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C 윔블던에서 '스포츠 사이언티스트'로 일했던 정성준.
그가 웨스트 브롬, 윔블던 등에서 일하며 배우고 느낀 영국 축구.
그리고 그것을 한국 축구에 접목하고 싶다는 꿈.
[런던=골닷컴 이성모 기자] 런던을 연고로 하는 ‘AFC 윔블던’이라는 클럽은 독특한 역사와 배경을 가진 클럽이다.
그들의 모체가 되는 클럽은 1987/88시즌 FA컵 결승전에서 리버풀을 꺾으며 우승을 차지했던 ‘FC 윔블던’. 그러나 2002년 FC 윔블던이 북쪽으로 56마일에 떨어진 지역으로 연고지 이전을 선언하자(그렇게 탄생한 팀이 ‘MK 돈스’. ‘돈스’의 영문인 ‘Dons’은 윔블’던’의 Don에서 파생된 FC 윔블던의 애칭이다) 윔블던과 그 지역에 살고 있던 FC 윔블던의 팬들은 거센 반발을 하게 되고 결국 그 후에 팬들 중 일부가 펍에서 FC 윔블던의 정체성을 계승할 클럽을 만들자고 나서며 팬들이 중심이 되어 창단하고 이어져오고 있는 팀이 ‘AFC 윔블던’이다.
AFC 윔블던은 그 후로 14년 만에 9부 리그에서 3부 리그까지 승격하는 놀라운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또 현재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구장이 런던 내 한인타운인 뉴몰든과 가까운 점, 과거 한국의 기업인 농심에서 후원했던 일 등등으로 한국과도 묘한 인연을 갖고 있는 클럽이기도 하다.
바로 그 AFC 윔블던에서 스포츠 사이언티스트로 일했던 한국의 축구인이 있다. 그 주인공 정성준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AFC 윔블던의 한국인 스포츠 사이언티스트, 정성준
‘스포츠 사이언티스트’라는 직함은 한국에선 다소 생소할 수도 있다. 그 직함이 정확히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아보기 전에 우선 정성준이 윔블던에서 한 정확한 역할에 대해서, 또 그가 윔블던에서 스포츠 사이언티스트로 일할 때까지의 과정에 대해 들어봤다.
“안녕하세요 저는 최근까지 AFC 윔블던에서 스포츠 사이언티스트로 일했던 정성준입니다. 제가 이곳에서 맡았던 역할은 U-18 선수들의 몸이나 컨디션 관리를 총 책임지는 일이었습니다. 영국에서 ‘sport scientist’라고 부르는 이 일은 스포츠 의학 파트를 담당하는 사람들이나 물리치료사와 굉장히 가깝게 일 합니다.
저는 런던에 있는 University College London이라는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했습니다. 학사 과정 중에 과학이 너무 좋았고 학교를 마치고 난 후에 제가 전공했던 걸 응용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하던 중에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운동을 하다 보니까 스스로 건강해지는 것을 느끼게 됐고 운동이 몸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그 방향으로 석사 과정을 이수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버밍엄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한 후에 코린티안 캐쥬얼스 U-18세 코치를 거쳐 웨스트 브롬에서 인턴으로 피지컬 코치로 일을 했구요. 그 후에 팬버러 FC라는 8부 리그 클럽에서 피지컬 코치 일을 했다가 AFC 윔블던에서 스포츠 사이언티스트로 일하게 됐습니다.”
정성준이 윔블던까지 올 때까지의 과정에 대해 듣다보니 웨스트 브롬에서 인턴을 거친 후에 바로 8부 리그 클럽에서 일을 했다는 것이었다. 웨스트 브롬은 실력파 감독으로 많은 존경을 받는 토니 풀리스 감독이 이끌고 있는 팀이기도 하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물어봤다.
