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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학축구 최고 인기팀 주장 김서인 이야기

[골닷컴,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바라] 한만성 기자 = 미국 대학 축구계에서 캘리포니아주 휴양지에 캠퍼스를 둔 UC 산타바바라(이하 UCSB)는 일종의 ‘돌연변이’로 알려졌다. 그 이유는 UCSB 남자 축구가 미국의 전통적인 대학 스포츠인 미식축구, 농구 등에 버금가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남녀 대표팀과 자국 프로 리그 MLS가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대학 스포츠에서 축구는 대개 비인기 종목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UCSB 만큼은 예외다.

UCSB 남자 축구팀의 지난 2016 시즌 경기당 평균 관중수는 3,844명. 유럽 빅리그 관중수와 견줄 만한 수치는 아니지만, 올 시즌 K리그 클래식 12팀 중 평균 관중수가 이에 미치지 못하는 구단은 세 팀(강원, 상주, 제주)이나 된다. 심지어 UCSB가 라이벌 학교 캘 폴리와 펼치는 ‘블루-그린 라이벌전(Blue-Green Rivalry)’을 매년 홈구장 하더 스타디움에서 치를 때면 매번 1만5천여명의 관중이 운집한다. 작년 ‘블루-그린 라이벌전’에서도 UCSB의 홈 관중수는 14,919명에 달했다. 이처럼 UCSB는10년이 넘도록 미국 대학 축구 평균 관중수 1위를 질주한 최고의 인기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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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라이벌 캘 폴리(Cal Poly)와의 홈 경기 관중석을 가득 메운 UCSB 팬들의 모습

미국 대학 축구팀 중 프로 무대에 가장 근접한 분위기에서 홈 경기를 치르는 UCSB의 다가오는 2017 시즌 팀 주장은 한국인 미드필더 김서인(22)이다. 단 다섯 살의 나이에 가족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그는 MLS 강호 스포팅 캔자스 시티 유소년 팀을 거쳐 대학 1, 2학년을 명문대 듀크 선수로 활약했다. 이후 김서인은 큰 기대를 품고 진학한 듀크대 축구팀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미국 대학 스포츠계의 ‘축구 명문’ UCSB로 편입해 현재 4학년 졸업반을 재학 중이다. 그는 오는 9월 개막하는 미국 대학 축구 시즌을 앞두고 UCSB 주장직을 부여받았다.

최근 ‘골닷컴’과 인터뷰를 마친 김서인은 이후 미국 대학축구 비시즌 기간을 틈타 크로아티아로 떠났다. 그는 현재 크로아티아 1부 리그 구단 NK 이스트라 팀 훈련에 합류해 몸만들기에 매진하고 있다. 현재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활약 중인 정운이 한때 몸담은 이스트라는 김서인에게 약 3주간 훈련할 기회를 제공하며 기회가 된다면 미래에는 그의 입단 가능성도 타진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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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서인은 현재 크로아티아 1부 리그 팀 이스트라 팀 훈련에 참가 중이다

다만 김서인은 일단UCSB 졸업 후 내년 MLS 드래프트 참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MLS 구단 스포팅 캔자스 시티 유소년 아카데미를 거친 그는 여전히 친정팀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프로 무대 진입을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스포팅 캔자스 시티 유소년 팀 시절 김서인은 자주 1군 팀 훈련에 합류할 정도로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MLS 2군 경기에도 간간이 출전하며 프로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는 2017 시즌을 끝으로 내년에는 MLS 진출을 노린다. 학업을 이유로 대학에 진학한 김서인이MLS 드래프트에 참가하면, 그는 스포팅 캔자스 시티의 ‘홈그로운’ 선수로 분류된다. MLS 각 구단은 드래프트에서 ‘홈그로운’ 선수를 우선 지명할 수 있다.

