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전은 벤투호의 민낯이었다. 수비가 불안하고, 일대일 대결에서 밀리고, 후방 빌드업은 통하지 않았다. 손흥민은 걸출한데 그의 능력을 살릴 상황을 만들지 못한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이미 우리가 알고 있던 문제들이다. 바깥에 있는 우리가 알 정도이니까 파울루 벤투 감독과 코팅스태프도 당연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FIFA랭킹 1위 팀은 그런 ‘문제 목록’을 하나씩, 조목조목, 친절하게 리뷰해줬을 뿐이다.
#1. 공격과 수비의 퀄리티 차이가 크다
브라질전에서 한국의 3, 4선은 일대일 싸움에서 압도당했다. 단순히 실력 부족해서가 아니다. 경기에 임하는 속도와 압력이 부족했다. 선제 실점 장면이다. 브라질의 알렉스 산드루가 한국의 오른쪽 수비 2인 사이로 치고 들어가 득점 기회를 만들었다. 알렉스 산드루는 빠르거나 현란하지 않았는데도 그냥 쑥 들어갔다. 찰나에 생긴 틈을 포착해내는 실전 감각이었다. 벤투호의 3, 4선 선수들은 다양한 곳에서 끊임없이 당했다. 평소 상대해본 적 없는 강도의 압박이었기 때문이다. 벤투 감독은 김민재가 몹시 그리웠을 것 같다.
현재 벤투호의 선수 구성에서 유럽파는 1, 2선에 몰려 있다. 3, 4선에는 대부분 아시아 리그에서 뛴다. 근육질 상체, 빼빼 마른 하체 같은 느낌이다. 유럽파와 아시아파의 가장 큰 차이는 환경이다. 유럽파는 1년 내내 수준 높은 선수를 상대한다. 세계적 수준의 경기 템포와 인텐시티가 자연스레 몸에 밴다. 아시아 리그에선 이런 환경 이점을 누릴 수 없다. 얼마 전부터 국내에서는 대표급 3, 4선 선수들이 아시아 안전지대에 머물기 시작했다. K리그 구단부터 이적료 수입을 키우려고 현역 대표급을 아시아 시장에 내다 판다. 이런 풍조는 국가대표팀에서 공수 기량 격차가 점점 커지는 현상을 초래했다. 브라질전이 명백한 증거였다.
#2. 평소 팀컬러와 월드컵 실전용 계책의 중간 그 어딘가
올 11월 벤투호는 카타르월드컵에 출전한다. 지금까지 상대해보지 못한 수준의 팀들만 만날 예정이다. 40년 동안 풀지 못했던 딜레마가 벤투 감독 앞에 놓였다는 뜻이다. 월드컵에 나설 때마다 한국 축구는 평소대로 할지, 본선에 맞춰 수동적으로 돌아설지를 고민했다.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은 철저한 실전용 전술로 성공했다. 2014년 홍명보 감독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비다가 잡아 먹혔다. 2018년 신태용 감독은 어중간하게 있다가 낙오했다.
경기 후, 벤투 감독은 “우리 스타일을 바꿀 생각이 없다”라고 재차 다짐했다. 하지만 브라질전은 재고의 필요성을 알려줬다. 전술한 대로 한국은 현재 3, 4선이 취약하다. 이대로 가면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렵다. 2선까지 최대한 내려와 수비 폭과 두께를 늘리지 않는 한, 안정적 수비 유지는 어려워 보인다. 중원에서 팀플레이를 지켜낼 자원(기성용처럼)이 없는 이상,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전진하는 평소 스타일이 월드컵 무대에서 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패하지 않는 버티기 기술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3. 대표팀 전용 손흥민 전술이 필요하다
손흥민은 돋보이는 존재다. 혼자 서 있기만 해도 상대가 위협을 느낀다. 상대가 ‘손흥민만 막으면 돼!’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토트넘홋스퍼의 손흥민이 그대로 벤투호에서 재현되긴 어렵다. 국가대표팀은 소속팀처럼 매일 훈련할 수 없다. 구성원의 기량도 차이가 난다. 지금 당장 토트넘에서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한국 선수가 몇이나 될지 상상해보면 두 팀의 격차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월드컵 전까지 벤투 감독은 손흥민의 능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손흥민은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이지만, 벤투호에서는 득점력뿐 아니라 공격 빌드업 연결, 패스 시야, 개인 볼캐리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가장 뛰어나다. 손흥민에게 슈팅 기회를 만들어줄 전체적 능력이 부족하다면, 소속팀과 아예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런 케이스는 적지 않다. 축구 변방 스타 중에는 이런 케이스가 드물지 않다. 맨체스터시티의 풀백 올렉산드르 진첸코와 레알마드리드 센터백 다비드 알라바는 각자 국가대표팀에서 플레이메이커로 뛴다. 앞에서 고립되느니 뒤에서 볼터치 횟수를 늘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4. 월드컵까지 준비할 시간이 별로 없다
브라질전은 현장 분위기가 정말 끝내줬다. 6만4천 명이 가득 찬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저녁은 축구 강국 부럽지 않았다. 손흥민은 물론 브라질의 세계적 스타들을 한꺼번에 ‘직관’할 기회였으니 당연했다. 비니시우스가 드리블로 돌파하자 한국 팬들이 환호하는 광경은 드문 경험이었다. 고맙게도 브라질의 치치 감독은 주축을 거의 다 기용했고, 네이마르도 한 차원 다른 경기력과 팬서비스로 팬들을 기쁘게 했다. 축구 경기가 아니라 콘서트를 보러 온 기분이었다. 기자석에 앉아서 ‘아, 재미있다’라고 느낀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잊어선 안 될 부분이 있다. 카타르월드컵까지 물리적으로 6개월 가까이 남았다. 그런데 준비할 시간이 별로 없다. 실전 연습 기회는 이번 4경기와 9월의 2경기뿐이다. 그리고 바로 월드컵이다. 유럽 시즌 도중 열리는 탓에 대회 개막 일주일 전에야 선수들이 차출된다. 7월 동아시안컵은 알다시피 반쪽짜리 소집이다. 브라질전으로 시작된 6월 A매치 4연전이 우주비행사의 산소통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브라질전에서 집중력이 부족해 보이는 선수가 많았다. 볼이 끊긴 직후 플레이를 멈추는 선수도 적지 않았다. 팬들이 ‘손흥민 축제’를 만끽한다고 해서 그대들까지 덩달아 즐기면 곤란하다.
글 = 홍재민
사진 = 대한축구협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