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하골닷컴

박건하가 돌아본 그때… “저도 퇴장 당했어야죠… 그게 밑거름 되어 전관왕 했습니다”

K리그가 태동한지 4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스토리가 생성되었고 많은 이가 울고 울었습니다.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스토리의 중심으로 골닷컴이 찾아갑니다. 첫 번째 스토리는 1996시즌 챔피언결정전으로 당시 경기를 뛰었던 前 수원삼성 선수이자 지도자 박건하 감독과 함께 추억보따리를 열었습니다.

[골닷컴] 김형중 기자 = 실업리그를 호령하던 공격수 박건하가 1996년 수원삼성 유니폼을 입고 프로 무대에 첫 선을 보였다.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 임팩트 있는 득점력으로 수원삼성의 인기 스타로 우뚝 섰다. 그렇게 시작된 파란색 인생은 28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1994년 경희대를 졸업한 박건하는 프로와 실업의 갈림길에서 실업을 선택했다. 그때는 실업축구도 스포츠뉴스에 매번 보도될 정도로 팬들의 관심 속에 있었다. 신생팀 이랜드에 입단한 그는 맹활약하며 단숨에 에이스로 거듭났다. 2년을 뛰며 실업 최고 공격수 반열에 오른 뒤 프로에 도전했다. 목적지는 신생팀 수원삼성이었다.

“신생팀은 혜택이 주어져서 대학과 실업, 그리고 타 프로팀에서 지명할 수 있었고, 이기형, 박충균, 이운재, 조현두, 고종수 등이 함께 갔어요. 그때 시절에 아마 최고 이적료를 받고 간 걸로 기억해요. 그렇게 수원삼성을 가게 되었습니다”

파란 날개를 단 그는 첫 시즌부터 날았다. 수원의 첫 골도 그의 몫이었다. 컵대회 포함 1996시즌 14골 6도움을 올린 그는 신인왕을 차지했다.

후기리그 우승을 차지한 수원은 전기리그 우승팀 울산현대와 트로피를 놓고 챔피언결정전을 치렀다. 1차전 원정에서 1-0 승리를 거둔 수원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홈에서 열리는 2차전에서 무승부 이상만 거두면 창단 첫해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경기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거친 플레이가 속출했고 주심은 카드를 꺼내느라 바빴다. 양 팀 합계 퇴장 5회, 경고 14회가 나온 경기는 결국 울산의 3-1 승리로 끝났고 우승컵도 울산의 몫이었다.

“감정이 너무 올라왔었어요. 축구보단 격투 느낌으로… 저도 퇴장 당했어야 했어요. 울산은 큰 경기를 많이 해본 팀이었고, 저희는 프로에서 챔피언결정전이란 걸 처음 하는 것이어서 흥분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실패의 경험은 피와 살이 되었고 수원은 이듬해인 1997시즌 우승을 차지하고, 1999시즌 전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박건하는 1999시즌 12골 6도움을 올리며 천하무적 수원의 대들보로 활약했다.

“그때 선수들은 자신감에 넘쳤어요. 우승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클럽이 되는 게 팀의 목표였죠. 컵대회에선 그동안 경기에 많이 나서지 않은 선수들 위주로 나갔는데도 우승을 했어요. 주전과 아닌 선수들의 차이가 없고 팀이 단단해지다 보니 한 골 먹어도 승리할 자신이 있던 때였습니다”

수원의 영광을 함께 한 그였지만, 지금의 수원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2010년대 중반부터 하락세를 그린 팀은 2023시즌 충격의 강등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하락의 과정이었던 2020년 9월부터 2022년 4월까지 수원의 지휘봉을 잡았던 박건하는 친정팀을 생각하면 많은 감정이 교차한다. 하지만 팀에 대한 사랑은 여전하다.

“강등이 현실이 되었을 때는 슬픈 마음이 앞섰고, 화도 나고 안타까웠지요. 수원이란 팀이 왜 잘 되지 못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더 잘했어야 했다는 책임감도 많이 느꼈어요. 팬들은 변함이 없으시더라고요. 올 시즌은 정말 예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하나하나 잘 다지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광고

ENJOYED THIS STORY?

Add GOAL.com as a preferred source on Google to see more of our reportin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