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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LA 축구장에 울려 퍼진 외침 "코비! 코비! 코비!"

▲한 달 전 13세 딸과 불의의 헬리콥터 사고
▲평소 축구에 남다른 애정 과시한 코비 브라이언트
▲참사 후 LA에서 열린 첫 번째 축구경기에서도 추모 행사

[골닷컴, 미국 LA] 한만성 기자 = 지난달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농구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를 추모하는 축구계의 목소리가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지난 1996년 LA 레이커스에서 NBA에 데뷔한 브라이언트는 현역 은퇴를 선언한 2016년까지 무려 20년간 이어진 프로 커리어를 모두 레이커스에 바친 미국 LA의 레전드다. 그를 굳이 축구 선수에 비교하면 AC 밀란의 프랑코 바레시, 파올로 말디니 같은 존재와 견줄 만하다. 농구, 혹은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도 LA라는 도시의 문화를 논할 때 브라이언트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브라이언트는 현역 시절 레이커스를 이끌고 다섯 차례 NBA 우승을 차지한 건 물론 한 경기에서 81득점을 기록하는 대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심지어 그는 2016년 4월 자신의 현역 시절 마지막 경기에서 유타 재즈를 상대로 60득점을 꽂아 넣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브라이언트는 현역 은퇴 후에도 "다음 세대를 책임질 어린이들에게 스포츠로 영감을 주는 스토리텔러가 되겠다"고 선언하며 작가 및 단편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실제로 그는 지난 2018년 3월에는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자신이 제작한 작품 '디어 바스켓볼(Dear Basketball)'로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다.

Kobe Bryant

그러나 현역 시절부터 쉴 새 없이 달린 브라이언트의 행진은 지난 1월 16일(현지시각) 충격적인 사고로 멈춰서게 됐다. 브라이언트와 그의 13세 딸 지아나 등 총 아홉 명을 태운 헬리콥터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칼라바사스 지역에서 추락하며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브라이언트와 지아나, 이외 희생자 일곱 명을 향한 눈물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지난 24일에는 브라이언트가 현역 시절 다섯 차례(2000~2002년, 2009~2010년)나 래리 오브라이언 트로피(NBA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레이커스의 홈구장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 축구장에서 메아리 친 "코비! 코비! 코비!"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난지 무려 한 달이 지난 2월 24일 공식 추모식이 열린 이유는 코비 브라이언트가 감독을 맡았던 유소녀 농구팀 '맘바스'의 등번호 2번을 달고 뛴 그의 딸 지아나, 현역 시절 레이커스의 24번으로 활약한 그녀의 아버지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는 마이클 조던, 샤킬 오닐, 평소 브라이언트가 멘토 역할을 자처한 여자 농구선수 등 단지 농구인뿐만이 아니라 코미디언이자 토크쇼 진행자 지미 키멜, 가수 어셔, 앨리샤 키스, 비욘세, 스눕독, 수영선수 마이클 펠프스 등이 각 분야의 유명 인사가 참석했다. 조던과 오닐은 연설 도중 오열하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Kobe Bryant, LAFC

이로부터 사흘이 지난 27일, 브라이언트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가 발생한 후 LA에서는 올해 첫 공식 축구 경기가 열렸다. 이는 바로 LA를 대표하는 작년 북미프로축구(MLS) 정규시즌 우승팀 LAFC와 멕시코 전기 리그(리가MX 아페르투라) 준우승팀 클럽 레온의 2020 북중미(CONCACAF)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 경기였다. LAFC 구단 공식 서포터즈그룹 3252는 이날 경기가 열리기 전 골대 뒤 응원석에서 대형 배너를 들어올렸다. 수천 명에 달하는 LAFC 팬들이 들어올린 배너는 생전 브라이언트가 딸 지아나를 끌어안고 찍은 사진을 초상화로 그린 대형 그림이었다.

빅매치를 앞두고 달아오른 LAFC의 홈구장 뱅크 오브 캘리포니아 스타디움 속 열광적인 분위기는 LA를 상징하는 레전드를 그린 배너가 올라가자 더욱 뜨거워졌다. 지난주 멕시코 원정에서 0-2 완패를 당하고 돌아온 LAFC에는 어느 때보다 현역 시절 농구코트 위에서 위기에 직면한 레이커스를 여러 차례 역전승으로 이끌어 '미스터 클러치(Mr. Clutch)'라는 별명을 얻기도 한 브라이언트의 기운이 필요했다. 배너가 골대 뒷편 응원석 전체를 가리자 이날 경기장을 가득메운 관중은 2만2300명은 일제히 연신 "코비! 코비! 코비!"를 외쳤다. 이는 과거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흔히 울려 퍼진 구호다.

