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 passes vs. ChinaAFC

손흥민을 얻은 벤투의 승부수, 변칙 4-4-1-1

[골닷컴] 한만성 기자 =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 파울루 벤투 감독이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중국을 상대로 일정 부분 해답을 찾는 데 성공했다. 한국은 측면을 파고들었으나 공격이 겉도는 느낌이 짙었던 필리핀전, 중앙으로 공격을 풀어가려 하고도 실마리를 풀지 못한 키르기스스탄전을 통해 시행착오를 겪은 뒤, 중국을 상대로 효과적인 공격 패턴을 어느 정도 완성했다.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16일(한국시각) UAE 아부다비에서 중국을 상대한 2019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C조 최종전을 2-0 완승으로 장식하며 조 1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조 1위 16강행은 한국이 목표로 한 결승전까지 가는 데 소화해야 할 이동 거리를 최소화할 수 있는 데다 2위보다 수월한 대진을 보장한다. 한국은 조 1위를 차지하며 이번 대회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 경쟁팀으로 꼽히는 이란, 개최국 이점을 안은 UAE 등을 피할 수 있게 됐다. 이 외에도 한국은 숙명의 라이벌 일본이 F조 1위로 16강에 오르면 한일전 성사 가능성까지 결승으로 미룰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이 중국전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경기력 회복이다. 벤투 감독이 한국 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하며 가장 강조한 부분은 철저한 준비를 바탕으로 후방에서 전방으로 패스가 연결되는 약속된 빌드업이다. 우선 한국은 앞선 필리핀전, 키르기스스탄전에서 답답했던 모습과 달리 중국전에서는 선발 출전한 선수 11명의 배치부터 고르게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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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g positions vs. ChinaAFC

[그림] 중국전 양 팀 평균 포지션. 한국이 노란색, 중국이 파란색. 정우영(5번)이 중앙 수비진(19번 김영권, 4번 김민재)을 보호했고, 황인범(6번)이 한 칸 앞에서 공수 조율을 맡았으며 이청용(17번)도 후진 배치돼 빌드업을 지원했다. 왼쪽 풀백 김진수(3번)가 높게 높게 올라서서 공격수 황희찬(11번)과 균형을 맞추며 최전방의 손흥민(7번)과 황의조(18번)에게 충분한 공간이 주어졌다.

이처럼 한국은 지난 두 경기에서 가동한 4-2-3-1과는 사뭇 다른 4-4-1-1 형태로 중국을 상대했다. 한국은 필리핀전, 키르기스스탄전에서 중앙에 5~6명이 오밀조밀 밀집하며 미드필더와 공격수의 자리가 겹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후방 빌드업의 시작점 역할을 맡은 정우영과 좌우 풀백 김진수(혹은 홍철), 이용이 공격을 전개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Average positionsAFC

[그림] 한국의 C조 1차전 필리핀전 양 팀 평균 포지션. 한국이 노란색, 필리핀이 파란색. 이재성(10번)과 그림에서는 그의 위치에 가려 보이지 않는 구자철은 같은 구역에 배치돼 역할 분담이 명확하지 못했고, 여기에 중앙 미드필더 정우영(5번)과 기성용(16번)은 물론 공격수 황희찬(11번)과 황의조(18번)까지 겹치며 필리핀의 밀집 수비를 뚫어낼 방법을 찾지 못했다.

Average positionsAFC

[그림] 한국의 C조 2차전 키르기스스탄전 양 팀 평균 포지션. 한국이 파란색, 키르기스스탄이 노란색. 한국은 필리핀전과 마찬가지로 정우영(5번),  이청용(17번), 황인범(6번), 구자철(13번)이 중앙 구역에 밀집되며 황희찬(11번)이 혼자 공격을 풀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고, 황의조(18번)는 고립됐다.

한국이 앞서 필리핀과 키르기스스탄을 상대한 두 경기 평균 포지션과 패스 기록만 살펴봐도 공격 작업이 얼마나 더뎠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 필리핀전 최다 패스 콤비네이션 TOP 5

24회 - 김영권이 정우영에게
22회 - 정우영이 이용에게
19회 - 이용이 정우영에게
19회 - 김민재가 정우영에게
17회 - 김민재가 김영권에게

한국은 필리핀과의 1차전 경기에서는 오른쪽 풀백 이용을 통해 공격을 풀어가는 작업을 시도했지만, 그의 볼 운반이 원활하지 못했던 데다 공격진이 중앙 지역에 밀집되며 공격 루트가 측면에서 막히는 상황이 반복됐다. 최후방 수비수 김영권이 수비형 미드필더 정우영에게, 정우영이 오른쪽 풀백 이용에게, 그리고 이용이 정우영에게 다시 패스를 연결하는 패턴이 반복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 키르기스스탄전 최다 패스 콤비네이션 TOP 5

25회 - 김영권이 정우영에게
19회 - 김민재가 이용에게
17회 - 정우영이 김민재에게
16회 - 김승규가 김영권에게
15회 - 정우영이 김영권에게

벤투 감독은 필리핀전 풀백의 측면 공격으로 밀집 수비를 공략하는 데 어려움을 겪자 키르기스스탄전에서는 중앙으로 공격을 풀어가는 방식을 택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미드필더와 공격수의 위치가 중앙으로 쏠리며 과감하게 전진 패스를 찔러줄 만한 상황이 좀처럼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이 선발 출전한 선수 11명의 배치도가 재설정된 중국전에서 공격을 풀어간 패턴은 훨씬 더 빠르고, 치명적이었다.

