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12월의 낮 공기는 차가웠다. 전주성을 찾은 팬들의 마음은 공기 만큼 차갑고 냉랭했다. 그들의 마음엔 '혹시'와 '설마'가 싸우는 것 같았고, '우리가 왜 이 추운 12월에 축구를 하지?'란 생각도 엿보이는 듯했다.
경기 전 김두현 감독의 얼굴에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강등의 부담과 자신에게 쏟아질 비난과 격노에 대한 걱정이 모두 묻어났다. 한 골 앞선 채 끝난 1차전 결과가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선발 명단에는 송민규의 이름이 오랜만에 보였고, 최후방은 연제운과 김하준이 나섰다. 가장 중요한 경기에 생소한 센터백 조합이었다.
경기 초반은 원정 팀 서울 이랜드가 주도했다. "전반전 골이 매우 중요할 것"이라는 김도균 감독의 말대로 선수들은 빠른 선제골을 위해 움직였다. 전북은 뒤로 물러섰고 경기장을 가득 메운 홈 팬들은 "닥치고 공격" 구호를 전반부터 외쳤다. 하지만 서울 이랜드는 시즌 내내 지적받던 최전방의 무게감을 극복하지 못했고 흐름은 서서히 전북 쪽으로 넘어갔다.
송민규가 자신이 좋아하는 오른발 아웃프론트 킥으로 골대를 강타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전반 막판 서울 이랜드 외국인 듀오가 찬물을 끼얹었다. 페인트 동작 하나로 전병관을 벗겨낸 몬타뇨의 크로스를 김하준과 경합을 이겨낸 브루노 실바가 날아올라 머리로 골망을 흔들었다. K리그2 외국인 선수 2명이 K리그1 22세 선수 2명을 압도하는 순간이었다.
김두현 감독의 라커룸 토크가 궁금했던 하프타임이 끝나고 맞이한 후반 초반 전북이 살아났다. 마치 1차전 서울 이랜드의 오스마르가 그랬던 것처럼, 후반 시작 후 빠른 시간에 티아고가 결정적 한 방을 터트렸다. 경험 많은 김진규가 서울 이랜드 수비진이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떨어진 틈을 타 코너 공간을 확보했고 정확한 크로스를 연결한 것이 주효했다. 전주성에 모인 2만 3천여 팬들의 행선지가 지옥이었다가 천당으로 바뀌는 장면이었다. 서울 이랜드 입장에선 그 전 상황에서 문정인 골키퍼와 수비진의 어설픈 빌드업으로 내준 스로인이 두고두고 아쉬울 법했다.
합산 스코어는 다시 전북이 한 골 앞섰고, 흐르는 시간 역시 홈 팀 편이었다. 김도균 감독은 가용 공격수를 모두 투입하며 총력전을 펼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K리그2 최다 득점 팀에는 확실한 스트라이커가 안 보였다. 경기 후 "올해 10~20%가 부족했다. 외국인 스트라이커가 없었다"고 했던 김도균 감독의 말에는 이날 경기의 아쉬움도 묻어나는 듯했다.
전북의 '김태환 리스크'는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도 터졌다. 자신보다 11살이나 어린 이준석과 신경전 끝에 동반 퇴장 당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 퇴장이 전북의 쐐기골에 도움을 줬다. 10대10의 경기는 양 팀에게 좀 더 넓은 공간을 제공했고 전북에는 리그 최고의 레이서 문선민이 있었다. 역습 상황에서 문선민보다 빠른 선수는 없었고 그는 팀의 두 번째 골이자 잔류 확정 골의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승강플레이오프에서 골 세레머니로 얼싸안고 기쁨을 누리는 전북 선수들을 보는 것은 여전히 어색했다. 전북이? 별 9개를 달고?
추가시간 11분 동안 전북은 서울 이랜드의 끊임없는 공격을 잘 막아냈고 틈이 보이면 역습도 시도했다. 볼을 코너 플래그 쪽으로 끌고가 상대 선수 발에 맞혀 내보내며 시간 끄는 플레이는 나오지 않았다. 'K리그 최고의 영광을 누렸던 전북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보면 될까?'란 생각이 들었다.
경기 후 김도균 감독은 "자랑스럽다. 승격은 못했지만 저도, 선수들도, 이 팀도 실패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성장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고 이 경험은 자산이 될 것"이라며 선수들과 팬들 모두를 격려했다. 또 "승격하기 위한 과정도 중요한데 올 한 해가 그 과정이라 생각한다"며 다음 시즌 목표도 명확히 전했다.
반면, 김두현 감독은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표정이 어두웠다. "힘든 상황에서 부임했고, 감독이란 직업에 대해 생각도 했다. 많이 배운 시즌"이라고 돌아본 그는 "내년에는 다시 우승 경쟁을 하고 우승할 수 있는 팀으로 거듭나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거취를 묻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하며 "드릴 말씀은 없다"고 했다. 마치 승장과 패장이 바뀐듯한 분위기였다.
양 팀 선수들은 평소보다 퇴근이 늦었다. 보통은 감독 기자회견 끝나고 20분 정도 뒤면 라커룸에서 나오는데 이날은 약 40분이 걸렸다. 경기장을 떠나는 전북 선수들의 얼굴에는 잔류했다는 안도감과 밑바닥을 찍었다는 반성이 섞여있었다. 그렇게 전북의 시즌은 끝났다.
#비욘더게임(Beyond the Game)은 경기 이상의 스토리를 전합니다.
글 = 김형중(골닷컴 편집장)
사진 = 한국프로축구연맹, 골닷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