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만 38세. 프로축구 선수로선 적지 않은 나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아무리 58세 현역 선수를 우상화 한다 해도 38세는 언제 은퇴해도 이상할 나이가 아니다.
하지만 이 나이에 K리그 상위권 팀 주전으로 뛰는 선수가 있다. 포항스틸러스의 신광훈.
올해가 20번째 시즌이다. 포항에서 데뷔해 강원FC와 FC서울, 전북현대를 거치긴 했지만 포항과의 인연이 단연 깊다. 프로 경력 모든 대회에서 뛴 572경기 중 375경기를 포항 유니폼을 입고 나섰다.
최근 포항에서 신광훈을 만나 하루를 함께 했다. 하루 루틴을 확인하며 롱런 비결을 알아보고 싶었다. 7년 전의 나를 생각하며 ‘분명 나와 다른 무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따라다녀 봤다.
그는 항상 커피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오전 8시 30분 만나기로 한 단골 카페가 하필 공사 중이었지만 커피는 마셔야 했다. 결국 다른 곳으로 이동해 카페인을 보충했다.
훈련장으로 이동 중에 팁을 하나 알려줬다. “아침은 꼭 먹는다. 김밥이나 샌드위치, 또는 클럽하우스에 가서 아침밥을 먹는다. 저희는 거의 오전 운동이라서 훈련하려면 밥을 먹어야 한다” 역시 밥심이었다.
현재 신광훈은 가족과 떨어져 지낸다. 경기 없을 때만 만나는 어찌 보면 기러기 아빠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이들이 방학이라 포항에 내려와서 일주일을 보냈다고 한다. 가족들과 함께 지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할 찰나 그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결혼은 은퇴 후에 하라’는 손흥민 선수 아버님 말씀이 명언이다. 처음엔 이해를 못했는데 지금은 완벽히 알겠더라. 확실히 지난주보다 이번주 컨디션이 좋다” 똑같이 아이 키우는 사람으로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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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장 도착 후 가장 가까운 자리에 주차를 한다. 최고참 베테랑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바로 훈련장으로 향하지 않고 방에서 책을 읽는다. 세상의 다양한 성공스토리를 읽고 동기부여 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운동 전 루틴이라고 한다. 그가 이날 읽은 스토리는 마흔 살에 직장을 그만 두고 베를린으로 떠나 카페를 차린 인물에 대한 이야기였다.
팀 훈련 전에는 포항 구단의 자랑 ‘퍼포먼스 센터’에서 개인 웜업을 하는데 이때가 신광훈의 인싸력(?)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는 후배 선수들을 만날 때마다 “땡큐!”를 외친다. 홍윤상, 안재준, 김인성, 김종우, 전민광… 신참, 고참을 가리지 않고 보는 선수들마다 외친다. 최고참 선수의 장난스러운 표정에 일부 20대 초반 선수들은 약간 부담스러워하지만, 퍼포먼스 센터의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진다.
땡큐의 의미가 궁금해 그에게 물었다. “말 그대로 땡큐다. 너무 고맙다. (후배 선수들은) 그냥 고마운 존재들”이라는 신광훈은 “근데 이젠 저만 하는 게 아니라 종우도 인성이한테 ‘땡큐!’, 성동이도 재준이한테 ‘땡큐!’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운 존재들이지 않나”라고 말한다. 옆에 있던 김종우도 “고맙다고 생각하니깐 하는 사람도 기분 좋고 받는 사람도 기분 좋다”라고 거든다.
운동 선수로 오랜 커리어를 유지하려면 체력도 중요하고 정신적인 면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신광훈은 오히려 정신적인 면을 강조했다. “사실 둘 다 중요한데 ‘육체는 정신이 지배한다’라는 말이 있다. 정신적인 게 조금 더 중요한 것 같다”라고 한다.
“오래 하는 비결은 저도 잘 모른다. 여기까지 할 줄 몰랐고 그냥 앞에 있는 계단 한 계단, 한 계단씩 올라오다 보니깐 어느덧 여기까지 왔다. 그냥 하루하루 ‘땡큐!’하고 재밌게 보내고 있다. 당장 공이 중간에 있을 때의 경합, 그 싸움에서 이기려 하고 눈앞에 있는 것들 쫓아서 하다 보니깐 여기까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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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에서의 생활을 쭉 지켜보니, 신광훈은 분위기 메이커였다. 큰 형님이 먼저 다가가고 분위기를 풀어주니 소통이 원활했다. 물론 후배 선수들의 역할도 컸다. 나이 차이는 나지만 좋은 팀 분위기를 만들고 싶은 선배를 잘 따라주는 후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포항 선수들은 다 좋은 친구들이다. 제가 이렇게 좋은 팀에 좋은 후배들이랑 축구를 하고 있다. 고참이란 자리가 어떻게 보면 힘들 수 있는데 저희 팀 고참은 굉장히 편하다. 선수들이 뭉쳐주고 따라주고 하기 때문에 제가 크게 할 일이 없다”
여기에 최근에는 절친한 후배이자 “광훈이 형 진짜 내가 키웠는데”라고 말하는 기성용까지 팀에 합류했다. 매일매일 기분 좋게 출근해서 행복축구하는 신광훈의 롱런 비결은 그냥 ‘즐거움’이었다.
#비욘더게임(Beyond the Game)은 경기 이상의 스토리를 전합니다.
글 = 김형중
사진 = 골닷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