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scoigne - 1990Gascoigne - 1990

[월드컵 등번호 특집] 英 특급 유망주 계보 19번 개스코인과 래쉬포드

축구에서 등번호가 달리기 시작한 건 192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이전까지는 축구에 등번호 자체가 없었다. 그마저도 월드컵에서 처음 도입된 건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였다. 당시엔 고정된 등번호가 아닌 선발 출전하는 선수에게 해당 경기마다 1번부터 11번의 등번호를 달고 출전하는 형태였다.

결국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이르러서야 지금처럼 선수 고유의 등번호를 가지고 경기에 나섰다. 이를 기점으로 등번호는 제각각의 의미를 띄기 시작했다. 몇몇 선수들은 특정 등번호를 통해 개인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월드컵 참가 선수가 22명에서 23명으로 늘어난 건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이다. 이전까지는 22인으로 월드컵 로스터가 정해져 있었다. 즉 등번호 23번이 등장한 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그런 관계로 골닷컴에서 제공하는 등번호 특집 칼럼에서 등번호 23번은 제외했다).

상당수의 경우 등번호 1번부터 11번까지는 전통에 따라 주전 선수들이 많이 다는 번호이다. 자연스럽게 12번부터는 백업들이 주로 등번호를 달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특정 스타 플레이어들 중에선 뒷번호를 더 선호하는 경우도 있고, 해당국가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 번호도 있다. 혹은 스타 플레이어들이 유망주 시절에 선배들에게 밀려 뒷번호를 달고 뛰다가 스타덤에 오르기도 한다.

19번은 9번을 달지 못한 백업 최전방 공격수 내지는 선배들에게 밀려 10번을 달지 못한 특급 유망주들이 선호하는 번호이다. 이는 18번이 '1+8=9'를 의미하듯 19번 역시 '1+9=10'을 의미하기 때문. 실제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선 리오넬 메시가 19번을 달았고, 지난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연장전 결승골의 주인공 마리오 괴체가 19번을 달고 뛰었다.

World Cup Back Number박성재 디자이너


# 잉글랜드 특급 유망주 계보... 개스코인과 그의 후배 래쉬포드

잉글랜드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잉글랜드는 대대로 속칭 '천재'라고 불리는 특급 유망주 내지는 백업 공격수들이 19번을 달고 뛰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당시의 켄 암스트롱과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당시의 레이 윌킨스를 제외하면 전원 베테랑 백업 공격수 내지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분류되는 유망주들이 19번을 달았다.

백업 공격수 계보로는 1958년 스웨덴 월드컵의 바비 스미스와 1962년 칠레 월드컵의 알란 피콕,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의 테리 페인,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의 레스 퍼디난드, 그리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저메인 데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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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잉글랜드 특급 유망주가 등번호 19번을 단 건 1970년 멕시코 월드컵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추앙받고 있는 공격형 미드필더 콜린 벨이 그 주인공이다. 만 24세의 나이에 1970년 월드컵에 19번을 달고 참가한 그는 3경기에 출전하며 잉글랜드의 8강 진출에 기여했다(하지만 그는 서독과의 8강전에서 잉글랜드 에이스 바비 찰튼을 대신해 교체 투입됐고, 이후 경기가 뒤집히면서 잉글랜드 언론들과 팬들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맞아야 했다).

1986년 월드컵에선 특급 윙어 존 반스가 19번의 바통을 물려받았다. 당시 반스의 나이는 만 22세였기에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으나 아르헨티나와의 8강전에 마침내 교체 출전 기회를 얻은 그는 경기 종료 9분을 남기고 게리 리네커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성공적인 월드컵 데뮈 무대를 가졌다. 아직까지도 잉글랜드는 반스 이후 확실한 왼쪽 측면 미드필더 부재에 시달리고 있다. 이것이 잉글랜드 언론들이 반스의 후계자가 없다며 웨일스의 전설적인 윙어 라이언 긱스를 귀화시키지 못한 걸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이유이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선 반스가 11번으로 등번호를 갈아타면서 19번의 자리는 폴 개스코인에게로 돌아갔다. 게스코인은 잉글랜드 축구사를 통틀어 가장 천재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선수로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잉글랜드 선수의 특징에서 벗어난 창의성을 갖춘 선수임과 동시에 알콜 중독에 빠진 괴짜였다. 참고로 그의 애칭은 '개짜(Gazza)'로 웨인 루니가 '와짜(Wazza)'라는 애칭으로 불린 이유 역시 개스코인에 비교해서 붙은 것이다.

Paul Gascoigne vs Belgium

1990년 월드컵은 잉글랜드에게 있어 개스코인이라는 스타를 배출한 대회로 회자되고 있다. 아일랜드와 네덜란드로 이어지는 월드컵 조별 리그 1, 2차전에서 잉글랜드는 모두 무승부에 그쳤으나 이집트와의 최종전에서 개스코인의 프리킥을 수비수 마크 라이트가 헤딩골로 연결하면서 1-0으로 승리해 탈락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어진 벨기에와의 16강전에서도 개스코인의 프리킥은 빛을 발했다. 정규 시간이 모두 끝나고 연장전 전후반도 끝나가는 시점에 개스코인의 프리킥을 데이빗 플랫이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1-0으로 승리하며 8강에 진출한 잉글랜드였다. 

