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 감독대한축구협회

전방위 압박, 벤투호의 ‘볼 공유 축구’를 가능케 한 키워드

[골닷컴] 한만성 기자 = 파울루 벤투 감독이 한국 대표팀의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이는 점유율 축구, 빌드업 축구 등 모호한 수식어가 붙었던 그가 지향한 게임 모델이 최종예선에서 효과를 나타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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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최근 진행된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7~8차전 경기에서 레바논, 시리아를 연이어 꺾으며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한국은 27일 레바논 원정에서 1-0 승리, 1일 중립 지역(UAE 두바이)에서 만난 시리아를 2-0으로 제압하며 A조 3위 UAE와의 격차를 승점 11점 차로 벌렸다. 이로써 한국은 최종예선 두 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잔여 일정 결과와는 관계없이 일찌감치 본선 진출을 달성했다.

현재 한국은 6승 2무로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다. 아시아 최종예선이 홈앤드어웨이 방식으로 진행되기 시작한 1998 프랑스 월드컵 예선을 시작으로 한국이 무패를 기록한 건 허정무 감독 체제에서 나선 지난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이 유일하다. 당시 박지성, 이영표, 기성용, 이청용 등이 맹활약한 한국은 4승 4무로 최종예선을 마무리하며 북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UAE를 제치고 조 선두를 차지했다.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성적보다 더 많은 승점과 승수를 앞세운 무패 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요인은 한국 대표팀이 이번 최종예선에서 수장 벤투 감독이 지향하는 ‘볼을 공유하며 경기를 지배하는 축구’를 통해 내용과 결과를 모두 잡는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축구는 공격과 수비를 분리해서 볼 수 없는 스포츠다. 벤투 감독의 바람대로 볼 점유율을 끌어올려 경기를 주도하는 축구를 하려면 공격 못지 않게 상대가 볼을 가졌을 때는 이를 최대한 빨리 빼앗아오는 수비가 우선시돼야 한다. 벤투 감독 체제의 한국은 이번 최종예선에서 경기당 단 0.2골을 헌납하며 역대 최저 실점을 기록 중이다.

한국의 월드컵 최종예선 평균 실점

1.0골 - 2018 최종예선

0.8골 - 2014 최종예선

0.8골 - 1998 최종예선

0.8골 - 2006 최종예선

0.5골 - 2010 최종예선

0.2골 - 2022 최종예선

흥미로운 점은 카타르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벤투호의 득점력은 높은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국은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에서 경기당 평균 1.3득점을 기록 중이다. 실제로 한국은 지난 11월 이라크 원정에서 거둔 3-0 승리를 제외하면 이번 최종예선에서 대량 득점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한국의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평균 득점은 고전을 면치 못했던 지난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다음으로 저조하다. 손흥민, 황의조 등 유럽 5대 리그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는 골잡이를 보유한 한국에도 조직적인 밀집 수비와 선수 개개인의 신체 조건이 탁월한 중동팀을 상대로 득점을 뽑아내는 건 쉽지 않았다.

한국의 월드컵 최종예선 평균 득점

2.3골 - 1998 최종예선

1.6골 - 2014 최종예선

1.5골 - 2010 최종예선

1.5골 - 2006 최종예선

1.3골 - 2022 최종예선

1.1골 - 2018 최종예선

그러나 저조한 득점력이 과거와 비교해 한국 대표팀의 공격력이 저하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이 유일하게 경기당 2골 이상을 터뜨린 19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당시 만난 일본,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UAE는 지난 약 20년에 걸쳐 발전을 거듭한 현재 아시아 팀들과의 상당한 전력차가 분명히 존재한다.

득점력보다 더 중요한 건 밀집 수비를 펼치는 상대로 적절한 타이밍에 선제골을 넣고, 리드를 잡았을 때 노련한 경기 운영을 통해 승리를 지켜내는 것이다. 벤투호는 이번 카타르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10월 이라크전과 지난 1일 시리아전을 제외하면 한 골 승부를 펼치면서도 시종일관 안정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승점을 챙겼다.

이는 벤투 감독이 공격 상황에서 볼을 공유하며 경기를 주도하는 ‘높은 점유율’ 만큼이나 강력한 전방위적 압박을 주문한 점이 주효한 덕분이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에서 한국을 상대한 나머지 다섯 팀의 드리블 성공률은 고작 47.1%에 불과하다. 지난 수년간 아시아에서 가장 철벽 같은 수비를 자랑한 팀은 이란이다. 그러나 이란이 한국과 같은 조에 속한 이번 최종예선 8경기에서 상대에 허용한 드리블 성공률은 52.6%로 더 높다.

또한, 한국을 만난 A조 팀들은 최전방에서부터 황의조, 조규성, 황희찬 등이 적극적으로 압박을 펼친 벤투호의 조직적인 전방위 수비에 크게 고전했다. 이번 최종예선에서 한국을 만난 팀들의 평균 패스 성공률은 71.7%에 그쳤다. 반면 한국과 현재 A조 선두 자리를 놓고 다투는 이란이 허용한 상대의 패스 성공률은 77.7%다.

한국이 상대의 패스 성공률은 71.7%로 틀어막은 기록은 올 시즌 현재 유럽 5대 리그에서 상대의 평균 패스 성공률이 가장 낮은 리버풀(73.4%), 세비야(74.8%), 토리노(74.2%), 쾰른(72.6%), 모나코(77.6%)와 비교해도 매우 우수한 수준이다. 물론 각 팀이 경쟁하는 상대의 전력이 다른 만큼 유럽 5대 리그와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의 기록을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는 벤투호가 압박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벤투호의 아시아 최종예선 경기별 롱볼 성공률

57% - 이라크전(9월 홈)

70% - 레바논전(9월 홈)

61% - 시리아전(10월 홈)

53% - 이란전(10월 원정)

74% - UAE전(11월 홈)

58% - 이라크전(11월 중립)

51% - 레바논전(1월 원정)

49% - 시리아전(2월 중립)

개선해야 할 점도 있다. 벤투 감독이 추구하는 원활한 볼 공유를 기반으로 점유율을 끌어 올리는 축구는 짧은 패스로 후방에서부터 공격 진영까지 전진하는 것만큼이나 한쪽 측면에 오버로드 현상을 만든 뒤, 반대쪽으로 길고 빠른 패스를 정확하게 연결해 득점 기회를 만들어내야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 그러나 벤투호는 후방 플레이메이커 정우영(알사드)이 경고 누적으로 빠진 시리아전에서 최종예선이 시작된 후 가장 저조한 롱볼 성공률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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