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슈퍼매치한국프로축구연맹

[홍재민.칼럼] 수원이 춤출수록 서울은 죽어갔다

[골닷컴] 올 시즌 세 번째 슈퍼매치가 있었다. 순위표에서 양쪽의 위치에는 딱히 변함이 없다. 그냥 그랬던 것처럼 아래쪽이다. 우승권, AFC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은커녕 파이널A 순위도 둘에겐 ‘바동바동’의 목표다. 지상파에서 자리를 잃은 현실도 이젠 익숙하다. 한때 4만 관중을 동원했던 슈퍼매치는 지상파 편성표에서 예능 재방송에 밀린다. 희망을 잃지 않은 16,333명이 고마울 따름이다.

서울은 빨간색, 수원은 파란색이다. 색상환표에서 거의 반대편에 속하는 색깔이다. 차이가 뚜렷하다는 뜻이다. 올 시즌 세 번째 슈퍼매치는 이런 대비가 유난히 뚜렷했다. 경기 후, 안익수 감독이 “우리 모두가 죽어있는 느낌”이라고 말한 이유이기도 했다. 홈팀 서울은 속절없이 무너졌고, 수원은 훨훨 날았다. 후반전 나상호가 경고누적으로 레드카드를 받았다. 갈 길 바쁜데 퇴장당하는 주장이라니. 이날 서울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모든 면에서 수원이 앞섰다. 이병근 감독이 “많이 준비했다”라는 말한 것처럼 수원은 상대 빌드업 경로를 미리 파악하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다가 볼을 받는 선수에게 달려들어 쉽게 볼을 빼앗았다. 서울 중원에서 패스를 연결하는 포인트 선수들은 마치 색(sack) 당하는 미식축구(NFL) 쿼터백처럼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그때마다 수원은 짧은 역습(short break)을 시도했다. 선제골, 추가골이 나온 뒤로도 이런 장면은 반복되었다. 작정하고 나온 수원의 압박에 서울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7분 뒤, 수원의 오현규가 스코어를 3-0으로 만들었다. 파란 우비들이 비에 젖어 “후! 후! 후!” 할 때마다 반짝거렸다. 고개를 돌려 반대쪽을 봤다. 관중석 사이로 난 통로를 따라 귀가 행렬이 보였다. 제 자리에 남은 팬들의 이유가 ‘넋이 나가서’인지, ‘그래도 일류첸코가 있으니까’인지를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기자석 오른쪽 통로를 따라 빨간색 커플이 힘없이 출구 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여자친구는 한쪽 팔로 아직 뜯지 않은 과자 봉지를 끼고 있었고, 남자친구의 고개는 강한 중력 작용으로 인해 땅바닥에 닿을 지경이었다.

오현규의 두 번째 골은 축구도 얼마든지 고통스러운 스포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이종격투기, 복싱, 태권도, 유도를 생각해보자. 한 방 제대로 들어가면 그걸로 끝난다. 패배자의 고통은 크지만 짧다. 축구를 하는 서울은 그런 사치를 누리지 못한다. 0-3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징기스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옛날 옛적 몽골 부대는 생포한 적장들을 멍석에 말아 넓게 깐 위에 상을 차리고 회식을 즐겼다. 적장들은 멍석 안에서 천천히 죽어갔다. 스코어라인이 0-3으로 바뀐 순간부터 경기 종료까지 30분 동안 서울은 천천히 죽어가는 고통을 맛봐야 했다. 정동식 주심의 종료 휘슬은 차라리 구원이었다.

누가 이기든 상관없는 기자석에서 세 번째 슈퍼매치는 볼거리가 아주 많았다. 오현규는 나상호의 푸시업을 갚았다. 심지어 지난 4월 나상호가 세리머니를 펼쳤던 바로 그 위치였다. 오현규의 어이없는 실축을 비웃었던 홈 서포터즈는 10분도 지나지 않아 똑같은 선수의 세리머니를 저주했다. 일류첸코와 이종성은 계속 거친 신경전을 벌였다. 라이벌전에서 이런 장면은 MSG처럼 자극적이고 구미를 당기는 요소일 수밖에 없다. 처절한 분위기 속에서 홈팀 장내 아나운서는 명랑한 목소리로 경품 당첨자들에게 수령방법을 안내했다.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시리 같았다.

경기 후, 기자회견실에 들어온 이병근 감독과 ‘수훈선수’ 오현규의 표정은 상기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강팀이 되도록”, “챔피언스리그에 나갈 수 있도록” 등 흥분 가득한 문장들을 선보였다. 패장 안익수 감독은 “면밀히 검토하겠다”라는 말을 반복하고 힘없이 퇴장했다. 물론 이날 수원의 환희와 서울의 고통 뒤에도 둘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서울은 8위, 수원은 9위에 처져 있다. 양쪽의 잔여 4경기가 일정과 상대 모두 험난해서 파이널 윗물행을 장담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이날 슈퍼매치는 올 시즌 최다 관중 기록을 세우면서 최소한 중립 팬들에겐 많은 구경거리를 선물했다. 평균관중 폭락과 지자체 구단들의 창단 러시가 동시에 벌어지는 K리그 미스터리 안에서 이런 열전은 한가닥 희망일지 모른다.

서울 슈퍼매치한국프로축구연맹

글 = 홍재민

사진 =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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