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범Russian Premier League

루빈 황인범, 벤투호 황인범…차이는 포지션이 아니다

[골닷컴] 한만성 기자 = 대표팀 일정을 마친 후 루빈 카잔으로 복귀한 황인범(24)이 안정적인 경기 운영 능력을 선보이며 소속팀의 완승을 이끌었다.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최하위 팀 우랄을 상대한 루빈 카잔 미드필더 황인범의 경기력이 최근 대표팀에서 내려앉은 이라크, 레바논을 만나 그가 보여준 활약상과 오버랩됐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루빈 카잔은 14일(한국시각) 우랄과 격돌한 2021/22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7라운드 홈 경기에서 한 수 위의 경기력을 선보인 끝에 4-0 완승을 거뒀다. 우랄을 꺾은 루빈 카잔은 컵대회를 포함해 최근 한 달이 넘도록 이어진 다섯 경기 연속 무패의 사슬을 끊었다. 승점 3점을 획득한 루빈 카잔은 디나모 모스크바를 밀어내고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4위권에 재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루빈 카잔은 승점 14점으로 1위 제니트(17점), 2위 소치, 3위 로코모티브 모스크바(이상 15점)에 이어 4위를 달리며 치열한 선두권 경쟁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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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국 대표팀에서 루빈 카잔으로 복귀한 황인범은 이날 예상대로 루빈 카잔의 중앙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해 풀타임을 소화했다. 레오니드 슬러츠키 루빈 카잔 감독은 지난 시즌부터 대다수 경기에서 그래왔듯이 공격형 미드필더 세아드 하크샤바노비치, 수비형 미드필더 올리버 아빌트고르 사이에서 팀의 공수 균형을 잡아줄 '8번'으로 황인범을 낙점했다. 공수에 걸쳐 황인범이 발휘한 영향력은 경기 초반 루빈 카잔이 터뜨린 결승골, 종료 직전 쐐기골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기점이 됐다. 황인범은 경기 시작 2분 만에 하프라인 부근 왼쪽 측면에서 공격 진영을 향해 달리는 크비차 크바라츠켈리아에게 전진 패스를 연결했다. 그의 패스를 받은 크바라츠켈리아는 왼쪽 측면에서 문전을 향해 낮은 크로스를 연결했고, 이를 최근 루빈 카잔 이적 후 이날 공식 데뷔전을 치른 안더스 드레이어가 왼발 힐킥으로 연결해 골망을 갈랐다.

이어 루빈 카잔은 13분에도 크바라츠켈리아가 왼쪽 측면에서 볼을 잡은 후 하프스페이스를 통해 2선에서 침투한 아빌트고르에게 패스를 건넸고, 그가 문전으로 연결한 컷백이 상대 수비수 아르템 마민의 자책골로 이어지며 점수 차를 벌렸다. 승기를 잡은 루빈 카잔은 80분 드레이어가 상대 수비수로부터 볼을 빼앗아 문전에서 침착한 마무리로 추가 득점을 기록했다. 이어 루빈 카잔은 후반 추가 시간 황인범이 중원에서 순간적인 드리블 돌파로 전진한 후 측면으로 열어준 패스가 다시 문전으로 연결되며 드레이어의 해트트릭을 완성하는 쐐기골로 이어져 네 골 차 대승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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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인 전력에서 열세에 놓인 우랄이 상위권에서 경쟁 중인 루빈 카잔을 상대한 방식은 여러모로 최근 한국 대표팀을 상대한 이라크, 레바논과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원래 루빈 카잔은 빠른 속공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능력이 빼어난 팀이지만, 이날 내려앉은 우랄을 상대로는 이와 같은 공격 패턴을 선보이지 못하며 좀처럼 공간이 발생하기 어려운 지공 상황에서 경기를 풀어가야 했다.

# 이라크, 레바논전 후진 배치된 황인범…루빈 카잔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

최근 1년 8개월 만에 대표팀 복귀전을 치른 황인범은 국내에서 열린 이라크, 레바논과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1, 2차전 경기에서 이론적으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그는 이라크전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 손준호, 공격형 미드필더 이재성 사이에서 중앙 미드필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그는 손준호가 교체 아웃된 이라크전 후반, 그리고 레바논전은 89분 교체되기 전까지 수비라인 앞에 배치된 '볼란테'로 활약했다.