한국 축구계 또한 이러한 김서인의 성장을 유심히 모니터링하는 중이다. 지난 2014년 한국 U-20 대표팀을 이끈 김상호 감독은 김서인의 활약상이 담긴 영상으로 가능성을 확인한 뒤, 그를 직접 국내로 불러 면담을 하기도 했다. 김상호 감독은 당시 황희찬(RB 잘츠부르크), 백승호(바르셀로나), 서영재(함부르크)를 발탁한 U-20 대표팀에 김서인의 합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은 그가 미국 대학축구 시즌을 소화 중이던 10월에 열린 아시아 U-19 선수권대회에서 조별 리그 탈락을 당하며 이듬해 열린 U-20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김서인이 합류할 기회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러나 김서인은 작년 초 서울 E랜드의 미국 전지훈련에 초청 선수로 합류하는 등 한국 축구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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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닷컴’이 김서인과 직접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나눈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미국에서 프로 무대 진입을 꿈꾸는 한 선수를 조명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불과 최근 몇 년 사이에 유소년 아카데미 시스템을 도입한 MLS 구단의 선수 육성과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문화를 두루 경험한 선수다. 미국 축구 또한 한국과 마찬가지로 프로 구단이 주도하는 유소년 아카데미 축구가 여전히 정착 중이면서도 대다수 어린 선수들은 대학 무대를 거친 후 MLS 진입을 노리고 있다. 아마 현재 한국과 가장 비슷한 방식으로 선수를 육성하는 나라가 있다면, 이는 미국일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한국과 미국 축구의 선수 육성 과정에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김서인은 한국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미국의 풀뿌리 축구를 경험한 몇 안 되는 한국 선수 중 한 명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그의 이야기를 들어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 어린 시절 이민 후 미국 ‘시골 동네’ 캔자스에서 자란 김서인

-골닷컴: 먼저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한 계기가 궁금하다. 그것도 많은 한국인 이민자나 유학생이 택하는 LA, 뉴욕이 아닌 캔자스에서 자랐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김서인: 어릴 때부터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아버지는 일단 우리 가족을 한국에 남기고 단돈 300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먼저 와서 공장에서 일하며 우리를 부양할 환경을 마련하는 데 집중했다. 우리가 캔자스로 가게 된 이유는 당시 고모가 국제결혼을 했는데, 남편의 고향이 캔자스 옆에 위치한 미주리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버지도 미국 중부 지역에 터전을 마련하게 됐다. 아버지께서 나와 우리 형(김서현)에게 새로운 환경을 제공해주기 위해 미국 이민을 택했다.

-캔자스 하면 야구(캔자스 시티 로열즈)와 미식축구(캔자스 시티 치프스) 인기가 엄청난 곳이다. 그런 곳에서 자라며 축구 선수로 성장했다는 게 신기하다.

아버지는 미국에 오신 후에도 평범한 한국 아저씨와 똑같은 취미 생활을 유지했다. 조기 축구를 하고, 한국 대표팀 축구를 보는 게 아버지의 취미였다. 나 또한 단 일곱 살 때 아버지 옆에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TV로 봤다. 그 대회가 어떤 대회였는지는 특별히 설명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그러면서 축구, 한국 축구와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졌다. 형과 나는 곧 지역 유소년 축구팀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내가 축구를 정식으로 시작한 10살 즈음에는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갔다. 나와 비슷하게 생긴, 한국 선수가 세계 최고의 팀에서 뛰는 걸 보면서 나도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이 더 커졌다. 당시만 해도 시골 마을이었던 캔자스에서 자란 건 어쩌면 행운일지도 모른다. 그런 곳에서 자란 덕분에 정말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웃음).

그러면서 지금은 없어졌으나 당시에는 유소년 축구 선수가 미국 축구협회의 관리를 받으며 연령별 대표팀 선수로 분류되는 프로그램인 ODP(Olympic Developmental Program)에 발탁됐다. 이때 처음으로 미국 14세 이하 대표팀에 발탁돼 이탈리아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그때 나와 함께 대표팀에서 뛴 켈린 아코스타는 지금 FC 댈러스에서 뛰고 있고, 폴 아리올라는 미국 성인 대표팀에도 발탁됐다. 풀럼에서 활약 중인 에머슨 힌드먼도 팀 동료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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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자스주는 인구 중 80% 이상이 백인이다. 한국에서 온 아이가 자라며 적응하기가 말처럼 쉽지는 않았을 텐데.

부모님께서 워낙 나와 형이 미국에서 자라는 데 문제가 없도록 온 힘을 다해주신 게 가장 크다. 그러나 그다음은 축구다. 축구는 내게 정체성을 찾아준 존재나 다름없다. 게다가 축구를 하면서 어린 나이에 겉만 보면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는 히스패닉, 흑인 친구들과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었다. 축구를 통해 나와 다른 문화에서 온 친구들과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떠났는데도 한국 이름을 그대로 유지한 점도 눈에 띈다.

