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번역 : 이준영 인턴기자 = 세계인의 축구 네트워크 골닷컴은 아스날 역사상 최악의 영입을 꼽아봤다. 프란시스 제퍼스부터 데닐손까지 아스날 팬들을 뒷목 잡게 한 선수들은 누가 있을까?
아스날은 아르센 벵거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지난 20여 년 간 수많은 월드클래스 선수들과 계약해왔다. 티에리 앙리나 알렉시스 산체스처럼 북런던을 들끓게 한 영웅들이 있지만, 프란시스 제퍼스나 데닐손같이 팬들의 복장을 들끓게 한 선수들도 있다.
벵거 감독은 다가오는 17-18시즌을 대비해 또 한 번 잉여 자원들을 정리하려고 한다. 아스날이 앞으로는 이런 잘못을 범하는 횟수를 줄이는 데에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주기 위해 골닷컴은 아스날 역사상 최악의 영입 TOP 15를 선정했다.
안드레이 아르샤빈 |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 1,900만 유로 (한화 약 240억 원) | 2009
Getty안드레이 아르샤빈은 유로 2008에서의 인상적인 활약에 힘입어 팬들의 열렬한 환호와 함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 입성했다. 아르샤빈은 08-09시즌 리그 12경기에 출전해 6골과 7개 도움을 기록하며 아스날의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돕기도 했다.
클럽 레코드 이적료였던 1,500만 파운드의 금액과 안필드에서 리버풀을 침몰시킨 4개의 골은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스날 팬들의 인구에 회자된다.
그러나 기록은 잘 쌓으면서도 형편없는 경기력을 보여주는 모순적인 모습과 쉽게 지치는 체력 때문에 팬들은 서서히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아스날에서는 더는 출전시간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아르샤빈은 그제야 제니트로 복귀했다.
아마우리 비숍 | 자유계약 | 2008

아르센 벵거 감독은 이 계약을 두고 ‘도박’이라고 표현했다. 아마우리의 유서 깊은 부상 이력 때문이다. 아마우리는 심지어 제대로된 휴가를 보낸 적도 없다. 부상을 치료하고 훈련장을 돌아왔을 땐 미드필더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아마우리는 이후 골닷컴과의 인터뷰를 통해 출전시간 부족으로 아스날을 떠날 것을 결심했었다고 밝혔다. 그는 프리미어리그에서 한 시즌 동안 고작 25분 출전하는 데에 그쳤었다.
‘떠나기로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는 부상을 당했었다. 복귀한 이후에는 내 모든 것을 던져 최선을 다했지만, 남아야 할지 떠나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나는 벵거 감독과 대화를 했고, 떠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했다. 나는 1군에서 더 많은 경기를 뛰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루앙 샤막 | 자유계약 | 2010
Getty마루앙 샤막은 2010년 자유계약을 통해 보르도에서 아스날로 이적하며 창창한 미래를 그렸다. 샤막은 67경기에 출전해 14골을 넣는 데에 그치며 2013년 1월 웨스트햄으로 임대되었다.
샤막은 최근 인터뷰를 통해 벵거 감독의 대화방식에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나는 여섯 달 동안 플레이하며 골도 넣고 좋은 활약을 이어가고 있었다. 2011년 1월에 반 페르시가 돌아오면서 나는 벤치에 머물러야만 했다. 분명히 벵거에게 서운한 감정이 남아있다. 내가 받았던 것 보다는 조금 더 많은 출전시간을 보장 받았어야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해 시즌이 시작할 때 즈음에, 벵거 감독은 나에게 전술이 바뀔 예정이고 내가 반페르시 보다 조금 앞에서 뛰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데닐손 | 상파울루 | 340만 파운드 (한화 약 50억 원) | 2006
Getty Images아스날에서 150회 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데닐손은 아스날 미드필더의 새로운 스타가 되어줄 것이란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브라질 U-17팀 주장 출신 데닐손은 EPL내 수많은 경쟁자보다 신체조건이 약했고, 너무 잦은 횡패스와 백패스로 팬들을 경악케 했다.
제르비뉴 | 릴 | 1,080만 파운드 (한화 약 160억 원) | 2011
Getty Images아스날은 제르비뉴가 에덴 아자르, 요한 카바예등과 함께 프랑스 무대를 정복했을 때 그를 영입했다. 벵거 감독은 그를 나스리의 대체자로 영입했지만, 제르비뉴는 아스날에 완벽히 정착하지 못했다.
69번 출장해서 11골이라는 기록은 그가 아스날의 공격진을 이끌기엔 다소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특히 브렌트퍼드와의 리그컵 경기에서 빈 골문을 놔두고 공을 밖으로 날려버리는 모습은 그의 아스날 경력 중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순간으로 남아있다.
데이빗 그롱당 | 생테티엔 | 50만 파운드 (한화 약 7억 원) | 1998
Getty Images그롱당은 18세의 어린 나이에 생테티엔에서 아스날로 이적했지만 5년 동안 리그에는 단 한 번밖에 나서지 못했다.
그롱당은 어린 나이에 아스널이라는 큰 클럽에서 뛴다는 부담감을 이기지 못했다.
그롱당은 ‘나는 어렸다. 유명한 선수들로 가득 찬 그런 클럽에서 플레이해본 경험이 없었다. 나는 감독에게 내가 그 클럽에 남아있어야 한다고 정확하게 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프란시스 제퍼스 | 에버튼 | 800만 파운드 (한화 약 110억 원) | 2001
Getty에버튼에서 아스날로 이적한 제퍼스에게는 ‘박스 안의 여우’라는 별명이 있었다. 벵거 감독은 그를 영입한 이후 ‘우리는 반 니스텔로이와 프란시스 제퍼스 중에서 고민했다. 그리고 결국 제퍼스로 결정했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2004년 찰턴에 팔리기 전까지 그는 여러 가지 신체적인 문제점을 드러내며 단 8골만을 득점했다.
올렉 루츠니 | 디나모 키예프 | 230만 파운드 (한화 약 34억 원) | 1999

