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라는 명목하에 선수 간 전쟁에 접어들었다”
홍명보 감독은 지난 3일 성남종합운동장에서 진행한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대비 훈련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홍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7일 중국과 경기를 시작으로 동아시안컵 여정에 나선다. 북중미 월드컵을 1년 남겨둔 시점에서 동아시아 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의 기량을 점검할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동아시안컵은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가 아니므로 구단들은 국가대표 차출에 반드시 응할 필요가 없다. 해외파와 중동파가 전원 제외된 가운데, 홍 감독은 K리거 23명과 J리거 3명을 호출했다. 그동안 국가대표에서 빛을 보지 못했던 선수들을 대거 기용하고, 선수의 특성을 파악하기로 했다.
동아시안컵 명단에서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선수만 10명이다. 김태현(가시마 앤틀러스), 변준수(광주FC), 서명관(울산 HD), 김태현, 강상윤(이상 전북현대), 모재현, 서민우(이상 강원FC), 이승원(김천상무), 정승원(FC서울), 이호재(포항스틸러스)가 처음으로 발탁됐다. 여기에 김동헌(인천유나이티드), 김봉수(대전하나시티즌), 조현택(울산 HD) 역시 데뷔를 노리고 있다. 이 선수들은 소집명단에는 포함됐지만, 아직 첫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
홍 감독이 가장 주목하는 자리는 수비진이다.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조유민(샤르자), 권경원(FC안양), 정승현(알와슬) 등 주요 센터백들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인 터라, 젊은 센터백 발굴이 절실하다. 측면 수비수 자리는 설영우(즈베즈다) 반대편에서 누가 뛰게 될지 확실하지 않다. 동아시안컵에서 인상을 남기는 선수가 내년 월드컵 명단에 오를 가능성이 상당하다.
홍 감독은 6일 기자회견에서 수비진에 관한 질문에 “수비진은 월드컵 출전 가능성이 있는 젊은 선수들로 구성했다. 이번 경기는 물론이고, 이번 경기를 마치고 나서도 앞으로 1년 후까지 어떤 모습을 보일지가 중요한 포인트다”라며 “이번 대회는 수비수들의 전반적인 모든 것을 평가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다”라고 강조했다.
센터백 중 주목할 선수는 김주성(FC서울)이다. 왼발잡이 센터백인 김주성은 공중볼 경합과 빠른 판단력이 강점이며, K리그 정상급 빌드업 능력도 겸비했다. 그는 이전부터 대표팀 명단에 꾸준히 승선했으나, 쟁쟁한 경쟁자에게 밀려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6월 쿠웨이트와 경기에서 처음으로 선발 출전했고, 해당 경기에서 도움과 클린시트를 기록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번 동아시안컵 무대에서는 왼쪽 센터백 자리를 차지할 거로 예상된다.
왼쪽 풀백 경쟁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태석(포항스틸러스)이 대표팀에서 입지를 늘려가는 가운데, 조현택이 이에 도전한다. 조현택 역시 명확한 강점을 지닌 선수다. 그는 왼발 킥을 활용한 크로스와 속도를 내세운 돌파가 주무기로, 김천에서 K리그1 무대 검증을 마쳤다. 왼쪽 측면에서 벌어지는 이태석과 조현택의 경쟁이 기대를 모은다.
홍 감독은 후방뿐 아니라 최전방에서도 옥석을 가릴 전망이다. 역대 4번째 부자(父子) 국가대표가 된 이호재가 오세훈(마치다 젤비아)과 주민규(대전하나시티즌)를 상대한다. 타고난 피지컬과 오른발 슈팅 능력이 장점인 그는 아버지 이기형 감독을 뒤이어 태극마크를 달았다. 최전방 자리는 아직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았기에 이호재에게도 기회가 있다.
이호재는 3일 동아시안컵 대비 훈련에서 “가장 선보일 수 있는 건 공격 포인트와 득점이다. 경기장에서 득점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며 “월드컵이라는 무대는 모든 선수의 목표이자 꿈이다. 처음 발탁됐지만, 감독님 앞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내년 월드컵에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한국 대표팀은 잠시 뒤인 오후 8시 용인미르스타디움에서 중국과 첫 경기를 치른다. 이어 11일 홍콩, 15일 일본과 경기한다. 홍 감독이 선수 간 전쟁을 선포하면서 북중미 월드컵을 위한 옥석 가리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