한국에서 온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다는 건, 집에서는 한국인처럼 살면서도 밖에 나가면 전혀 다른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는 현실을 의미한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우리나라를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당연히 부모님은 내가 미국에서 교육받기를 원하셨지만, 그렇다고 내가 미국 사회가 강요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되는 건 원치 않으셨다. 한국과의 인연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는 것. 그 두 가지를 항상 가르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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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어린 시절 형 김서현(왼쪽)과 함께 캔자스주 대회 우승을 차지한 후 아버지 김국진 씨와 함께 선 김서인

# 비슷하면서도 다른 미국과 한국의 학원 축구

-MLS 구단 스포팅 캔자스 시티의 유소년 아카데미에 입단하게 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사실 어린 시절 축구는 내게 ‘탈출구’ 같은 존재였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못해 설움을 분출할 곳이 필요했다. 그때 스스로를 표현하고 감정을 마음껏 드러낼 기회를 준 게 축구였다. 그런데 축구가 ‘직업’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바로 스포팅 캔자스 시티 입단이었다. 고등학교 1, 2학년을 마친 후 스포팅 캔자스 유소년 아카데미 이사이자 과거 에버튼에서 선수로 활약한 폴 라이트가 나를 찾아와 내 플레이가 마음에 든다며 축구로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나를 설득했다. 결국, 고등학교 축구부에서 2년간 활약한 나는 스포팅 캔자스 시티와 아마추어 계약을 맺고 아카데미 팀에 입단했다.

MLS 구단 아카데미에 입단하니 14, 15세의 어린 나이에 프로 선수에게 주어지는 환경에서 운동할 기회를 잡았다. 이와 동시에 프로 구단의 일원이 되기는 했으나 ‘아직은 아카데미 선수’라는 꼬리표도 함께 달렸다.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에서 축구를 하게 된 셈이다. 그때부터는 진짜 남자가 돼야 한다는 강박에도 시달렸다. 솔직히 말하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환경에 익숙해지다 보니 더는 축구를 재미로만 하는 시기는 지났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 반대로 축구는 직업이 될 수 있고, 축구로 가족을 부양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목표 의식도 동시에 생겼다. 학교 축구부원이 아닌 프로 구단의 선수가 되면서 내가 정신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프로팀 유소년 선수가 되며 ‘학원 축구’로는 얻을 수 없는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미국 축구협회는 프로 구단 유소년 아카데미에 입단한 선수가 재학 중인 학교에서 축구부 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학교를 다니면서 운동은 프로팀에서 따로 하는 식일 텐데,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는지 간략하게 설명해줄 수 있나? 반대로 한국은 K리그 구단이 지역 학교를 산하로 두고 유스 팀을 운영하는 형태로 선수 육성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먼저 학교에 가서 수업을 마치면, 오후 세 시 정도가 된다. 이후 직접 운전을 하고 네 시 반까지 스포팅 캔자스 시티 구단 훈련장으로 가야 했다.  훈련은 두 시간 동안 진행되는데,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서 학교 숙제를 해야 했다. 이후 잠을 잔 후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다. 프로 구단 유소년 아카데미는 주 7일 집합한다. 고등학생 시절 절반은 학교 밖에서 축구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도, 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는 학교에 있는 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는 빨리 숙제를 하는 데만 집중했다. 그래야 학교에 있거나 운동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휴식을 취해 축구에 모든 걸 쏟을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거기다 나는 스포팅 캔자스1군 훈련에 소집될 때가 잦았다. 이럴 때는 가뜩이나 빡빡한 일정에 유소년 아카데미 팀 훈련과 1군 훈련을 병행하면서, MLS 2군 경기에도 출전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강행군을 견뎌야 했다. 그런데 이는 모두 축구 선수가 되려면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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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MLS 2군 경기에서 활약 중인 김서인

-미국 축구협회는 2012년부터 MLS 모든 구단의 유소년 아카데미 설립을 필수화했다. 그러면서 프로 구단 유소년 팀에 입단하는 고교 선수는 학교 축구부 활동을 금지한다는 논란의 소지가 있는 규정을 새로 만들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학원 스포츠는 미국 스포츠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본인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미국도 유럽의 선수 육성 모델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특히 나는 이 규정이 생긴 직후 MLS 구단 아카데미에 입단한 케이스라서 여기에 관련해 할 말이 정말 많다. 학원 축구를 거친 선수와 프로 구단의 지원을 받으면서 축구에만 집중하는 어린 선수의 실력차는 클 수밖에 없다고 본다. 나는 2년간 미국 고교 축구를 거친 후 나머지 2년은 MLS 아카데미 축구를 했기 때문에 직접 이런 부분을 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은 아카데미 시스템 도입 후에도 아직 후진적인 면이 아예 없어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미국 축구는 미식축구, 농구처럼 애초에 어린 선수를 발탁할 때 체격 조건이 우월하고 운동 신경이 좋은 선수를 선발해 그들의 선천적인 능력에만 의존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도 어쨌든 학원 축구의 틀에서 벗어나 프로 구단에 선수 육성을 맡기는 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축구를 해서는 ‘풀타임 축구선수’의 삶이 어떤지 절대 알 수 없다. 학교가 제공하는 기회 안에서만 축구를 하면 반쪽짜리 선수가 될 수도 있다.