루츠니는 두 개의 FA컵과 한 개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그는 아스날에서 센터하프와 왼쪽 수비수로 활약했다.
첫 시즌 31번 출장했지만, 선발 명단에서 리 딕슨을 대체해야 하는 임무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스테판 말츠 | 1860 뮌헨 | 65만 파운드 (한화 약 9억 원) | 1999
Getty Images말츠는 1998년 아스날에 발을 들였다. 그러나 파트리크 비에라, 에마뉘엘 프티, 로베르 피레스 같은 미드필더의 반열에 오르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는 합류한 지 2년 만에 팀을 떠났고, 14번 출장에 그쳤다.
알베르토 멘데즈 | SC Feucht | 37만 유로 (한화 약 4억 원) | 1997
Getty Images니콜라스 아넬카, 에마뉘엘 프티, 마크 오베르마르스와 같은 해에 아스날에 합류한 신예 선수는 이들의 발자취를 함께 걸을 수 없었다.
아스날에서 11경기 출전한 이후 아스날에서의 커리어를 마감했다.
안드레 산투스 | 페네르바체 | 700만 유로 (한화 약 90억 원) | 2011
FC Goa Media페어 메르데자커, 요시 베나윤등과 함께 영입된 안드레 산투스는 아스날의 왼쪽 수비수 부족으로 인해 영입되었다.
산투스의 빈약한 체력과 허술한 위치선정은 언론과 팬들의 비난을 샀다. 하지만 팬들이 그에게 등을 돌린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에서 2-1로 패한 뒤 ‘무려’ 로빈 반페르시와 셔츠를 교환한 사건 이후였다.
이고스 스테파놉스 | 스콘토 FC | 130만 파운드 (한화 약 20억 원) | 2000
Getty스테파놉스는 토니 아담스의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영입되었다. 그러나 올드 트래퍼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당한 6-1 패배 이후, 그의 자신감은 바닥으로 떨어져 다시는 회복되지 못했다.
세바스티앙 스킬라치 | 세비야 | 650만 파운드 (한화 약 95억 원) | 2010
Getty아스날 수비자원의 부족을 해결해줄 자원으로 기대를 모으며 영입되었다. 하지만 수차례 수비 실수를 선보여 벵거 감독의 신임을 얻는 데에 실패했다.
스킬라치는 짤막한 아스날 생활을 정리하고 2013년에 자유 계약으로 풀렸다.
크리스토퍼 레 | AS 모나코 | 30만 파운드 (한화 약 4억 원) | 1997
Getty Images1997년 여름 아스날로 이적했다. 이안 라이트, 데니스 베르캄프, 니콜라스 아넬카등 쟁쟁한 선수들과 함께 활동했다.
아스날에서 46회 출장해 다섯 골을 넣었지만, 확고한 주전 자리를 따내는 데에는 결국 실패했다.
박주영 | AS 모나코 | 550만 파운드 (한화 약 81억 원) | 2011

벵거의 수많은 영입 중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영입이다. 박주영은 아스날의 오퍼를 접한 이후 릴과의 메디컬 테스트를 중단하고 나왔다.
박주영은 프랑스 무대에서는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던 공격수였다. 데뷔전이었던 볼턴과의 리그컵 경기에서는 득점도 기록했다. 하지만 출장시간 부족과 기량에 대한 의심은 박주영에게 채 열 경기도 뛰지 못한 채 아스날을 떠나게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