카메룬과의 8강전과 서독과의 준결승전에선 비록 공격 포인트를 올리진 못했으나 연신 위협적인 돌파를 선보이며 잉글랜드 공격을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서독과의 승부차기에서 선축이었음에도 스튜어트 피어스와 크리스 워들이 연달아 실축하며 탈락했다. 이에 개스코인은 유니폼을 입을 덮을 정도로 끌어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이는 아직까지도 월드컵 역사의 한 장면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래도 잉글랜드는 4위를 차지하며 자국이 아닌 원정 월드컵 역대 최고 성적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잉글랜드 국민들은 개스코인의 눈물에서 그의 열정을 느꼈고, 그의 활약에서 희망을 보았다. 그러하기에 잉글랜드에선 1990년 월드컵이 끝나고 개스코인 열풍이 불면서 기하급수적으로 그의 열성 팬이 쏟아져 나왔다. 이를 가리켜 '개자매니아(Gazzamania)'라고 지칭했다.

Gascoigne - 1990Getty

하지만 영광의 순간은 잠시, 그는 토트넘 핫스퍼 소속으로 노팅엄 포레스트와의 1990/91 시즌 FA컵 결승전에 선발 출전했으나 17분경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끔찍한 부상을 당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재활 훈련 기간이었던 1991년 말, 그는 나이트클럽에서 사고를 당해 무릎을 다치면서 16개월 뒤에나 그라운드에 복귀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알콜 중독에 비만까지 겹치면서 급격하게 하향세를 탔다. 영웅의 몰락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선 잉글랜드가 낳은 새로운 천재가 19번을 달았다. 바로 그 주인공은 조 콜. 하지만 당시 그는 만 20세의 어린 선수였기에 스웨덴과의 개막전 16분 출전이 전부였다. 

그래도 콜은 11번으로 등번호를 변경하고 치른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대표팀 주전으로 뛰면서 스웨덴과의 32강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환상적인 드롭 슈팅으로 골을 넣는 등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당시 19번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 최연소 출전 기록자(만 16세 129일)로 유명세를 떨쳤던 측면 미드필더 아론 레넌이었다. 레넌은 3경기에 교체 출전하며 쏠쏠한 백업 역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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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브라질 월드컵에선 2014년 골든 보이(21세 이하 축구 선수들 중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부여하는 상)를 수상한 잉글랜드 특급 유망주 라힘 스털링이 19번을 달았다. 스털링은 32강 조별 리그 3경기에 모두 출전했으나 정작 잉글랜드는 코스타리카와 우루과이에게 밀려 이탈리아와 함께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선 스털링이 등번호 10번으로 갈아탔다. 이와 함께 19번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자랑하는 특급 유망주 마커스 래쉬포드에게로 넘어갔다. 

Marcus Rashford Raheem Sterling EnglandGetty

측면 공격수와 최전방 공격수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그는 이제 만 20세로 19번을 달았던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팀 내 최연소에 해당한다(레넌과 스털링은 막내는 아니었으나 팀 내 2번째로 어린 선수로 만 19세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데뷔전의 사나이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실제 2016년 2월 25일, 미트윌란과의 유로파 리그 데뷔전에서 2골을 넣으며 화려한 프로 무대 데뷔 무대(3-0 승)를 가진 래쉬포드는 3일 뒤에 열린 아스널과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데뷔 경기에서도 2골 1도움을 올리며 3-2 승리를 홀로 이끌어냈다. 이에 더해 그는 2016년 9월 21일, 노스햄턴 타운과의 리그 컵 데뷔전에서도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3-1 승리를 견인했다. 이어서 2017년 9월 12일, 바젤과의 경기에서도 골을 넣으며 챔피언스 리그 데뷔전도 성공적으로 치렀다.

래쉬포드의 데뷔골 행진은 비단 소속팀 맨유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그는 2016년 5월 27일, 호주와의 평가전에서 경기 시작 3분 만에 골을 넣으며(2-1 승) 성인 대표팀에서도 데뷔전의 사나이라는 걸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적어도 데뷔전만 놓고 보면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잉글랜드는 그 동안 명성 대비 성적이 나오지 않는 팀으로 오명을 떨치고 있었다. 실제 우승을 차지했던 자국 월드컵과 개스코인이 혜성처럼 등장했던 1990년 월드컵을 제외하면 모두 실망스러운 성적에 그쳤다. 하지만 무서운 신예 래쉬포드가 월드컵 본선 데뷔 무대에서 데뷔골 기록을 이어나간다면 잉글랜드는 러시아 월드컵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릴 수 있다. 현 잉글랜드 대표팀 막내지만 그는 단순한 막내 그 이상의 비중을 가지고 있다.

Marcus Rashf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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