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홍의택 기자 = 처음 듣게 된 출격 명령. 체력 안배나 시간 떼우기용이 아닌, 전현직 국가대표들을 막으라는 중차대 임무를 받들었다. "긴장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라던 이 청년은 "그래도 저 괜찮게 한 건 같은데..."라며 수줍어했다.
강원FC 송준석 이야기다. 24일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1 12라운드 전북 현대전. 김병수 감독은 왼쪽 윙백으로 2001년생 신예를 기용한다. 오른쪽 임창우가 선제골을 돕는 등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가운데, 왼쪽 송준석의 존재도 상당했다.
대동초, 중동중 등 축구 명문팀을 차례로 거친 송준석은 섬세하게, 야무지게 볼을 찬다는 평을 받아왔다. 운동장 밖에서는 순한데, 안에만 들어가면 매섭게 돌변한다는 얘기도 들렸다. 청주대 재학 중 강원 테스트 기회를 받은 이 선수는 기어이 정식 계약까지 이끌어냈다. 강원 구단은 "또 다른 연습생 신화를 기대한다"며 신인 송준석을 소개했다.
"테스트 받으러 동계 훈련에 합류했을 때는 고생 많이 했어요. 프로 형들이 워낙 빠르잖아요. 한 달 정도 지나니까 겨우 섞여서 적응한 정도? 김병수 감독님 축구는 어렵기도 한데 재밌는 거 같아요. 볼을 다 같이 공유한다는 개념이라 부지런히 관여해야 해요"
올해 K리그는 U-22 룰이 화제다. 특정 연령대 선수를 의무로 내보내야 하는 규정 덕에 유망주들의 기회가 급증했다. 단, 이마저도 포지션별 편차는 있는 편. 조직력 등을 고려했을 때 아무래도 공격 쪽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았다. 측면 수비로 분류된 송준석도 주로 B팀에서 담금질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던 중 갑자기 부름을 받았다. 그것도 1위팀 전북을 상대로 말이다. 송준석은 스리백을 가동한 팀에서 왼쪽 윙백으로 기용됐다. 측면으로 펼쳤을 떄는 이용과 마주했고, 중앙으로 좁혔을 때는 김보경과 부대꼈다. 만 스물밖에 되지 않은 송준석에게 전현직 국가대표 형들을 막으라던 김병수 감독의 주문은 조금 잔인해(?) 보이기까지 했다.
"경기 나간다는 얘기 듣고 긴장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TV에서 보고 자란 스타 플레이어 형들이니까 되게 신기하고, 보는 것만으로도 짜릿짜릿해지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부딪혀보니 해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제가 또 외모가 어려 보여서 만만하게 비치면 안 될 거 같아 더 거칠게 했죠"
초반만 해도 경직된 듯했던 신인은 차차 두각을 드러냈다. 프로 경기를 처음 뛰는 선수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U-22 룰 때문에 마지못해 낸 선수란 인상도 전혀 없었다. 공수를 겸해야 하는 중요 포지션으로 문제가 있었다면 일찌감치 교체를 단행했을 터. 이날 송준석은 총 71분간 제 몫을 톡톡히 하고 들어갔다.
강원의 기대주들은 "형들"이란 말을 유독 자주 한다. 송준석도 본인 기를 살려준 형들을 빼놓지 않았다. 강원은 임채민, 한국영, 신세계, 고무열, 이범수 등 90년생을 주축으로 한 견고한 뼈대를 자랑하는데, 이를 향한 동생들의 충성심도 대단하다. 김병수 감독도 "우리만의 분위기가 있어 쉽게 안 흔들린다"고 자랑할 정도다.
"제가 경기 전에 떨고 있는데 라커룸에서 형들이 '괜찮아', '하고 싶은 대로 해', '혹 못해도 형들이 다 알아서 할 테니까'라고 해주시는 거예요. 그리고 경기 끝나고는 다들 '너무 잘했다'고 박수 쳐주시고 엄지 보여주시고. 정말 감사했어요. 기회가 갑작스럽게 빨리 온 것도 있지만, 다시 온다면 더 잘하고 싶어요"
강원은 이날 1-1로 비기면서 3경기 연속 승리를 거머쥐지 못했다. 하지만 송준석이란 신예가 첫발을 내딛던 모습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B팀을 꾸려 K4리그에 참여하는 등 구단 차원에서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는 만큼 또 다른 보석의 등장도 기다려볼 만하다.
사진 = 강원F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