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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축구선수

아스널의 넥스트 메시이자 원더키드 료 미야이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AM 12:05 GMT+9 22. 7. 11.
Ryo Miyaichi Arsenal
일본의 넥스트 메시로 불렸던 료 미야이치.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 받은 그는 벵거 감독 체제 아스널에 입성하며, 장밋빛 축구 인생을 꿈꿨지만..

'각 나라 넥스트 메시 중 한 명' 아스널 원더키드였던 료 미야이치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아스널은 일본의 신동으로 불렸던 미야이치가 지닌 특출난 능력을 인정. 구단에 합류할 기회를 줬지만, 그는 프리미어리그 기준으로 단 한 경기 출전이 전부였다.

아스널에 입성하기 전, 미야이치는 호나우지뉴 그리고 메시와 같은 선수들과 비교됐다. 십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전방 십자 인대가 세 차례나 파열되는 악재가 겹쳤다. 그가 피치에서 경기에 임하는 것 자체가 행운이었다.

이런 시절 미야이치의 부친은 일본에서 프로 농구 선수로 뛰면서 영향을 받았다. 당시 아스널 사령탑이었던 벵거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부상이 문제였다. 아스널에서 보낸 그의 시간 대부분이 부상에 발목이 잡혔다. 뛰어난 재능을 갖췄다는 평에도 이를 실현할 수 없었다.

미야이치가 아스널 유니폼을 입은 건 2011년 1월이었다. 아스널과 프로 계약 직후 그는 페예노르트로 임대됐다.

시작은 좋았다. 로테르담에서 12경기에 출전한 그는 네덜란드 매체로부터 '료디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렇게 2011년 여름 미야이치는 워크 퍼밋을 받았다. 일본축구협회 또한 '남다른 재능을 지닌 선수'라면서 이를 보장했다. 미야이치 나이 또래 선수들에게는 보통 적용되지 않는 예외적인 룰이었다.

유스 시절부터 그는 남다른 재능을 보여줬다. 2009년 17세 이하 월드컵에 나섰던 미야이치는 남다른 드리블과 공을 다루는 스킬 그리고 빠른 발과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를 통해 이목을 끌었다.

미야이치가 정점을 찍게 된 계기는 2011/2012시즌 볼튼 원더러스 임대 후였다. 기회를 잡으며 비교적 생산적인 시즌을 보냈다. 물론 팀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챔피언십으로 강등됐지만, 당시 미야이치가 보여준 활약상은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그는 2월 볼튼 이달의 선수상을 받기도 했다.

Giddy reports labelling him 'the world's next Messi' soon followed.


이후 행보가 꼬였다. 부상 악몽이 시작됐다. 2012/2013시즌에는 위건으로 임대됐다. 임대 기간 4경기 출전이 전부였다. 이마저도 교체 출전이었다. 발목 부상 탓에 시즌 내내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위건이 FA컵 우승에 성공했을 때도, 미야이치는 피치가 아닌 TV를 통해 소속팀의 우승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경기력이 좋지 않거나 혹은 부상에 시달리는 많은 이의 전철을 밟았다. 그는 그가 잠시나마 머물렀던 구단에서 잊혀졌다. 뿐만 아니라 부상 회복을 위해 런던으로 돌아왔을 때도 그의 소속팀으로부터 잊혀진 선수가 됐다.

두 차례에 걸쳐 랭커셔 연고 구단으로 임대됐던 미야이치는 강등권에서 경쟁을 펼쳐야 했다. 아스널은 그를 좀 더 강인한 선수로 만들고자 했지만, 메시에 비교되던 그의 재량은 빛을 발하지 못했다. 근력이 부족했다. 그렇게 프리미어리그 무대에서 자취를 감춰야 했다.

이후 아스널 리저브팀에서 한 시즌을 보냈고, 그렇게 그는 네덜란드로 다시금 임대됐다. 행선지는 트벤테였다. 1군 경기에서 미야이치는 득점도, 어시스트도 기록하지 못했다.

돌고 돌아 미야이치는 분데스리가 2부리그 클럽은 FC 상파울리로 이적했다. 등번호는 13번이었다. 불행은 계속됐다. 2015/2016시즌 시작 일주일 전, 그는 왼쪽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됐다. 그렇게 9개월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독일 무대에 나설 수 있었다.

다음 시즌에는 스쿼드 플레이어(로테이션 자원)이 됐지만, 2017년 여름에는 오른쪽 무릎이 파열되는 부상이 잇따랐다. 그렇게 그는 시즌 내내 결장했다.

상 파울리 이적 이후 그는 세 시즌 동안 딱 한 차례만 풀타임 경기를 소화했다. 그만큼 그의 분데스리가 생활은 이전보다 더 악재의 연속이었다.

거듭된 악재에도, 상 파울리는 미야이치를 신뢰했다. 2017년 8월에는 재계약 체결에 성공했고, 이때부터 그는 좋은 활약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당시 상 파울리는 '미야이치는 놀라울 만큼 불운이 계속됐다. 우리는 그가 혼자 있게끔 하고 싶지 않다. 그의 뒤에는 우리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라며 선수에 대한 믿음을 보여줬다.

또한 '우리는 이번 결정이 미야이치가 예전 그의 수준으로 돌아오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당시 미야이치는 '이러한 지지를 받아서 기쁘다. 상 파울리 구단에 매우 감사하다. 그래서 가능한 피치로 돌아올 수 있도록 내 모든 걸 바치고 싶다'며 구단을 향한 충성심을 내비쳤다.

다음 두 시즌 동안 미야이치는 거의 모든 경기를 소화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남미의 위대한 재능과 비견되던 윙어는 아니었다. 대신 그는 세컨드 스트라이커와 중앙 미드필더까지 소화할 수 있는 유틸리티 플레이어가 됐다. 2019/2020시즌 초반에는 오른쪽 풀백으로 나서기도 했다.

6시즌 동안 미야이치는 80경기를 소화했다. 다만 독일 무대 입성 후 104경기를 부상으로 결장했다. 그렇게 그는 상파울리 생활을 마쳤다. 이번에도 부상이 문제였다. 한 번의 기회를 준 상파울리였지만 두 번째는 냉정했다.

FA 신분이 된 미야이치는 일본의 요코하마 마리노스 유니폼을 입었다. J리그에서 그는 자신이 바라던 윙어로 뛰었지만 역할 자체가 제한됐다.

2021년 후반기 요코하마에 합류한 이후 두 경기 출전이 전부였다. 이마저도 교체였다. 올 시즌에도 그는 요코하마의 윙어로 활약 중이다. 이번 시즌 J리그에서는 6경기 선발 7경기 교체 출전을 기록 중이다. 부상으로 한 차례 결장했지만, 곧바로 교체 출전을 통해 경기력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체력 문제는 조금 아쉽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두 번의 풀타임 출전을 기록했지만, 요코하마 입단 후 J리그에서는 90분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했다.

일본의 넥스트 메시에서 아스널의 기대주로. 그리고 부상으로 약 3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피치 밖에 있었던 미야이치.

그렇지만 미야이치는 여전히 29세다. 보여줄 시간이 충분하다. 자신의 몸 상태만 관리한다면, 몇 시즌 더 활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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