“웨스트 브롬이 프리미어리그 팀이다 보니 시설이나 환경 그리고 스태프들 모두 프로의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인턴으로 일을 한 것이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배우다보니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기도 했지만 각각의 훈련을 어떻게, 왜 하는지, 클럽이 보유하고 있는 기구들은 어떤 식으로 활용하는지 등등에 대해 분석 및 상담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제가 일 했을 때는 프리 시즌기간이었는데요, 그들이 시즌의 훈련 스케쥴을 어떻게 잡는지에 대해 자세히 배웠고 1군 선수들과 아카데미 유소년 선수들을 어떻게 다르게 관리하는지를 직접 보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웨스트 브롬에서 인턴을 마친 후에는 하부 리그에서도 경험을 쌓고 싶어서 팀을 찾던 중에 팬버러 FC라는 클럽에서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프리미어리그 클럽이라는 최상의 환경에서 일을 하다가 8부 리그 클럽의 환경에서 일을 하다 보니 처음에는 많이 힘들고 어떻게 일을 해야할지 막막했습니다. 훈련 기구들도 아주 제한적이었고 선수들의 마인드도 웨스트 브롬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에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주 기본적인 장비들(콘, 폴대) 등을 활용해서 전용 구장이 아닌 대중공원에서 훈련을 하기도 했구요, 일하는 코치들의 자세도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환경 덕분에 오히려 더 제가 주체적으로 임기응변을 활용해서 훈련을 진행할 수 있었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이런 경험 덕분에 열악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훈련을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배우기도 했고요.”
그 후에 이제는 프리미어리그에서의 경험도 있었고 아주 낮은 하부리그에서의 경험도 있는 상태에서 그 사이에 있는 리그의 환경이나 시스템이 궁금해하던 차에 인터넷에 나온 AFC 윔블던의 채용공고를 보게 됐습니다. 이 팀이 가진 독특한 역사에 관심이 갔고 그래서 정식으로 지원을 한 후 인터뷰를 거쳐 U-18세팀에서 일을 하게 됐습니다.”
‘스포츠 사이언티스트’란 무엇인가
그렇게 정성준은 웨스트 브롬과 팬버러 FC를 거쳐 AFC 윔블던 U-18세 팀의 스포츠 사이언티스트라는 직함을 갖고 일하게 됐다. 이 대목에서 그에게 물었다. ‘스포츠 사이언티스트’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직무일까? 그것은 한국에서 말하는 피지컬 코치와 비슷한 면도 있었지만, 초점을 두는 부분이 조금 달랐다.
“‘스포츠 사이언티스트’ 라는 직업은 한국에서 말하는 ‘피지컬 코치’와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필드 훈련이나 근력 훈련등을 통해 선수들의 몸 관리 및 컨디션을 조절해주는 게 제일 중요한 임무입니다. 그 후에는 선수들의 체력, 힘, 민첩성 지구력 등 신체적인 모든 부분들을 주기적으로 체크하면서 선수들의 부상을 방지하는 일까지 도맡아 해야합니다.
피지컬 코치와 조금 다른 부분은 스포츠 사이언티스트의 경우 사무적인 부분들도 많이 다루는데 특히 선수들의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는 일을 많이 합니다. 예를 들면 매 훈련 때 선수들의 심장박동수를 분석하면서 선수들 몸 조절상태를 보고 부상위험이나 여러가지 중요한 요소들을 파악하여 감독이나 선수들에게 전해줘야 하는 임무가 있습니다.
또한 여러가지 테스트를 하는데 주로 선수들의 스피드, 민첩성, 체력, 근력 등 신체적인 발달 과정을 보기 위해 시즌에 두 세번 정도 하고 그 후에 분석 및 선수나 코치진들에게 피드을 하기도 합니다.”
정성준이 영국 축구 현장에서 배운 것들
정성준은 영국의 축구 현장에서 코치로 또 스포츠 사이언티스트로 약 2년 간 실무를 경험했다. 그가 그 현장에서 일하면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윔블던에서는 2016/17 시즌을 U-18세팀에서 풀타임으로 근무했습니다. 영국 프로축구의 시스템, 문화, 환경, 선수들의 태도 그리고 코치진들의 팀워크에 대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아무래도 스포츠 클럽이다보니 다른 회사와 조금 환경이 다르기도 하고 직원들이나 코칭스태프, 선수들 사이에 오고 가는 말이랄까, 장난이랄까 그런 부분들이 거칠어서 처음에는 놀랐지만 적응을 하고나니 오히려 그런 게 더 익숙해지고 재밌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AFC 윔블던은 잉글랜드 축구계에서 최상의 클럽도 최하의 클럽도 아니었기 때문에 적절한 환경 안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면서 융통성 있게 대처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특히 FA YOUTH CUP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프리미어리그 팀과 3부 리그 팀의 차이가 백지한장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말 프로 선수가 될려면 프로의식과 정신력이 있어야 한다고 느꼈고 매사에 최고가 되겠다는 마음을 가진 선수만이 최상위권 수준에서 뛸 수 있겠구나 그런 것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에게 영국에서 일하는 동안, 특히 AFC 윔블던에서 일하는 동안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없었는지 물었다.
