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한만성 기자 = 오히려 골을 넣으며 이날 90분간 선보인 완성도 높은 경기력은 그림자에 가린 것 같아 아쉬울(?) 정도다. 루빈 카잔 미드필더 황인범(24)이 올 시즌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였다.
황인범이 선발 출전한 루빈 카잔은 16일 새벽 2시(이하 한국시각) 크릴리아 소베토프를 상대한 2021/22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4라운드 홈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거뒀다. 루빈 카잔은 홈에서 선제골을 헌납하는 등 고전을 펼치며 끝내 승점 1점을 추가하는 데 만족해야 했지만, 시즌 초반 리그 1위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인 제니트 역시 이날 로코모티브 모스크바 원정에서 1-1로 비기며 선두권과 격차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는 올 시즌 네 경기를 마친 현재 제니트와 루빈 카잔이 나란히 승점 10점, 골득실 +10으로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득점에서 네 골 차로 앞선 제니트가 루빈 카잔에 근소한 차이로 1위를 달리고 있다.
루빈 카잔의 핵심 중앙 미드필더 황인범은 이날 선발 출전해 90분 풀타임 활약했다. 그는 최근 1~2주간 가벼운 다리 부상과 유럽대항전 예선에 대비하느라 출전 시간을 조절한 탓에 지난달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전 이후 약 3주 만에 풀타임을 소화했다. 단, 황인범은 지난 13일 라코프 체스토호바와의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3차 예선 2차전 경기에서 연장전을 포함해 106분간 활약한 데 이어 3일 만에 90분을 뛰었다.
# 팀 뉴스: 최다 득점자, 팀 공격 에이스 빠진 루빈 카잔
레오니드 슬러츠키 루빈 카잔 감독은 이날 황인범을 4-1-2-3 포메이션의 '2'에 해당하는 중앙 미드필더로 배치했다. 올레그 샤토프가 황인범과 조합을 이루며 그와 수시로 위치를 바꿔가며 상대를 공략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올리버 아빌고르가 황인범과 샤토프의 뒤를 받쳤으며 수비라인은 좌우 측면에 일리아 사모슈니코프, 게오르기 조토프가 각각 배치됐고, 주장 필립 우레모비치와 실비예 베기치가 중앙 수비수로 활약했다.
루빈 카잔의 공격 삼각편대는 지난 시즌부터 팀 내 최다 득점자로 활약한 조르제 데스포토비치가 부상으로 명단에서 제외됐고, 실질적인 공격진의 '에이스'인 2선 공격수 크비차 크바라츠켈리아가 주중 연장 승부를 소화하며 체력적인 부담을 안고 있는 점을 고려해 벤치에서 대기하며 팀 전력에 차질이 있었다. 대신 그동안 주전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활약한 세아드 하크샤바노비치가 왼쪽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백업 공격수 미하일 코스튜코프가 최전방 공격수, 솔트무라드 바카에프가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선발 출전했다.
과거 오범석이 몸담은 팀이자 현재 이고르 온신킨 감독이 이끄는 크릴리아 소베토프는 강한 압박에 초점을 맞춘 플랫 4-4-2 포메이션으로 맞섰다. 수비 시 플랫 4-4-2, 공격 시 4-2-2-2로 유동적인 포메이션 변화를 꾀한 크릴리아 소베토프는 중앙 미드필더 드미트리 이바니세냐(27)가 주로 허리 싸움에서 황인범과 맞붙었다. 지난 2019년 우크라이나 대표팀 데뷔전을 치른 이바니세냐는 올여름 자국 리그를 떠나 러시아 무대에 도전장을 내민 중앙 미드필더다. 또한, 크릴리아 소베토프는 올림피크 리옹 출신 알제리 대표팀 측면 수비수 메흐디 제파네(29)가 이날 선발 출전했다.