이를 두고 국내에서는 루빈 카잔에서 7~8월 이달의 선수로 선정될 만큼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에서 수준급 활약을 펼치는 중인 황인범이 공격적인 역할을 맡는 소속팀에서와 달리 대표팀에서는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수비라인을 보호하는 포지션에 배치됐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일각에서는 대표팀을 이끄는 파울루 벤투 감독이 소속팀에서 맡은 역할에 익숙해진 선수를 어울리지 않는 포지션에 중용했다는 비판도 속출했다. 이달 대표팀의 2연전에서 정우영이 자가격리 조치를 받아 전력에서 제외돼 황인범의 역할이 일정 부분 수정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황인범이 빼어난 경기력을 선보이는 중인 루빈 카잔에서 맡은 역할은 대표팀에서 그에게 주어진 임무와 실질적으로 크게 다르다고 볼 수는 없다. 단, 대표팀과 루빈 카잔에서 공수에 걸친 모든 상황에 활발히 관여하는 황인범의 주변에 배치되는 동료 선수들의 역할, 혹은 성향이 다르다는 점은 주목해볼 만하다.

루빈 카잔에서 늘 황인범의 옆자리에 배치되는 아빌트고르는 주로 '홀딩 미드필더'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그 또한 이날 우랄을 상대로 13분 추가골 상황에서도 나타났듯이 간헐적으로는 2선까지 올라와 상대 진영에서 펼쳐지는 공격 작업에 관여한다. 주로 후방 미드필드 지역에서 2선으로 올라가는 건 황인범의 몫이지만, 그는 아빌트고르와의 유기적인 역할을 분담한다. 그 결과 황인범과 아빌트고르 중 둘 중 한 명이 전진하면, 남은 한 명은 상대의 역습에 대비해 후방 미드필드 지역이나 측면에 발생하는 공간을 메운다. 이와 달리 이달 초 2연전에서 황인범과 벤투호의 중원 조합을 이룬 이재성, 이동경 등은 훈련 기간이 짧았던 만큼 역할 분담이 원활하지 못했다. 특히 서로 흡사한 플레이 성향을 보유한 황인범과 이재성은 이라크전에서 여러 차례 서로 위치가 겹치는 장면이 연출됐다.

또한, 루빈 카잔에서는 아빌트가르와 3선 수비를 분담하는 황인범은 유독 대표팀에서는 수비 시 중원에 발생하는 공간과 최후방 수비라인에 생기는 균열까지 혼자 틀어막아야 하는 빈도가 높은 편이다. 지난 레바논전 73분경 왼쪽 측면 수비수 홍철이 전진한 상황에서 상대가 역습을 시작하자 그의 뒷공간을 김영권이 메우는 사이에 황인범이 미드필드 지역을 포기하면서까지 중앙 수비수 자리를 커버한 장면이 대표적인 예다. 이와 달리 황인범은 소속팀 루빈 카잔에서는 수비 시 왼쪽 측면 수비수 일리아 사모슈니코프의 뒷공간을 커버하는 데 주력하는 편이다. 이날 32분 공격 진영으로 전진한 사모슈니코프가 미처 수비 상황에서 원래 자리로 돌아오지 못한 사이, 황인범이 루빈 카잔의 페널티 지역 왼쪽 부근에서 상대 측면 공격수 라마잔 가드지무라도프의 드리블 돌파를 저지한 후 어깨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며 볼을 탈취해낸 장면에서도 이와 같은 점이 잘 드러났다.

후방에서 수비가 조직적으로 이뤄진 루빈 카잔은 상대가 빌드업으로 공격을 전개할 때는 황인범의 위치를 아예 공격 진영으로 끌어올렸다. 황인범은 이날 여러 차례 우랄이 수비 진영에서 패스 연결을 시작하면 속도를 높여 앞쪽으로 전진해 상대 후방 미드필더 다니엘 미스키치를 강하게 압박했다. 수비 시 이와 같은 황인범의 전진은 그의 움직임을 파악한 아빌트고르의 존재가 뒤에서 버티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 루빈 카잔은 황인범이 볼을 잡으면 2선에 서 있던 선수들은 침투, 최전방 공격수는 등진 채로 볼을 간수해준다