“나름대로 뿌듯하게 기억하고 있는 일이 하나 있는데요, 프리시즌부터 축구는 잘하지만 체력과 스피드 때문에 감독님과 선수 부모까지 모두 걱정했던 유망주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 선수를 제가 맡아서 몇 개월 동안 훈련, 식단, 회복 훈련 그리고 컨디션 조절까지 조금 더 많이 신경을 썼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고 성과도 없는 것 같았는데 끝까지 그 선수도 열심히 훈련을 했기 때문에 몇 개월 지난 후에 감독님께서 선수와 저를 따로 불러서 칭찬을 해줬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에 어느 경기에서 상대 수비수들을 제치면서 멋진 어시스트들을 하는 모습에 나중에 선수와 포옹하면서 서로 수고했다고 격려를 해줬을 때 정말 뿌듯하고 자신감이 많이 생겼습니다.”
“시즌 중에 아주 중요한 경기가 있었는데요, 선수들이 정말 열심히 감독님의 전술에 맞게 연장까지 가서 120분내내 죽어라 뛰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경기는 패배했습니다. 마지막 휘슬이 불리고 선수들이 라커룸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원래는 안 그러시던 감독님이 정말 화를 내시면서 크게 소리를 지르시더라고요. 처음에는 감독님이 선수들의 플레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니 원정 경기에 응원하러 와준 팬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안 해서 화를 내셨던 거였습니다. 선수들만 슬픈 게 아니라고 팬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되고 항상 그들에게 고마워 해야한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그걸 옆에서 보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감동을 느꼈습니다.”
“윔블던에서 일한 것 외에도 전체적으로는 정말 영국 축구 문화에 전반적으로 감탄을 했습니다. 아무리 작고 못하는 팀이더라도 팬들은 그런 클럽을 사랑하고 매 경기마다 열정적으로 응원가를 부르며 선수들과 감독들을 응원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또한 잘한 건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못한 건 못했다고 얘기를 해주는 팬들이 참 많기 때문에 영국 축구가 클 수 밖에 없겠다는 걸 느꼈습니다. 특히 아카데미 유소년 선수들도 팬들이 사랑해주고 시합까지 보러 와주는 모습들이 앞으로 한국에서도 자리잡히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 축구에의 애정과 미래의 계획
정성준은 2016/17시즌 윔블던에서의 경험을 마치고 최근 한국으로 향했다. 잉글랜드에서 다양한 경험을 가진 그가 한국으로 돌아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영국에서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걸 느끼고 배웠지만 동시에 영국에서는 제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영국 축구계에는 스포츠 사이언스 분야도 이미 너무 뿌리깊게 자리잡혀 있어서 많아서 제가 빅클럽에 들어가더라도 주어진 업무만 제한적으로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고 저는 그보다는 좀 더 주체적으로 다양한 일들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에서 배운 점들이나 경력을 살려서 그런 부분을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면서 한국 축구가 더 발전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그리고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앞으로 한국에서 그가 펼치고 싶은 꿈과 목표에 대해 물었다.
“아주 낮은 리그에 있는 혹은 리그가 없는 팀에 들어가서 그 팀에서 선수들을 키워나가고 아주 먼 훗날에는 그 팀과 함께 좋은 성적을 내고 싶습니다. 스포츠 사이언티스트이자 피지컬 코치로서 선수들이 부상을 당하지 않고 최고의 컨디션과 신체적인 조건을 갖춘 상태로 폼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제가 그동안 축구 클럽에서 일하며 느낀 것은 한국에 너무 좋은 재능을 가진 어린 선수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 선수들이 훌륭한 성인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더 나아가서는 훗날에 아카데미를 설립해서 축구계의 꿈나무들을 키워 나가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을 발굴하고 키우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