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stiano Ronaldo & Luis FigoGetty Images

[월드컵 등번호 특집] 특급 윙어의 계보, 7번 피구와 호날두

축구에서 등번호가 달리기 시작한 건 192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이전까지는 축구에 등번호 자체가 없었다. 그마저도 월드컵에서 처음 도입된 건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였다. 당시엔 고정된 등번호가 아닌 선발 출전하는 선수에게 해당 경기마다 1번부터 11번의 등번호를 달고 출전하는 형태였다.

결국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이르러서야 지금처럼 선수 고유의 등번호를 가지고 경기에 나섰다. 이를 기점으로 등번호는 제각각의 의미를 띄기 시작했다. 몇몇 선수들은 특정 등번호를 통해 개인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월드컵 참가 선수가 22명에서 23명으로 늘어난 건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이다. 이전까지는 22인으로 월드컵 로스터가 정해져 있었다. 즉 등번호 23번이 등장한 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그런 관계로 골닷컴에서 제공하는 등번호 특집 칼럼에서 등번호 23번은 제외했다).

상당수의 경우 등번호 1번부터 11번까지는 전통에 따라 주전 선수들이 많이 다는 번호이다. 그 중에서도 7번은 측면 미드필더들이 많이 다는 번호다. 이전엔 중앙 공격형 미드필드나 세컨톱(이선 공격수)을 두는 전술이 유행이었기에 10번이 에이스 번호였으나 요새는 허리를 강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측면 쪽에 에이스들이 배치되는 경향성이 강해지고 있다. 

특히 레알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같은 유명 구단들은 에이스가 7번을 단 적이 많다. 그 중에서도 맨유는 조지 베스트와 에릭 칸토나, 데이빗 베컴 같은 구단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스타 플레이어들이 7번을 달고 뛰었다. 자연스럽게 최근 들어 공격 쪽에서 뛰는 선수들이 10번과 함께 가장 선호하는 번호가 바로 7번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맨유와 레알에서 모두 7번을 달고 뛰고 있는 포르투갈의 보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이다.

World Cup Backnumber박성재 디자이너


# 7번의 전설 피구와 그의 후배 호날두

국가로 따지자면 포르투갈이 윙어(측면 미드필더)의 천국이다. 과거에도 주제 아우구스투와 안토니우 시몽이스, 페르난두 샬라나, 파울루 푸트레 같은 전설적인 윙어들이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포르투갈이 윙어 천국으로 발돋움하게 된 계기를 마련한 건 바로 루이스 피구의 등장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피구 이후 시망 사브로사와 히카르두 콰레스마를 거쳐 현재 무수히 많은 특급 윙어들이 포르투갈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포르투갈은 1989년과 1991년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2연패를 달성하며 '골든 제너레이션(황금 세대)'을 구축했다. 그 중심에 있었던 게 바로 피구와 마누엘 루이 코스타, 파울루 소사, 주앙 핀투, 페르난두 쿠투였다.

사실 포르투갈은 피구 등장 이전까지는 메이저대회와 그리 인연이 있는 국가가 아니었다. '흑표범' 에우제비우를 중심으로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하는 괴력을 과시하긴 했으나 이후 포르투갈의 메이저 대회 참가는 유로 1984(준결승)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이 전부였다(그마저도 조별 리그에서 조기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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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국제 무대와 거리가 멀었던 포르투갈은 피구가 성인 대표팀에서 주전으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메이저 대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성인 대표팀 데뷔는 1991년 20세 이하 월드컵이 끝나고 곧바로 이루어졌으나 주전으로 발돋움한 건 1994년 미국 월드컵이 끝난 이후부터였다). 

유로 1996를 통해 메이저 대회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는 포르투갈의 8강 진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오셰아노를 제외하면 모두 20대 초중반의 '골든 제너레이션' 선수들이 대표팀의 주축을 이루고 있었기에 포르투갈에 대한 기대감은 자연스럽게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에서 독일과 우크라이나에 밀려 조 3위에 그치며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절치부심한 포르투갈은 유로 2000에서 준결승에 진출하면서 명예 회복에 성공했다. 그 중심엔 바로 피구가 있었다. 피구는 4경기에 출전해 1골 3도움을 올리며 포르투갈의 준결승행을 견인했다. 비록 준결승전에선 프랑스에게 연장 접전 끝에 논란성 핸드볼 판정으로 페널티 킥을 허용하면서 1-2로 아쉽게 패했으나 피구라는 이름을 전세계 축구팬들에게 강하게 각인시키기엔 충분했다. 유로 2000에서의 활약상에 힘입어 피구는 발롱 도르를 수상하며 축구 선수로서는 최고의 위치에 올라섰다.

