드 팀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선 쿠바가 마지막 불꽃을 불태울 필요성이 있다.

Grzegorz L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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