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republicKFA

코너에 몰린 축구협회, 신태용 감독마저 위태롭게 만들었다

[골닷컴] 서호정 기자 = “판 뒤집혔다.” 14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부임설에 대한 기자회견을 연 뒤의 상황은 영화 ‘베테랑’에서 형사 황정민(서도철 역)이 외친 말과 딱 들어맞는다. 

불 난 집에 물을 뿌려야 할 판에 기름을 부었다. 김호곤 기술위원장은 히딩크 재단 측에서 대표팀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메시지의 존재를 놓고 입장을 뒤집었다. 지난 9월 7일 우즈베키스탄 원정 경기를 마치고 돌아온 자리에서 김호곤 기술위원장은 “금시초문이다. 불쾌하다”며 접촉 자체를 부정했다. 하지만 14일 히딩크 감독 측이 지난 6월 의사를 전달한 증거가 있다고 하자 그제서야 모바일 메시지를 받았던 사실을 인정했다.

대한축구협회와 김호곤 기술위원장도 할 말은 있다는 입장이다. 15일 보도자료를 통해 “메시지 내용 자체가 적절하지 않았고, 공식적인 제안이라 생각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메시지는 기술위원장 취임 전이었고, 히딩크 감독 측에서는 남은 최종예선 2경기부터가 아닌 본선 진출 시에 맡겠다는 의사를 보인 만큼 후보군으로 삼기 곤란했다는 게 그들의 얘기다.


주요 뉴스  | "[영상] 음바페 데뷔골, PSG 5-1 대승 H/L"

하지만 이제 중요한 것은 메시지의 진의에 대한 해석이 아닌 상황 그 자체다. 말 바꾸기를 비롯한 대한축구협회 측의 엉성한 처신과 대처가 신뢰를 땅바닥에 떨어트렸다. 우즈베키스탄전 이후 대한축구협회의 입장을 듣고는 원칙과 명분에 근거해 히딩크 감독 부임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보였던 언론들도 신뢰를 잃어버리게 됐다. 

이번 논란이 흘러가는 과정에서 대한축구협회가 보여준 태도와 대응은 대한민국 최고의 축구 엘리트 집단이라 보기 민망할 정도다. 히딩크 재단 측의 주장에 대해 내부의 누가 메시지를 받았는지, 입장을 밝힌 적이 있는지 제대로 확인도 못 했다. “불쾌하다”, “1%의 가능성도 없다” 등의 감정적인 답변으로 일관하다가 진실공방으로 카운터를 맞았다. 

14일 히딩크 감독의 기자회견 이후에도 철두철미한 내부 확인 없이 문자 한통으로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하지만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김호곤 기술위원장이 히딩크 감독 측의 입장을 전달 받았던 사실을 인정하면서 모든 판은 뒤집어졌다.

때마침 대한축구협회는 전임 집행부의 고위 임원들이 법인카드 등으로 공금을 무분별하게 사적 사용한 것이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조중연 전 대한축구협회 회장, 이회택 전 부회장 등 유명 축구 선수 출신의 임원 11명은 업무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도덕성이 바닥을 뚫고 내려가려 하는 상황에서 히딩크 감독에 대한 논란마저 엉성하게 대처함으로써 국민 여론은 들불처럼 일어났다. 대한축구협회가 15일 내놓은 입장이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것은 첫 단추를 거짓말로 끼웠기 때문이다.

Shin Tae-yongKFA

이런 상황에서 가장 난처해진 건 현재 대표팀을 이끄는 신태용 감독이다. 비록 험난한 과정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축구 인생을 건 2경기를 돌파하며 본선 진출이라는 자신의 책임을 마쳤다. 그 보상으로 선수 시절 한번도 나가지 못한 월드컵 본선에 감독으로서 나가는 꿈을 이뤘다.


주요 뉴스  | "[영상] PSG 데뷔전, 음바페 활약상 모음 ”

현재 상황에서는 월드컵 본선까지의 9개월이 더 험난해지게 생겼다. 신태용호가 9개월 동안 본선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끊임없이 히딩크 감독의 과거 업적과 비교당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장 10월 유럽 원정, 11월 국내 평가전, 12월 동아시안컵에서 패배하면 히딩크 감독을 데려오라는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 있었다. 

정몽규 회장과 김호곤 기술위원장 모두 신태용 감독을 신뢰하며 러시아 월드컵까지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신태용 감독은 그 신뢰와 상관 없이 엄청난 중압감과 부담을 안아야 한다. 본선에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9개월의 시간 동안 시행착오가 나올 수도 있지만 그마저도 용인되기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

히딩크 감독 측의 입장에 대해 “대응할 가치가 없다”며 눈 감고, 귀 막았던 대한축구협회의 자세는 안일했다. 정확한 내부 확인, 그에 따른 적절한 대응 없이 무시하고 갈 길 가겠다고 했지만 스스로의 잘못으로 크게 넘어졌다. 불신의 시선은 이제 대표팀과 신태용 감독에게까지 번질 기세다.

광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