Luis Figo PortugalGetty

피구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에서 9경기에 출전해 6골을 넣으며 포르투갈을 12년 만에 월드컵 무대로 이끌었다. 피구 개인에게 있어서도 감격적인 첫 월드컵 참가였다. 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 본선에서 피구는 컨디션 난조를 드러내면서 실망스러운 모습만을 남긴 채 조기 탈락의 수모를 겪어야 했다. 특히 16강 진출에 있어 분수령이었던 한국과의 경기에서 송종국에게 꽁꽁 묶이며 체면을 단단히 구겼던 피구였다.

피구가 정확하게 만 30세에 접어든 2003년, 포르투갈에선 피구의 뒤를 잇는 대형 유망주가 등장했다. 그가 바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이다. 만 18세의 어린 나이에 혜성처럼 등장한 호날두는 빠른 속도로 성인 대표팀에 자리를 잡아나갔고, 자국에서 열린 유로 2004에 피구와 함께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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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호날두는 유로 본선이 시작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주전으로 분류되지 않고 있었다. 피구와 함께 포르투갈의 양날개를 구성하고 있었던 건 호날두의 선배 시망이었다. 하지만 그리스와의 개막전(1-2 패)에서 후반 교체 투입되어 경기 종료 직전 골을 넣으며 A매치 데뷔골(이 골을 어시스트한 선수가 바로 피구이다!)을 기록한 그는 이어진 러시아와의 조별 리그 2차전에서도 교체 투입되어 경기 막판 루이 코스타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실력으로 선배 시망을 밀어내고 주전 자리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포르투갈은 호날두와 피구, 신구 날개의 활약에 힘입어 유로 2004 결승 진출에 성공했으나 그리스에게 0-1로 패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다. 그럼에도 호날두는 피구와 함께 대회 올스타 팀에 이름을 올리며 새로운 신성의 탄생을 알렸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은 피구를 중심으로 골든 제너레이션의 마지막이었기에 포르투갈에게 있어 상당히 의미가 있는 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피구는 7경기에 출전해 4도움을 올리며 마지막 불꽃을 태웠고, 호날두 역시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준결승 진출에 기여했다. 하지만 또 다시 준결승전에서 포르투갈은 프랑스의 벽에 막혀 탈락했고, 독일과의 3, 4위전에서도 1-3으로 패하며 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이를 끝으로 피구는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고, 등번호 7번은 자연스럽게 호날두가 물려받았다. 

Cristiano Ronaldo & Luis FigoGetty Images

피구와 호날두는 분명 스타일적인 면에선 차이가 있다. 피구가 도우미에 가까웠다면 호날두는 직접적으로 골을 노리는 스코어러에 더 가깝다. 게다가 이미 후배가 발롱 도르 5회와 포르투갈 역대 A매치 최다 출전에 이어 최다 골에 이르기까지 선배를 넘어선 지 오래라고 봐도 무방하다. 무엇보다도 호날두는 조국 포르투갈에 최초의 메이저 대회 우승(유로 2016)을 선사했다.

그럼에도 둘은 닮은 부분이 많다. 스포르팅 리스본 유스 출신이고, 레알에서도 뛴 경력이 있으며, 당대 최고의 측면 자원이었다(물론 현재 호날두는 사실상 공격수로 보직을 변경한 상태다). 위대한 선배들이 있기에 포르투갈은 이후에도 무수히 많은 측면 자원들을 배출하고 있다. 

포르투갈 입장에서 둘 사이의 또 다른 다소 아쉬운 공통점이 있다면 유로에서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냈으나 정작 월드컵에선 둘이 함께 뛰었던 2006년 독일 월드컵 외엔 모두 기대 이하의 성적에 그쳤다는 데에 있다. 심지어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선 조별 리그에서 조기 탈락의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2018 러시아 월드컵은 호날두에게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호날두의 연령(만 33세)을 감안하면 이번이 마지막 월드컵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호날두가 유일하게 차지하지 못한 우승 트로피는 바로 월드컵이다.  호날두에게 있어 월드컵 우승은 마지막 남은 도전이자 지상 최대의 목표이다.

Cristiano Ronaldo박성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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