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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의 한국 축구인] (4) 바르셀로나 민박집 주인 & 꿈꾸는 축구인 박병주

2년 전부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민박집 '별루이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전 광주 FC 주장 박병주.

스페인에서 지내며 보고 듣고 겪은 바를 통해 '축구인' 박병주가 느끼고 배운 것들.

언젠가는 한국의 축구계로 돌아가겠다는 각오와 미래의 목표.

[스페인 바르셀로나 = 골닷컴 이성모 기자] 지난 2016년 3월, 국내 스포츠 언론을 통해 바르셀로나에 특별한 사연을 가진 민박집이 있다는 소식이 공개됐다(‘광주 주장’ 박병주, 바르셀로나서 ‘맨땅에 헤딩’ 스포츠조선 이건 기자). 전 광주 FC 주장인 박병주가 바르셀로나에 그의 자녀의 이름을 딴 ‘별루이하우스’라는 민박집을 열고 운영하고 있다는 사연이었다. 세계적인 축구 도시에서, 한국의 축구선수가 새로운 출발을 했다는 소식에 많은 축구팬들이 응원과 격려를 보냈다.

그로부터 1년이 좀 더 지난 2017년 6월, 바르셀로나 도심과 캄프누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별루이하우스를 직접 찾아 박병주를 만났다. 정갈하고 고즈넉한 그의 민박집 한편에서 그가 바르셀로나에서 보낸 2년 여의 시간에 대해 처음부터 하나씩 들어봤다.

박병주가 광주 FC에서 바르셀로나에 오기까지

박병주는 2008년 드래프트 2순위로 성남일화에 입단한 후 수원 FC, 광주 FC, 제주 유나이티드 등에서 뛰었다. 그 중 광주 FC에서는 주장으로 활약하기도 했으나 불운하게도 부상의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정강이 피로 골절로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며 2년간 고생을 하다가 결국 2014년 선수생활을 정리하게 됐습니다. 축구만 하며 살아온 삶이었고, 그 다음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상태였어요.”

그러던 중 박병주는 가족과 함께 바르셀로나로 이주할 결심을 하게 되고 곧 그를 실행에 옮긴다. 바르셀로나는 선수 생활 시절 그와 그의 아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여행지 중 한 곳이었다.

“가족과 상의 하에 정말 갑작스럽게 미친 듯 바르셀로나로 넘어오게 됐어요. 내가 언어도 안 통하는 이곳에서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살 수 있을까?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런 두려움보다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정신력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정신으로 맨땅에 헤딩 하듯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바르셀로나에서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병주의 이야기가 국내 언론을 통해 처음 소개된 것은 이 무렵에서 조금 더 지난, 아직 박병주가 스페인에서의 생활에 적응하고 있던 시점의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소개된 후에 많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응원과 도움을 받았다고 말한다.

축구팬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어느새 그의 민박집은 바르셀로나를 찾는 한국의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꼭 가볼만한 곳’으로 통하게 됐다. 실제로 그의 민박집은 캄프누와 시내 가운데 지점이자, 캄프누에서 도보로도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경기가 있어 교통이 복잡한 날은 도보로 이동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위치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들이 그동안 언론이나 축구팬들 사이에도 이미 어느 정도 알려져있는 이야기였다면, 궁금한 것은 그 후로 현재까지 그가 경험한 일들이었다. 축구 선수 출신답게 박병주는 바르셀로나에서 다시 축구에 대한 꿈을 펼쳐나가고 있었다.

바르셀로나에 적응할 때쯤 든 생각 ‘나는 축구선수’

별루이하우스에서 인터뷰를 하는 도중, 박병주는 여러 차례 자신의 ‘뿌리’는 축구라는 말을 했다. 의식해서 한 말이라기 보다는 무의식 중에 그의 마음에 남아있는 그런 말처럼 들렸다. 실제로 많은 여행자들이 찾아오는 민박집 한 쪽 구석에는 선수시절 박병주의 사진도 전시되어 있다. 그의 말이다.

“처음에 와서는 정신없이 일만 했어요. 자리 잡는다고 축구선수였던 것을 잊을 만큼 시간이 빠르게 지나더라구요.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자리가 잡히고 할 때 쯤 이런 생각이 나더라구요. ‘아, 내가 축구선수였지.’”

자신의 뿌리가 축구라는 것을 자각한 후, 박병주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자신이 가진 경험과 축구 사이의 접점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우선은 자신의 경험으로 자신보다 어린 유소년 선수를 돕는 일부터 시작했다.

“작년에는 별루이하우스 1, 2호점을 둘 다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했지만 지금은 2호점은 축구 유학을 하는 학생을 위한 숙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2001년생 유소년 선수가 한 명 묵고 있는데, 축구 유학이라거나 그런 사업적인 생각을 하는 것 보다는 도움이 필요한 유소년 선수들에게 저의 경험을 전수 해주며 그들이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또 직접 그 선수들 팀 훈련에 동행하며면서 같은 나이대의 스페인 선수들이 어떻게 훈련하는지를 지켜보며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로만 듣던 스페인 축구가 어떤지, 그 기반인 유소년 선수들이 운동을 어떻게 하는지 배우고 알아갈 수 있는 좋은 계기인 것 같습니다. 또 종종 한국에 계신 감독님들께서 특정 선수들이 어떤지 좀 보고 알려달라는 부탁을 하시는 경우도 있고요.”