기본적으로 황인범은 대표팀과 루빈 카잔에서 후방 빌드업 시 수비라인 사이, 혹은 바로 앞자리에서 '패스 시퀀스의 시작점' 역할을 맡는다. 이후 플레이가 하프라인을 넘어서며 볼이 상대 진영으로 투입되면, 황인범은 2선까지 전진해 팀 공격을 지원한다. 여기까지는 대표팀과 루빈 카잔에서 황인범이 맡는 역할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점은 빌드업 시 '첫 패스'를 넣어주는 황인범의 볼 배급에 대응하는 주변 선수들의 움직임이다. 벤투 감독은 지난 이라크전에서 좌우 측면에 손흥민, 송민규를 배치했으며 최전방에는 황의조를 세웠다. 그러나 손흥민은 표면적으로 포지션만 왼쪽 측면이었을뿐 사실상 중앙 지역에 배치된 처진 공격수나 다름없는 역할을 맡았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밀집된 이라크의 미드필드와 수비진 사이에서 황인범, 이재성, 손흥민 등이 유기적인 패스 연결을 하는 데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루빈 카잔은 2선에 배치된 공격수 세 명(크비차 크바라츠겔리아, 세아드 하크샤바노비치, 안더스 드레이어)이 후방에서 올라오는 황인범의 전진 패스를 극대화할 만한 움직임으로 상대의 수비 블록을 좌우로 넓혀줬다. 이날 결승골이 된 드레이어의 첫 번째 득점 상황에서 황인범이 기점 역할을 한 장면도 루빈 카잔의 이러한 성향을 그대로 보여줬다. 황인범이 미드필드 깊숙한 진영에서 볼을 잡을 때 크바라츠켈리아가 파이널 서드를 향해 달리며 그의 침투 패스를 받았고, 그가 지체없이 연결한 땅볼 크로스가 드레이어의 선제골을 만들어냈다. 황인범이 또다시 기점 역할을 한 루빈 카잔의 네 번째 득점 상황에서도 그가 중앙 지역으로 드리블 돌파를 하며 전진하자 교체 투입된 측면 공격수 솔트무라드 바카에프가 왼쪽 측면 바깥쪽으로 오버래핑을 시작했다. 이후 황인범의 침투 패스를 받은 바카에프가 문전으로 연결한 컷백을 또 드레이어가 마무리했다.

이 외에도 황인범은 26분과 28분에도 중원에서 볼을 잡은 후 왼쪽 측면으로 넓게 벌려서 파이널 서드를 향해 전진하는 크바라츠켈리아에게 상대 수비 블록을 갈라놓는 전진 패스를 연결했다. 또한, 황인범은 76분 2선 중앙 지역에서 볼을 키핑하며 오른쪽 측면을 통해 페널티 지역까지 침투하는 드레이어에게 상대 선수 서너 명을 단숨에 스쳐 지나가는 침투 패스를 연결해 홈구장을 메운 팬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이날 그는 측면으로 벌려주는 패스가 여의치 않을 때는 자신보다 앞선에 배치된 채 웬만해서는 3선으로 내려오지 않는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하크샤바노비치에게 적재적소의 전진 패스를 넣어주며 차근차근 빌드업을 전개했다. 황인범이 다양한 패스 선택지를 보유하자 상대 수비진 또한 정해진 공간에서 밀집 수비를 펼치는 데만 집중하지 못하고 대형의 폭을 좌우로 넓게 벌릴 수밖에 없었다.

상대 수비 대형이 열리자 황인범은 후반 들어 65분 하크샤바노비치, 88분 바카에프의 위협적인 슈팅을 만들어낸 키패스를 기록했다.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 또한 손흥민, 권창훈 등은 빼어난 침투 능력을 보유한 2선 자원이 즐비하다. 선수들 사이에 명확한 역할 분담만 이뤄진다면 벤투호 역시 최종예선에서 만난 중동 5개국의 밀집 수비를 뚫어낼 공격 패턴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황인범에게 대표팀과 루빈 카잔이 다른 또 한 가지는 최전방 공격수의 성향이다. 루빈 카잔의 최전방 공격수 조르제 데스포토비치는 골문을 등 진 상태로 상대 수비수의 견제를 버텨내며 볼을 간수해주는 능력이 탁월하다.

데스포토비치가 이처럼 포스트 플레이를 해주면 2선에 배치된 선수들이 파이널 서드로 진입할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이날 38분 후방 미드필드 지역에서 볼을 잡은 황인범이 밀집 수비를 펼치는 우랄의 대형을 뚫을 만한 패스 루트를 찾지 못하자 데스포토비치가 2선까지 내려온 장면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데스포토비치는 자신이 직접 미드필드 지역으로 내려와 황인범이 후방에서 찔러준 전진 패스를 받은 후 상대 수비수를 등진 채 볼을 지켜냈다. 데스포토비치가 시간을 벌어준 사이 2선까지 올라온 황인범은 리턴패스를 받아 위협적인 중거리슛을 시도하며 상대 골문을 위협했다. 현재 상황에서 황의조가 차지하는 대표팀 내 비중은 절대적이지만, 타겟형 공격수를 발탁해 플랜B를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기 상황에 따라 밀집된 공격 진영 공간에서 상대 골대를 등진 채 볼을 지켜주는 타겟형 공격수의 역할은 2선 공격진의 파괴력을 올려줄 최적의 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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