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등번호 특집] 멀티플레이어의 계보, 6번 유상철과 박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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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까지 17일 남았다. 세계인의 축구 네트워크 골닷컴은 월드컵 디데이에 맞춰 과거 해당 번호를 대표했던 전설과 이번 월드컵에서 이를 계승할 후계자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다(번호는 디데이의 역순).

[골닷컴] 서호정 기자 = 축구에서 등번호가 달리기 시작한 건 192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이전까지는 축구에 등번호 자체가 없었다. 그마저도 월드컵에서 처음 도입된 건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였다. 당시엔 고정된 등번호가 아닌 선발 출전하는 선수에게 해당 경기마다 1번부터 11번의 등번호를 달고 출전하는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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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이르러서야 지금처럼 선수 고유의 등번호를 가지고 경기에 나섰다. 이를 기점으로 등번호는 제각각의 의미를 띄기 시작했다. 몇몇 선수들은 특정 등번호를 통해 개인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월드컵 참가 선수가 22명에서 23명으로 늘어난 건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이다. 이전까지는 22인으로 월드컵 로스터가 정해져 있었다. 즉 등번호 23번이 등장한 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그런 관계로 골닷컴에서 제공하는 등번호 특집 칼럼에서 등번호 23번은 제외했다).

등번호 1번부터 11번까지는 전통에 따라 주전 선수들이 많이 다는 번호지만 6번은 예외다. 수비수와 미드필더의 경계에 있는 애매한 번호다. ‘수비적’이라는 큰 이미지는 있지만, 특정 포지션이나 특별한 레전드의 이미지로 형상화 되지는 않는다. 비주전이 다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는 예외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주역인 유상철 덕분이다. 그가 단 6번은 다재다능하다는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줬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박주호가 그 뒤를 잇는다

#멀티플레이어 6번 유상철, 그 계보를 잇는 박주호
거스 히딩크 감독 부임 전까지 유상철은 애매한 선수로 평가받았다. 못하는 게 없지만 딱히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팬들의 지적이 많았다. 황선홍의 뒤를 이어 가장 많은 안티 팬들을 거느린(?) 선수가 되기도 했다. 너무 강하게 찬 슛이 골대를 넘으면 ‘홈런왕 유상철’이라는 비아냥을 들었고, 나중에는 그것을 패러디한 ‘홈런왕 유상철: 히딩크를 구해줘!’라는 플래시게임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그 못하는 것 없는 유상철은 다재다능한 선수로 재발견됐다. 3-4-3 전형을 중심으로 상대에 따라 교체 카드로 다양한 변화를 추구한 히딩크 감독에게 유상철은 전술적 변속기어였다. 중앙 미드필더부터 센터백, 때로는 윙백까지 볼 수 있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과거 K리그에서 득점왕(1998년, 23경기 15골), J리그에서 득점 3위(2000년, 22경기 17골)를 기록한 공격력도 있었다. 

유상철의 이런 진가를 처음 주목한 것은 차범근 감독이었다. 1994년 울산 현대 입단 당시 차범근 감독은 유상철이 가진 훌륭한 하드웨어와 다양한 장점을 주목했다. 향후 유럽 진출이 가능할 선수라는 평가도 내렸다. 1997년 차범근 감독이 국가대표팀에 부임하면서 유상철 역시 자연스럽게 핵심 자원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상황에 따라 스토퍼, 윙백, 중앙 미드필더를 오갔다. 프랑스 월드컵 당시 유상철의 주 포지션은 파이브백에서 오른쪽 윙백이었고, 경기가 수세에 몰리면 전진해 공격에 가담했다.

한일 월드컵에서 유상철은 경험으로 쌓은 시야, 위치 선정에 과거보다 정교해진 볼 배급 능력으로 기존 장점들과 시너지 효과를 냈다. 히딩크 감독은 유상철과 김남일의 하드웨어, 수비력, 활동량으로 치열한 중원 싸움을 걸었다. 김남일이 상대 핵심 선수를 견제하며 수비적인 밸런스에 초점을 맞춘다면 유상철은 중거리 패스와 과감한 슛으로 공격을 도왔다.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유상철은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였다. 황선홍의 선제골로 기선을 제압한 뒤 한국은 강한 중원 장악력을 바탕으로 상대를 몰아쳤다. 후반 8분 폴란드의 수문장 예지 두덱의 손을 뚫고 골망을 가른 유상철의 중거리슛은 승부에 쐐기를 박은 추가골이었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은 멀티플레이어 유상철의 진가가 발휘된 경기였다. 히딩크 감독은 0-1로 이탈리아에 끌려가자 후반 중반부터 공격적인 교체를 감행했다. 김태영 대신 황선홍을, 김남일 대신 이천수를, 홍명보 대신 차두리를 잇달아 투입했다. 유상철이 있어서 가능한 3단 변신이었다. 김태영 대신 스리백의 스토퍼를 보던 유상철은, 김남일이 나가자 홀로 중앙 미드필더를 봤고, 마지막에는 홍명보가 빠지자 최진철과 함께 센터백에 섰다. 단기전에서 감독이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기둥이었다. 

홍명보와 함께 대회 베스트XI에도 선정된 유상철은 꿈이었던 유럽 진출을 노렸지만, 30살이라는 나이와 에이전트 문제로 토트넘, 풀럼과의 입단 계약이 막판에 좌절됐다. 하지만 박지성, 안정환과 함께 월드컵 두 대회 연속 골을 기록한 선수로 역사에 남아 있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유상철과 같은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선수는 박주호다. 공교롭게 유상철이 K리그에서 뛴 유일한 클럽인 울산 현대 소속인 그는 대표팀에서 6번을 꾸준히 달아왔다. 체격조건은 차이가 크지만 다양한 포지션(풀백, 수비형 미드필더, 윙어)을 소화하고 강력한 중거리 슛 한방을 지녔다는 점은 유상철의 후계자가 될 요소다. 

무엇보다 신태용 감독에겐 전술적으로 중요한 열쇠가 될 선수다. 손흥민, 기성용, 장현수와 같은 핵심의 위상은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박주호가 다양한 역할을 맡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유럽 원정 평가전을 통해 대표팀에 복귀한 그는 기성용의 파트너로서 수비형 미드필더를 봤다. 활동량이 많고, 위치 선정이 좋아서 공격 가담 비중이 커지는 기성용의 뒤를 커버해 줄 수 있는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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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풀백도 박주호가 늘 준비해야 할 포지션이다. 일본과 유럽 무대에서는 주로 그 포지션을 소화해 왔고, 이번 대회에서 신태용호의 취약 포지션 중 하나기 때문이다. 2002년의 유상철처럼 경기 중 두 포지션 이상을 소화하며 팀을 돕는 장면이 나올 가능성도 높다. 

박주호에게 월드컵은 간절한 무대다. 지난 브라질 월드컵에 천신만고 끝에 최종 명단에 들었지만 단 1경기도 뛰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도 소속팀 출전 문제로 명단에 들지 못할 위기를 맞았지만, 자신이 유럽 생활을 정리하고 K리그로 돌아오는 결단을 내리며 막판에 극적인 반전을 만들었다. 만 31세에 월드컵 본선 데뷔를 꿈 꾸는 박주호의 그 간절함이 ‘통쾌한 반란’을 꿈꾸는 신태용호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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