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11년 전이었다. 런던올림픽에서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사상 첫 동메달을 따냈다. 개최국이자 축구 종주국 영국과 만난 8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승리한 한국은 4강에서 패한 뒤, 동메달 결정전에서 숙적 일본을 만났다. 올림픽 축구 도전 역사상 첫 메달과 병역 혜택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위해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고 결국 일본을 꺾고 승리했다. 당시 카디프 현장에서 선수들의 치열하고 처절했던 승부를 본 기억이 또렷하다. (특히 주장 구자철의 “와이, 와이”는 아직도 생생)
2012년 홍명보호의 핵심 멤버였던 구자철과 기성용은 이후 각자의 위치에서 매진했다. 독일 생활 초창기였던 구자철은 아우구스부르크에서 기량과 가능성을 인정 받으며 분데스리가 롱런의 발판을 마련했다. 기성용은 올림픽 직후 스코틀랜드 프리미어십 셀틱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완지 시티로 이적하며 본격적인 빅 리그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두 선수는 수년 간 한국 축구의 간판으로 활약했다. 또한 각각 독일과 잉글랜드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며 한국 축구 해외파 역사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1989년 빠른 생일로 나이도 같은 두 선수는 이청용과 함께 축구계 대표적인 절친으로 통한다. 만나면 K리그나 한국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고 한다. 베테랑으로서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에서 오는 대다. 선수 생활 말년에 다시 K리그로 돌아와 뛰는 것 자체만으로도 팬들에겐 고마운 일이지만 그 이상을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K리그 복귀 후 두 선수가 함께 경기장에서 경쟁하는 것은 지난 18일이 처음이었다. 기성용은 2020년 7월 유럽 생활을 마치고 FC서울로 돌아왔고, 구자철은 지난 시즌을 앞두고 제주유나이티드로 복귀했다. 그러나 구자철이 잦은 부상으로 경기장 밖에 있는 경우가 많았고, 결국 지난 시즌 단 한 번도 함께 경기를 뛰지 못하고 경기장에서 인사만 주고받았다.
그만큼 이번 제주와 서울의 경기에서 두 선수의 맞대결은 기대가 컸다. 구자철은 올 시즌 개막 이후 전성기 때 같은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다. 워낙 팀 내 부상자가 많이 생기고 있는 제주지만 구자철만큼은 몸이 가벼워 보였다. 기성용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이 올 시즌 좋은 출발을 하는 데에는 중원사령관 기성용이 역할이 크다. 공수 양면에서 든든한 버팀목 구실을 하니 후배들이 믿고 따를 수밖에 없고 결과도 좋게 나오고 있다.

두 선수는 경기 전 잠시 만나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두 선수의 투샷을 놓칠 리 없는 취재진과 각 팀 영상 담당자들이 뒤따랐다. 두 선수는 “저희 비밀 얘기해야 돼요”라며 은근 눈치(?)를 줬고, 모두들 두 베테랑의 짧은 만남을 존중해 주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두 선수는 프로 답게 경기장 밖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각 팀의 중원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서로 부딪힘도 잦았다.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꼭 닮았다. 베테랑으로서 후배들을 독려하고 때로는 호통도 치며 팀의 목표를 향해 달렸다. 구자철은 부상 공백으로 무게감이 떨어진 최전방까지 올라가 적극적으로 마무리 슈팅까지 시도했다. 기성용은 결정적인 태클도 성공했고, 무엇보다 경기 종료 직전 김진야에게 이어지는 패스를 성공하며 팔로세비치 결승골의 기점 역할을 했다.
K리그를 10년 이상 본 팬들이라면, 두 선수가 건강한 몸 상태로 함께 뛰는 모습에 감회가 새로웠을 듯하다. 2000년대 말 혜성처럼 등장해 센세이션을 일으킨 뒤, 대표팀, 해외 진출, 국내 복귀 등 비슷한 길을 걸어온 두 선수는 이제 제주와 서울 뿐만 아니라 K리그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비욘더게임(Beyond the Game)은 경기 이상의 스토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