# 중국전 최다 패스 콤비네이션 TOP 5

18회 - 김영권이 정우영에게
12회 - 이청용이 김진수에게
11회 - 정우영이 김민재에게
11회 - 정우영이 황인범에게
11회 - 김민재가 김문환에게

한국은 후방 지역에 배치된 선수들끼리 주고받은 패스 횟수가 번번이 20회를 훌쩍 넘긴 필리핀전, 키르기스스탄전과 달리 중국을 상대로는 패스 콤비네이션이 고르게 분포됐다. 선수들이 각자 위치를 선점하며 패스로 공격을 전개할 만한 기반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날 표면적으로는 측면 미드필더로 나선 이청용이 실질적으로는 중앙 지역에 후진 배치돼 오버래핑하는 김진수에게, 정우영은 공격 진영으로 패스를 뿌려주는 역할을 맡은 황인범에게 수차례 패스를 연결하며 다양한 공격 패턴을 선보였다.

# 필리핀전 최다 패스 횟수

130회 - 정우영(중앙 미드필더)
82회 - 김민재(중앙 수비수)
77회 - 김영권(중앙 수비수)
70회 - 이용(측면 수비수)
63회 - 기성용(중앙 미드필더)
57회 - 김진수(측면 수비수)

# 키르기스스탄전 최다 패스 횟수

84회 - 김영권(중앙 수비수)
82회 - 정우영(중앙 미드필더)
76회 - 황인범(중앙 미드필더)
71회 - 김민재(중앙 수비수)
52회 - 이청용(중앙 미드필더)
47회 - 홍철(측면 수비수)

이처럼 벤투 감독은 풀백의 측면 공격으로 해답을 찾지 못한 필리핀전, 공격 루트를 중앙 지역으로 재설정한 키르기스스탄전을 경험한 후 중국을 상대로는 전술의 완성도를 높여 훨씬 더 위협적인 공격을 구사할 수 있었다. 또한, 손흥민의 합류가 이와 같은 중심 잡힌 팀 전술과 경기력 향상이 이뤄지는 데 큰 몫을 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 중국전 최다 패스 횟수

61회 - 정우영(중앙 미드필더)
55회 - 황인범(중앙 미드필더)
54회 - 김민재(중앙 수비수)
53회 - 김영권(중앙 수비수)
40회 - 손흥민(공격수)
38회 - 김문환(측면 수비수)

한국은 중국을 상대로 공격뿐만이 아니라 최전방 공격수 황의조와 손흥민, 2선 자원 이청용과 황희찬이 강도 높은 전방 압박까지 구사하며 높은 지점에서 상대의 패스를 차단해 공격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전방에서 네 명이 중국의 빌드업을 눌러주는 효과를 내며 미드필드에서 상대 패스를 차단했고, 이 덕분에 정우영과 황인범은 공을 잡으면 신속하게 공격을 시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한국은 손흥민이 4-4-1-1 포메이션의 처진 공격수로 중앙 미드필더(이청용, 황인범)와 최전방 공격수(황의조) 사이에서 패스를 공급하며 훨씬 더 원활한 공격 작업을 펼칠 수 있었다. 한국의 이번 대회 조별 리그 세 경기에서 공격수가 가장 많은 패스를 기록한 선수 상위 5명 안에 포함된 건 중국전 손흥민이 처음이다.

Son passes vs. ChinaAFC

[그림] 손흥민의 중국전 패스 동선. 그는 최전방에서 황의조에게 패스를 공급한 건 물론 중원 깊숙한 곳까지 내려와 팀의 공격 방향을 설정해주는 역할까지 소화했다.

결국, 손흥민의 합류는 자연스럽게 한국이 중앙으로 공격을 전개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난 필리핀전, 키르기스스탄전 한국은 중앙 지역을 통해 상대 진영에 진입한 비율이 3분의 1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손흥민의 합류로 자연스럽게 변칙 4-4-1-1 포메이션을 구축한 한국은 중국을 상대로 중앙 공격 빈도를 크게 높이며 더 쉽게 상대 수비를 허물었다.

# 한국의 지난 세 경기 공격 방향 분포도

좌 35.5% 중 28.4% 우 36.1% (vs. 필리핀)
좌 43.2% 중 22.7% 우 43.2% (vs. 키르기스스탄)
좌 41.3% 중 35.5% 우 23.2% (vs. 중국)

아울러 한국은 중국을 꺾으며 16강까지 무려 5일간의 휴식 기간을 확보하며 손흥민이 체력을 회복하고, 기성용과 이재성이 부상에서 돌아올 만한 시간을 벌었다. 부상 중인 기성용과 이재성은 몸상태만 100%로 회복하면 팀이 빌드업 과정을 더 다양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자원이다.

김민재가 키르기스스탄전에 이어 중국전에서도 세트피스 상황에서 니어포스트를 공략해 득점을 뽑아낸 장면이 시사하는 의미도 크다. 지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부터 세트피스 루틴이 빈약하다는 평가를 받은 한국은 시간이 갈수록 공격 패턴이 다양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Getty
자료=아시아축구연맹(A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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