-미국에서 학원 스포츠는 선수가 학교에서 평균 이상의 성적을 내지 못하면, 운동도 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MLS 아카데미 선수는 축구를 하는 데 학교 성적과 아무런 관련이 없나?

전혀 없다. 나는 장차 축구 선수를 꿈꾸는 학생이 학교에서 어느 정도 성적을 유지해야만 운동을 하게 허락하는 규정과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어차피 지금 미국의 연령별 대표팀을 보면 유럽에서 성장한 선수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이들은 모두 어릴 때부터 축구에만 전념한 친구들이다. 정말 이 선수들이 학교 공부를 덜 했다고 해서 인격적으로 미국에서 공부와 운동을 병행한 선수들보다 뒤처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와 스포팅 캔자스 아카데미에서 같이 운동한 친구 중 축구계를 떠난 이들이 꽤 많다. 이들 모두 지금 평범한 대학생이거나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중 한 명은 일찍 대학을 졸업하고 골드만 삭스(미국 증권회사)에 취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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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부분이 한국과 미국의 유소년 축구가 비슷한듯하면서도 다른 점이다. 한국은 오히려 K리그 구단 산하 유소년 팀을 초중고 축구부와 연결해 ‘공부하는 선수’를 육성하는 데 집중하는 추세다. 심지어 최근 U리그는 선수가 평균 C학점 이상을 유지해야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반대로 미국은 ‘공부하는 선수’를 육성한 과거와 달리 이제는 ‘어차피 축구 선수가 될 아이라면 더 일찍 운동에 전념하게 하자’는 취지로 새 규정을 만들었다.

2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명지대 축구팀 훈련에 참가해 몸상태를 유지할 기회가 있었다. 한국도 미국과 비슷하게 학원 축구, 그리고 드래프트 제도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고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물론 선수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학원 축구라는 환경 안에서는 선수가 한계에 도전할 기회가 제한된다고 생각한다. 학원 축구에만 익숙했던 나는 스포팅 캔자스 유소년 아카데미에 입단한 후 16세 때 18세 이하 팀으로 월반해 일찌감치 차원이 다른 무대를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16세 때부터 프로팀 2군 경기에 출전하는 건 정말 소중한 기회다. 내가 이런 경험을 했다고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이런 기회가 주어지는 환경이 더 많은 어린 선수에게 제공되는 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 일찌감치 프로 진출 준비한 김서인, 대학 진학한 이유는?

-그런데도 본인은 결국 고교 졸업 후 바로 프로행이 아닌 대학 진학을 택했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듀크대는 내가 스포팅 캔자스 시티 유소년 아카데미와 MLS 2군 리그에 출전해 활약한 선수라는 데 관심을 나타내며 학비 전액과 기숙사 비용까지 모두 부담하겠다는 ‘장학금 패키지’를 제안해왔다. 듀크는 누구나 아는 명문대다. 그런 학교에 재정적인 부담 없이 갈 수 있다는 건 나 자신을 떠나 우리 부모님에게도 ‘아메리칸 드림’ 그 자체였다. 내게도 듀크대는 환상적인 학교였다. 대학을 거친 후에도 프로 진출이 가능한 점을 고려할 때, 대학 생활을 해보는 것도 충분히 내가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어서 듀크대로 가기로 했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내게 우선 순위는 축구였다. 듀크대 축구팀의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정작 축구 수준은 경쟁력이 떨어지는데, 학교 이름만 보고 그곳에서 4년을 허비하는 건 내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2학년을 마친 후 미국 대학축구 순위권에 진입한 팀이자 최고 인기팀UCSB로 편입했다.