바르셀로나에서 직접 본 스페인의 유소년 축구

유소년 선수를 지도하며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주는 일 외에도, 박병주는 스페인의 유소년 축구 시스템을 아주 가까이서 지켜보며 지내고 있다. 올해 만4세인 그의 둘째 아들 루이(‘별루이하우스’의 그 ‘루이’다)가 스페인에서 가장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 받을 수 있는 축구 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아들 루이를 한번씩 축구 클럽에 데려가서 3,4세 반에서 운동을 시키고 있어요. 처음에는 데려 가면서도 3, 4살 아이들이 운동이 될까 하고 생각했는데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그 어린이들이 훈련이 되더라구요. 정말 그 어린이들을 훈련을 시키더라구요.”

3,4세의 어린이들에게 축구 훈련을 시킨다? 도대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예를 들면 라인을 그려주고 그 라인은 벗어나지 못하도록 규칙을 정한 후에 그 안에서 아이들끼리 달리기를 하도록 유도하는 그런 걸 많이 해요. 어린이들에게 ‘달리기’가 즐겁다는 체험을 하게 해주는 것이죠. 그리고 운동 시간 중에는 아이들에게 번갈아가면서 골키퍼를 시키기도 합니다. 어린이들은 의외로 골키퍼를 보는 걸 재미있어 하거든요? 그럼 이 어린이들이 직접 그런 경험을 하면서 이후에 골키퍼로 성장을 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이런 축구, 혹은 운동이 ‘즐거운 것’이라고 인식을 하게 되는 것이죠.” 

“여기에 와서 2년여 지켜본 한국 유소년과 스페인 유소년의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차이는 창의력 입니다. 창의력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는데, 성인이 된 선수는 이미 늦었어요 그건 유소년기 때 다 완성이 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면 우리 어릴 때는 지도자 분들이 무서워서 시키는 대로 했다면 여기는 왜 그렇게 해야하는지 이해를 시킵니다. 이해가 안되면 선수들은 지도자들에게 반문을 하죠.”

지도자 자격증 공부와 미래 계획

한국에서 오래 선수생활을 한 선수 출신으로서, 스페인이 가장 어린 유소년들을 지도하는 방법을 지켜보면서 박병주는 점점 자신이 미래에 어떤 방법으로 한국 축구에 기여할 수 있을지 방향을 잡아나가고 있다.

“아직은 제가 감히 한국 축구가 이렇다, 스페인이 이렇다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른 것 같아요. 그래서 이곳에서 더 많이 지켜보고 또 배우고 고민을 해볼 계획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물론 지금 운영하고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열심히 운영하면서(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의 박병주는 지금까지도 게스트하우스의 청소를 남에게 맡기지 않고 매일 자신이 직접하고 있다) UEFA 지도자 라이선스 과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해 10월부터 웨일즈에서 진행되는 UEFA C 라이센스 과정에 신청해서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청구고교 축구부 선배인 백승주 형이 웨일즈에서 이미 경험을 하고 스포츠학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어서 많은 조언을 해주기도 했고요.”

“게스트하우스 운영과 UEFA 지도자 라이선스 준비를 동시에 하려니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세상에 안 힘든 일이 어디있을까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두 일 모두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축구로 받은 사랑, 축구로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현재는 바르셀로나의 민박집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박병주이지만, 그의 가슴 속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축구였다. 축구에 대해 말할 때의 그의 눈빛, 자세와 태도를 보면 느낄 수 있다. 불미스럽게 선수생활을 정리했더라도 그는 여전히 축구인이고 여전히 축구를 통해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선수시절에 대한 회고, 그리고 축구를 통한 미래의 꿈에 대해 물었다.

“어릴 때부터 축구를 했던 사람이라 여전히 제 마음 속 한구석에는 축구가 차지하는 부분이 아직 큰 것 같습니다.

선수 시절에 제가 축구를 잘해서 프로에 갔고 살아남았다고 생각한적은 지금까지도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다만 지기 싫어서 누구보다 열심히 묵묵하게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목표가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대충 노력하고는 ‘나는 노력하고 있어’라는 자기 최면에 걸리지 말고 최소한 그 일에 미쳐야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야 경쟁자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가 한국 축구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스페인이 축구를 잘 하는 이유는 유소년 축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에서 그 아이들이 어떻게 운동하는지를 많이 보고 또 공부해서 언젠가 한국에서 제가 축구로 받았던 사랑을 다시 축구로 보다 더 크게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 인터뷰를 다 마칠 즈음, 박병주가 혹시 괜찮다면 꼭 하나만 기사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를 믿고 한국을 떠나 타지에서 살 결심을 하고 또 지금도 매일 함께하고 있는 아내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별루이하우스는 조식이 맛있다고 입소문이 나있는데, 그 조식은 박병주의 아내가 매일 아침 준비하는 것이다)

“아내가 바르셀로나에 와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한국에서는 사실 축구 선수들이 집에서 밥 먹을 일이 많지 않아서 요리도 많이 안 했는데, 여기와서는 매일 아침 조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 아내에게 다른 나라에 와서 지내느라 나 못지 않게 힘들텐데 묵묵히 도와줘서 고맙다고, 우리 아이들인 한별,루이, 그리고 루나 잘키우면서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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