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승범 잔디한국프로축구연맹

[김형중_비욘더게임] 관객은 들어찼는데 무대가 무너진 상황

[골닷컴] 2만 4889명. 지난 3일 체감온도가 영하에 가까운 날씨 속에도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많은 관중이 몰렸다. 50만 관중 기록을 달성한 지난 시즌 FC서울의 평균 관중에 버금가는 숫자였다.

많은 관중은 뜨거운 함성과 열띤 응원을 보내며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와 골, 그리고 승리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라운드 내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볼 수 있던 것은 군데군데 파이고 들려버린 잔디뿐이었다. 그걸 발로 밟아 제자리에 집어넣는 선수들도 보였다.

서울의 슈퍼스타 제시 린가드는 전반 27분경 볼 없이 혼자 방향 전환을 하다 잔디에 걸려 넘어진 뒤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큰 부상까지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기성용은 후반 14분 전매특허인 롱패스를 시도했지만 볼이 원하는 곳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잔디가 밀리며 디딤발이 무너져 패스가 짧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툭 튀어나온 잔디를 직접 밟아 넣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2월 중순 리그 개막, 우리 현실에선 무리였다. 기본 인프라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 등의 이벤트로 인해 리그 일정을 앞당긴 한국프로축구연맹만을 탓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에 맞춰 그라운드를 준비하지 못한 관리 주체의 관리 방식을 이제는 집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지난 겨울이 춥긴 했다. 2월에도 추웠다. 온도계가 영하를 가리킬 때도 있었고 체감온도도 무척 낮았다. 개막 이후에는 영상의 기온을 보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쌀쌀했다. 잔뜩 껴입은 사람도 이렇게 추운데 잔디는 오죽했을까?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2월 서울의 평균 기온은 영하 1.2도, K리그 팀 중 가장 남쪽에 경기장이 있는 제주 서귀포는 5.9도였다. 너무 추워서 잔디가 뿌리를 덜 내린 상태에서 리그가 개막된 탓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K리그와 같은 일정으로 개막한 일본의 J리그 경기장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J리그 1~3라운드를 보면 수준 높은 잔디 상태에서 경기가 열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이 우리보다 남쪽에 있어 전체적으로 날이 따뜻하긴 하다. 그래서 강원도 속초와 비슷한 위도에 있는 센다이를 연고로 하는 베갈타 센다이의 홈 경기를 찾아봤다. J리그2에 속해 있는 베갈타 센다이는 1라운드와 2라운드를 원정 경기로 치렀다. 아마 일본도 북쪽 지방은 기온이 상대적으로 낮아, 리그 사무국에서 2월에는 최대한 남쪽에 위치한 클럽의 홈 경기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연맹이 개막 라운드는 수도권이 아닌 남부 지방 개최로 경기 일정을 잡은 것과 일맥상통한다.

3월 1일 첫 홈 경기를 치렀다. 그러나 잔디 상태는 우리와 상당히 달랐다. 완벽했다. 파인 곳 하나 없이 깔끔하게 정돈된 그라운드는 선수들이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인프라였다. 참고로 센다이의 올해 2월 날씨를 찾아보면, 리그 개막 이후인 17일부터 28일까지 12일간 최저 기온이 영하를 기록한 날이 무려 9일이나 된다. 센다이 잔디는 그 날씨에도 깊숙이 잘 뿌리내린 모양이다. 결국 날씨 탓만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작년 9월에도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잔디 이슈로 홍역을 치렀다. 결국 대표팀 경기도 용인에서 치르게 되는 결과까지 맞이했다. 당시 서울시설관리공단이 작년 1~8월 경기장 대관으로 약 82억 원을 벌었지만, 잔디 관리에는 단 3%인 약 2억 원만 사용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들이 작년 1~8월에 벌어들인 대관 수입액 약 82억 원 중에는 FC서울이 경기장 사용료로 지불한 11억 원도 포함되어 있다. FC서울 입장에서는 합당한 임대료를 지불하고 ‘축구장’을 대여했지만 정상적으로 축구를 할 수 없을 정도의 ‘축구장’을 제공받은 것이다.

K리그 경기장 중 가장 좋은 잔디 컨디션을 보여주는 경기장 중 하나인 대구iM뱅크파크는 잔디 관리 비용으로 연 1억 원 수준을 쓴다고 알려졌다. 서울월드컵경기장 보다 적지만, ‘대팍’을 관리하는 대구시 도시관리본부 측은 축구 외에 다른 행사를 개최하지 않아 잔디 손상이 적다고 밝혔다. 결국 서울월드컵경기장은 많은 대관으로 잔디가 망가지고 있지만, 정작 각종 행사 등으로 사용되는 것 대비 적은 관리 예산이 투입되었고, 이것이 현재 잔디 문제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축구전용구장이지만 축구가 1순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구단이 경기장을 소유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당장 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풀어야 할 숙제가 너무 많은 주제다. 대신, 현재 경기장 관리 주체가 책임지고 나서야 한다는 말은 해야겠다. 우리네 전셋집 임대인도 수도관이나 보일러 파손 등 임차인이 거주하는 데 어려울 정도의 중대 하자가 발생하면 책임지고 보수를 해준다. 축구장 임대인도 축구를 할 수 없을 정도의 하자가 생기면 책임지고 관리하고 보수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아이스링크에 얼음이 녹고 있으면 쇼트트랙 경기를 할 수 없고, 수영장 물이 빠지고 있으면 수영 대회를 할 수 없지 않나?

#비욘더게임(Beyond the Game)은 경기 이상의 스토리를 전합니다.

글 = 김형중

사진 = 한국프로축구연맹, 골닷컴,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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