대학에 진학한다고 해서 프로 진출을 포기하는 건 절대 아니다. 지금 스포팅 캔자스 시티 주장인 멧 비즐러는 나와 똑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다. 이후 비즐러의 고향팀 캔자스 시티가 4년간 대학을 다닌 그를 드래프트(2009년)를 통해 우선 지명했다. 비즐러는 지금 스포팅 캔자스 시티 주장이자 미국 대표팀의 주전급 선수로 활약 중이다. 그는 지난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캔자스 출신 선수들에게는 비즐러가 롤모델이다.

-실제로 UCSB 편입 후 전미대학 체육협회(NCAA) 주관 전국 토너먼트 16강에 진출했고, 그 경기에서 직접 골까지 넣으며 두각을 나타냈다. 팀의 경쟁력을 떠나 대학 무대인 데도 매 경기 많은 관중 앞에 선다는 점이 무엇보다 매력적인 부분 같은데.

나는 어릴 때부터 프로 무대를 준비시켜주는 곳에서 운동을 한 선수다. 중간에 대학 진학을 택하긴 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프로 진출인 만큼 대학에서도 최대한 프로 무대와 근접한 분위기에서 뛰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라이벌 캘폴리와의 경기 때마다 홈팬 15,000명이 관중석을 꽉 채우는 모습은 미국 대학 축구에서 다른 학교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UCSB는 2006년 전국대회 우승 후 10년이 넘도록 ‘축구 붐’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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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 팀 훈련과 작년에는 서울 E랜드의 미국 전지훈련에 참가해 한국 축구 문화를 조금이나마 체험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본 한국 선수들은 정말 스타일이 다이나믹했다. 심지어는 실전을 소화한 직후 스프린트 훈련을 하더라. 그들이 죽기 아니면 살기로 운동하는 모습을 보는 게 내게도 큰 동기부여가 됐다. 서울 E랜드 훈련에 참가하기 전에는 걱정도 많았다. 혹시 미국에서 자란 내가 선후배 관계나 한국만의 불문율을 잘 모르고 경솔한 행동을 할까봐 걱정했다. 그런데 팀에 합류하니 형들이 너무 잘 대해줘 오히려 놀랐다(웃음). 그때 만난 (조)원희 형과는 요즘에도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연락을 자주 주고받는다. 원희 형이 먼저 내게 연락해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봐 줄 때마다 고마운 마음이 크다. 원희 형은 정말 훌륭한 사람이었고, 내 롤모델이기도 하다.

# 김서인의 꿈

-이제 졸업반이 됐다. 대학무대에서 활약할 마지막 시즌을 앞두고 있다.

주장이 됐기 때문에 책임감도 커졌다. 지난 2015년처럼 NCAA 토너먼트 본선에 진출해서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 지난 시즌에는 팀에 부상자가 너무 많았다. 나 또한 십자인대 부상 탓에 뛸 수 없었다.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친 후 홀가분하게 MLS 드래프트를 준비하고 싶다.

-목표로 하는 MLS 진출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텐데.

자신 있다. 나는 MLS 구단 유소년 아카데미 출신이고, 고등학교 졸업 직후 프로 계약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굉장히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 스포팅 캔자스 시티 아카데미에서 함께 뛴 동료 중에는 프랑스와 그리스로 진출한 친구도 있다. 그러나 나는 MLS 진출을 우선으로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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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미국 스포츠 방송 'ESPN'을 통해 김서인이 활약한 UCSB의 NCAA 16강 경기가 미국 전역에 방송된 장면을 캡처한 사진. 이날 김서인은 선제골을 터뜨렸으나 팀은 아쉽게 역전패를 당했다.

-혹시라도 프로 진출이 어려워진다면 다른 진로 계획을 세워둔 게 있나?

없다. 나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며 살지 않는다. 내가 하고싶은 일에 100% 집중할 뿐이다. 지금 내 계획에는 축구밖에 없다. 다른 생각은 안 한다.

-장기적 목표는?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다. 대학 진학을 택하면서 일찍 프로로 간 선수들보다 한발 뒤처졌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프로 무대로 갈 기회를 잡아서 내 실력을 증명하고 싶다. 꿈이 있다면 대표팀 선수가 되는 것이다. 한국 국가대표 선수가 되고 싶다.

-미국 연령별 대표팀도 경험했는데 한국 대표팀 선수가 되고 싶은 이유가 있나?

앞서 갈 마음은 없다. 그러나 내가 계획대로 프로 선수가 돼 실력을 증명한 뒤, 기회만 주어진다면 무조건 한국을 택하고 싶다. 그러려면 군대에 가야 한다는 사실도 이미 잘 알고 있다. 내가 태어난 곳을대표하는 선수가 되는 게 내 최종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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