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소굴서 살아남아 지금은 EPL 라이징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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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샬리송은 EPL 입성 첫 시즌 맹활약으로 빅클럽의 주목을 끌고 있다.

[골닷컴] 윤진만 기자= 19일(현지시간) 왓포드-웨스트햄유나이티드전은 데이비드 모예스 전 맨유 감독의 웨스트햄 데뷔전으로 더 큰 관심을 끌었다.

최종 스코어는 2-0. 왓포드가 리그 3연패를 끊었고, 웨스트햄은 연패 늪에 다시 빠졌다. 웨스트햄은 강등권(18위)을 벗어나지 못했고, 왓포드는 8위로 올라섰다.

이날 모예스 감독의 팀에 비수를 꽂은 선수는 등번호 11번을 단 브라질 공격수 히샬리송이었다. 앤디 캐롤, 마누엘 란지니, 마르코 아르나우토비치와 같이 이름깨나 들어본 웨스트햄 공격수들이 침묵하는 사이 상대 진영을 마음껏 휘저었다. 전반 11분 윌 휴즈의 선제골로 팀이 1-0 앞서던 후반 19분 역습 상황에서 쐐기골까지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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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시즌 왓포드 경기를 지켜본 독자라면 심심찮게 목격했던 장면일 것이다. 지난여름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 속에 유럽으로 건너온 히샬리송은 이날 득점을 포함해 벌써 EPL에서만 5골 2도움을 기록했다. 팀 내 최다 득점자임은 물론이고 어느 웨스트햄 선수보다 더 많은 골을 남겼다. 언론에 의해 빅클럽 이적설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히샬리송이 걸어온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이런 업적은 더욱 대단하게 느껴진다. 또한 성공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에도 다다른다.

히샬리송은 브라질 남부 산타 카타리나주 해변 인근 도시 노바 베네사에서 자랐다. 5남매 중 맏이였다. 벽돌공이던 부친과 청소부였던 모친은 이혼했다. 이런 이유로 앳된 나이에 사회 전선에 뛰어들었다. 돈이 되는 일은 닥치는 대로 했다. 아이스크림 카트를 끌고, 세차도 마다치 않았다. 깜깜한 밤이 돼서야 귀가하는 일이 빈번했다.

하지만 히샬리송은 딱 한 가지 일만은 하지 않았다. 마약 판매. 그의 뒷집에선 버젓이 마약 판매가 이뤄졌다. 총을 소지한 어른들이 우글우글했다. 어릴 적 친구들도 마약의 길로 빠졌다. “친구 대부분이 길거리에서 마약을 팔았다. 쉬운 방식으로 많은 돈을 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13~14살이 됐을 즈음, 히샬리송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친구들과 평소에 자주 가지 않던 길거리에서 공을 차며 놀고 있을 때, 마약상인 중 한 명이 다가왔다. 그는 히샬리송과 친구들이 마약을 훔치러 온 줄 알고, 총구를 히샬리송의 머리에 겨눴다. “바로 몸을 돌려 미친 듯이 달렸다. 다시는 그 거리로 가지 않았다.” 

히샬리송은 ‘범죄자’보다는 ‘축구선수’의 삶을 꿈꿨다. 다행히 학교 교사들은 히샬리송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친절히 알려줬다. 한 경기에서 7골씩 넣기도 했던 재능 있는 아마추어 선수인 부친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히샬리송은 본인의 성공 의지를 더해 꿈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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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까지 축구화 하나 소유하지 못했던 그였지만, 18세 때 나이키와 3년짜리 용품 계약을 맺었다. 잠재력을 인정받은 것도 바로 이 때부터다. “아버지는 포기를 모르셨다. 계속해서 골을 노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자랐다.”

플루미넨세에서 폭발적인 활약을 펼친 그는 지난 7월 1120만 파운드의 이적료에 왓포드와 계약하며 ‘꿈의 무대’에 입성했다. 스피드, 결정력은기본 옵션. 후반 추가시간까지 골을 탐하는 투지까지 겸비했다. 마르코 실바 왓포드 감독에겐 천군만마와 같다. 하지만 구단 이적담당자는 이르면 오는 1월, 혹은 내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일어날 일을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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