이날 황인범에게 프리킥으로 실점한 크릴리아 소베토프 골키퍼 이반 로마에프(22)는 올여름 21세 이하 유럽 챔피언십에 출전한 러시아 연령별 대표 출신 수문장이다. 시즌 초반 3연패를 당한 크릴리아 소베토프는 3연승 행진을 달리던 루빈 카잔을 상대로 여러 차례 위협적인 역습을 선보이며 선제골을 넣는 등 선전한 끝에 올 시즌 첫 승점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 경기 요약: 황인범의 능숙한 경기 운영, 주전급 선수 두 명 빠진 공격진 부진이 아쉬웠다
점유율은 루빈 카잔이 57.5%로 우위를 점했지만, 더 날카로운 공격을 펼친 쪽은 크릴리아 소베토프였다. 실제로 유효슈팅은 크릴리아 소베토프가 4회로 루빈 카잔(2회)보다 앞섰다. 루빈 카잔은 황인범이 수비라인 바로 앞자리와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를 오가며 유려한 경기 운영 능력을 선보였으나 붙박이 주전이 두 명이나 선발 명단에서 제외된 공격진이 결정적인 득점 기회로 이어질 만한 상황을 만들지 못했다.
결국, 선제골은 원정팀 크릴리아 소베토프의 차지였다. 크릴리아 소베토프는 59분 측면 미드필더 안돈 지노프스키가 백힐로 페널티 지역을 향해 연결한 패스를 공격수 이반 세르게예프가 루빈 카잔 골키퍼 유리 듀핀과의 1대1 상황에서 침착한 마무리로 득점하며 선제골을 터뜨렸다. 루빈 카잔은 주중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3차 예선 2차전에서 충격패를 당한 데 이어 러시아 리그에서 올 시즌 첫 패배를 당할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분위기가 크릴리아 소베토프 쪽으로 완전히 기울기 전 루빈 카잔을 구한 주인공은 황인범이었다. 루빈 카잔 왼쪽 풀백 사모슈니코프가 오버래핑 후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던 중 왼쪽 측면 페널티 지역 바깥쪽에서 프리킥을 얻어냈다. 키커로 나선 황인범은 상대 수비가 문전에 진을 친 데다 프리킥 위치와 골문의 각도를 고려할 때 간접 세트피스를 시도할 가능성이 커 보였다. 그러나 그는 반대쪽 포스트 안쪽을 향해 날카로운 감아차기를 시도했고, 원바운드된 볼은 상대 골키퍼 로마에프의 타이밍을 절묘하게 빼앗으며 그대로 골망을 갈랐다. 올 시즌 2호골을 터뜨린 황인범은 벤치로 달려가 슬러츠키 감독을 껴안으며 기쁨을 나눴다.
이후 양팀은 이렇다 할 득점 기회를 만들지는 못한 채 경기를 1-1 무승부로 마무리했다.
SofaScore그림: 황인범의 크릴리아 소베토프전 히트맵
# 황인범 in 점유 PHASE: 빌드업 시 후방에서 패스 연결의 시작점, 공격 시 파이널 서드 진입하는 왕성한 활동량 선보여
루빈 카잔의 팀 전술은 볼을 점유한 국면(possession phase)에서 황인범의 패스 연결과 움직임에 따라 공격 전개 방식이 설정된다. 황인범은 이날 팀이 후방에서 공격을 풀어가는 빌드업 상황에서는 수비라인 사이, 혹은 바로 앞자리까지 내려와 발밑에 볼을 두고 경기를 지휘했다.
황인범은 11분 후방 빌드업 상황에서 최후방까지 내려와 볼을 잡은 뒤, 상대 페널티 지역으로 침투하는 오른쪽 측면 공격수 바카에프를 향해 정확한 롱볼을 연결했다. 뒷공간을 열어준 황인범의 날카로운 패스를 받은 바카에프는 상대 수비수 알렉산드르 솔다텐코프에게 밀려 넘어지며 페널티 킥을 얻어내는듯 했으나 오프사이드가 선언되며 아쉬움을 남겼다.
이어 황인범은 54분 후방 빌드업 상황에서는 자신이 직접 볼을 몰고 하프라인을 넘어 2선으로 전진한 동료 미드필더 다르코 예프티치에세 전진 패스를 찔러넣었다. 빌드업의 시작점 역할을 해준 황인범이 연결한 패스를 받은 예프티치는 동료와의 2대1 패스 후 슈팅까지 연결하며 상대를 위협했다.