# 코비 브라이언트와 축구의 깊은 인연, 어떻게 시작됐나?

브라이언트는 어린 시절부터 축구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몇 안 되는 농구인 중 한 명이다. 그의 아버지 조 브라이언트 또한 과거 프로 농구 선수였다. 아들 코비 브라이언트는 6세에 불과했던 80년대 초반 NBA에서 활약한 후 이탈리아 무대로 진출한 아버지를 따라 유럽에서 생활했다. 어린 시절 그가 가장 좋아한 축구 팀은 마르코 반 바스텐, 프랑크 레이카르트, 루드 굴리트 등이 활약한 AC 밀란이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약 7년간 생활하는 동안 팔이 길다는 이유로 골키퍼로 축구를 시작했으나 시간이 지나며 빠른 발과 탁월한 운동 신경을 자랑하는 미드필더로 전향했다.

실제로 브라이언트는 지난 2017년 'ESPN'을 통해 "처음 이탈리아로 갔을 때 농구를 하려고 공원에 갔는데, 또래 아이들은 축구를 하고 있었다"며 축구를 처음 접한 시절을 회상했다.

당시 브라이언트는 "그들은 내가 팔이 길다며 골키퍼를 시켰다. 이후 점진적으로 축구 실력을 기르며 미드필더로 변신했었다. 축구는 전략적인 게임이다. 공을 받기 전부터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정확히 인지해야 하며 앞으로 벌어질 상황까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축구를 하며 전술 구조(structure)의 중요성을 배웠다. 위치 선정으로 동료들과 삼각형 대형을 만들고,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상황 인지를 빨리 해야 하고, 판단력이 중요한 축구와 곧 사랑에 빠졌다. 이런 점들이 나중에 농구를 할 때 내게 정말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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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 보며 받은 영감으로 농구화 제작까지

브라이언트는 NBA에 데뷔한 후에도 남다른 '축구 사랑'을 과시했다. 지난 2006년에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한 FC 바르셀로나의 미국 투어 현장을 깜짝 방문해 호나우지뉴, 리오넬 메시와 개인적인 친분을 쌓았다. 이어 그는 2008년 자신의 나이키 농구화 모델 '코비IV'의 발목 보호대를 없앤 '로우컷' 디자인이 축구를 보며 느낀점을 착안해 만든 신발이라고 밝혔다.

지난 2008년 '코비IV'를 공개한 브라이언트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축구를 보면서 로우컷 농구화를 신어야겠다는 영감을 얻었다. 축구는 발목의 회전력(torque)과 방향 전환 능력(change of directions)이 매우 중요한 종목이다. 축구 선수는 농구 선수보다 발목에 훨씬 더 많은 부담을 준다. 그런데도 축구화는 농구화와는 달리 하이탑 신발이 거의 없다. 나는 축구를 보면서 농구 선수도 기존 하이탑 농구화보다 가벼운 신발을 신고 발목 움직임을 더 자연스럽게 가져가면 경기력 향상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Kobe Bryant, LAFC

LAFC는 이처럼 축구와 남다른 인연을 맺고 있던 'LA 레전드' 브라이언트를 향한 절대적인 예우를 지켰다. 이 덕분에 브라이언트의 기운이 하늘에서부터 LAFC에 전해진 걸까? 북중미 챔피언스 리그16강 1차전 원정에서 무득점 두 골 차 패배를 당하고 돌아온 LAFC는 브라이언트의 웃는 모습을 담은 대형 배너를 들어올린 2차전 홈 경기에서 세 골을 몰아치며 멕시코 명문 레온에 기적적인 3-0 대승을 거뒀다. 이날 LAFC 주장 카를로스 벨라는 코비 브라이언트의 이니셜 KB와 한 달 전 헬리콥터 사고의 희생자 아홉 명의 이름이 새겨진 완장을 차고 두 골을 터뜨리는 맹활약을 펼쳤다.

생전 코비는 아프리카산 독사 '블랙 맘바'처럼 독기를 품어야만 자신과의 싸움, 상대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며 '맘바 멘탈리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딸 지아나가 활약한 농구팀이 '맘바스(Mambas)'라 불린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경기 전 브라이언트를 추모하며 2만 관중이 입을 모아 "코비!'를 외친 LAFC 또한 이날 그의 '맘바 멘탈리티'를 물려받아 역사적인 대역전승을 거뒀다.

Carlos Vela, LAFCLAFC

사진=LAFC, Getty

*지난달 26일 헬리콥터 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인 코비 브라이언트, 지아나 브라이언트, 존 알토벨리, 케리 알토벨리, 알리사 알토벨리, 크리스티나 마우저, 사라 체스터, 페이튼 체스터, 아라 조바얀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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