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1994 미국 월드컵 때였다. 김호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C조 예선 첫 경기에서 당시 FIFA 랭킹 5위의 스페인을 상대했다. 대부분 주전 선수가 레알 마드리드 소속이던 강팀이었다. 전반은 예상 밖 선전 속에 실점 없이 마쳤지만, 후반 초반부터 수비가 흔들리며 2골을 연거푸 내줬다. 그러나 후반 40분과 45분 각각 홍명보와 서정원이 연속골을 터트리며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양 팀이 승점 1점씩 나눠가졌지만, 뒤늦게 따라잡은 한국은 웃었고 다 잡았던 승리를 놓친 스페인은 고개를 떨궜다.
31일의 강원FC와 FC서울도 비슷했다. 강원은 후반 중반까지 쉴새 없이 몰아치며 서울을 압도했다. 하지만 서울의 교체 자원 윌리안에게 불의의 일격을 맞으며 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을 당황케 했다. 다행히 이상헌이 동점골에 성공하며 승점 1점은 챙겼지만 왠지 모를 찝찝함을 느꼈을 것 같았다.
기록만 봐도 강원이 서울에 우세했다. 이전 3경기에서 경기당 평균 14개의 슈팅을 때렸던 강원은 이날도 15개를 퍼부으며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공격에 나섰다. 3경기 평균 7개로 최하위였던 서울은 이날 5개밖에 시도하지 못할 정도로 강원의 압박에 애를 먹었다. 그러나 선제골은 서울의 몫이었고 강원 공격진의 슈팅은 번번이 막히거나 벗어났다. 동점골도 한 차례 슈팅이 골키퍼 맞고 나오자 재차 때려 넣은 것이었다.
윤정환 감독이 승점 1점에 만족하지 못한 건 당연했다. 경기 후 복도에서 마주친 그는 답답했던 속내를 짧게나마 털어놓으며 안타까워했다. 기자회견장에선 "서울 상대로 이런 경기력 보여줬다는 건 큰 변화다. 다만 결과를 가져와야 하는데, 결정력의 문제는 확실하다. 훈련 통해 개선해야 한다. 너무 아쉬운 경기다"라며 마지막 방점에 대한 고민과 함께 승리를 놓친 것을 뼈아파했다.
사실 강원의 결정력 부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작년 6월 부임한 윤정환 감독은 그동안 공격진의 낮은 득점력에 골머리를 앓아왔다. 지난 시즌 강원은 38경기 30골로 경기당 평균 1골에도 크게 못 미친다. 여름에 데리고 온 브라질리언 야고, 가브리엘, 웰링턴의 발끝은 예상보다 상당히 무뎠다. 올 시즌에는 이상헌, 양민혁 등 국내 공격수들이 분발하고 있지만 외인들의 활약이 절실하다. 특히 서울전처럼 내용이 좋았던 경기에서 외국인 선수들이 확실한 마무리를 보여준다면 강원은 더 높은 순위를 바라볼 수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한국프로축구연맹반면 김기동 감독은 승점 1점도 다행이란 입장이었다. 경기 내내 인상을 찌푸렸던 그의 입에선 "우리가 자폭할 수 있는 경기였는데 비긴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만큼 서울의 경기력은 끔찍했다. 2주 전 제주를 무너뜨린 그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경기 초반부터 문제점이 드러났다. 강원은 강하게 압박했고 서울은 실수를 연발했다. 류재문, 기성용, 김주성, 한승규 등 서울이 자랑하는 선수들이 위기를 자초했다. 강원에 확실한 피니셔만 있었어도 두어 골 차이가 났을 수 있다. 지난 경기에서 키핑 미스로 결정적인 찬스를 상대에 내준 술라카는 이날도 전후반 한 번씩 비슷한 장면을 보여줬다. 후반 막판에는 가브리엘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며 퇴장까지 당했다.
결국, 경기는 잘했지만 득점에 어려움을 겪은 강원과 경기력 자체는 부진했지만 한 번의 찬스를 살린 서울 모두 가져간 승점은 똑같았다. 1-1 스코어는 공평해 보이지만 이길 경기 비긴 팀과 질 경기 비긴 팀의 구분은 꽤 뚜렷했다.
*비욘더게임은 경기 이상의 스토리를 전합니다.
글 = 김형중
사진 = 한국프로축구연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