황인범은 루빈 카잔이 후방 빌드업을 거쳐 하프라인 위로 올라가면 자신도 공격 진영으로 전진해 좌우로 폭넓게 움직이며 하프스페이스에서 볼을 잡고 동료 풀백과 2선 공격수를 활용해 측면을 열어주는 역할을 맡았다. 또한, 그는 14분 오른쪽 하프스페이스 부근에서 상대 미드필더 막심 비튜고프를 제친 후 코스튜코프와 빠른 2대1 패스를 주고받은 뒤, 페널티 지역으로 진입해 문전을 파고들며 코너킥을 유도하기도 했다.
# 황인범 in 비점유 PHASE: 상대 미드필더 향한 강력한 압박, 역습 수비 시에는 측면 커버도 효과적
황인범의 왕성한 활동량은 수비 시에도 눈에 띄었다. 그는 크릴리아 소베토프가 빌드업을 시도할 때는 중원으로 볼이 투입될 때마다 상대 미드필더 이바니세냐와 거친 몸싸움을 유도하며 강력한 압박을 가했다. 이뿐만 아니라 황인범은 이날 크릴리아 소베토프가 주된 공격 패턴으로 활용한 역습 공격을 펼치면 수비 진영으로 100% 전력질주하며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 루빈 카잔 측면 수비수의 자리를 메웠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54분 황인범이 공격 진영으로 진입해 연결한 전진 패스를 받은 예프티치의 슈팅을 크릴리아 소베토프 수비진이 차단하며 속공으로 루빈 카잔을 위협한 장면이다. 황인범은 순식간에 대다수 루빈 카잔 선수들이 앞쪽으로 쏠린 상황에서 크릴리아 소베토프의 속공이 시작되자 어느새 왼쪽 측면 수비 진영으로 복귀해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는 상대 미드필더 로만 에조프를 강한 슬라이드 태클로 막아섰다.
이어 58분에도 공격적 성향이 강한 루빈 카잔 왼쪽 풀백 사모슈니코프가 상대 페널티 지역까지 진입한 상황에서 공격이 끊기자 수비 진영에서 왼쪽 측면을 커버하며 헤더로 상대의 공격을 봉쇄한 건 황인범이었다.
# 황인범 in 공수 전환 PHASE: 군더더기 없는 신속한 패스, 원터치로 공격 템포 올려줬다
빌드업의 시작점, 공격 상황 시 측면을 열여주는 역할을 맡은 황인범이 이날 시도한 패스 횟수는 총 60회다. 이 중 그의 전진 패스는 38회였다. 크릴리아 소베토프전 황인범의 전진 패스 비율은 63.3%에 달했다. 무엇보다 황인범은 중원에서 자신에게 볼이 오면 지체없이 앞쪽으로 원터치 패스를 연결하며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는 국면에서 루빈 카잔이 상대 수비를 공략하는 템포를 끌어올려줬다.
황인범은 이날 시도한 태클 5회를 모두 성공했으며 가로채기 2회를 기록했다. 황인범이 태클과 가로채기를 통틀어 상대 공격을 차단한 볼탈취 7회는 그가 지난 시즌 루빈 카잔으로 이적한 후 유럽 무대를 밟은 후 한 경기에서 기록한 개인 통산 최고 기록이다. 심지어 황인범은 이날 공중볼을 세 차례나 따내며 상대와의 볼 경합 상황에서 우위를 점했다. 이처럼 이날 황인범은 득점 외에도 전반적인 경기력의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리며 올 시즌 들어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였다.
황인범, 루빈 카잔 이적 후 단일 경기 최다 태클 + 가로채기 기록
(2021년 8월 17일 현재 기준)
7회 - vs. 크릴리아 소베토프 - 2021/22 홈
7회 - vs. 아크마트 - 2020/21 원정
5회 - vs. 스파르타크 - 2021/22 홈
5회 - vs. 제니트 - 2020/21 원정
4회 - vs. 아크마트 - 2020/21 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