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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al.com] 리버풀, 힉스-질렛 시대의 시작과 폐막

2007년 1월 - 두바이 인터내셔널 캐피탈(DIC)가 리버풀 인수에 근접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조지 질렛과 톰 힉스가 뒤늦게 리버풀 인수에 뛰어들면서 혼전 양상을 띄기 시작했다.

2007년 2월 2일 - 질렛과 힉스는 리버풀 인수를 위해 4억3500만 파운드라는 금액을 제시했다. 이 중 2억1500만 파운드는 리버풀의 숙원이기도 한 새 구장 스탠리 파크 설립을 위해 쓰여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데이빗 무어스 구단주와 릭 페리 단장은 리버풀의 장기적인 미래를 위해선 새 구장 설립이 필요하다고 간주하고 있었기에 만장일치로 오랜 기간 협상 과정을 밟아왔던 DIC가 아닌 질렛과 힉스의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2007년 2월 6일 - 힉스와 질렛의 시대가 마침내 개막했다. 클럽 매입 가격은 2억1890만 파운드(주당 5천 파운드)였고, 당시의 총 부채는 4480만 파운드였다. 질렛은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60일 이내로 시공에 들어갈 것이다"라며 스탠리 파크 신축을 공식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2007년 5월 - 리버풀은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AC 밀란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그러자 힉스 구단주는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이 선수단을 강화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다. 힉스 - "베니테스가 원하는 선수라면 그게 누가 되더라도 그에게 데려다 주겠다"

2007년 여름 - 리버풀은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페르난도 토레스와 라이언 바벨, 그리고 요시 베나윤을 연달아 영입하며 대대적인 선수 보강에 나섰다. 팬들은 구단 역대 최다 이적료 기록(2000만 파운드)을 수립하면서 구단에 입단한 토레스에게 열렬한 환영을 보냈다.

2007년 11월 - 베니테스는 겨울 이적시장에서 더 많은 선수들을 보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힉스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바로 "훈련과 선수 지도에나 집중하라. 현재 보유하고 있는 선수만으로도 충분하다"였다. 이후 베니테스는 수 차례 언론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구단주들을 비난했고, 이로 인해 베니테스와 공동 구단주의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2008년 1월 14일 - 힉스는 前 독일 대표팀 감독이었던 위르겐 클리스만이 베니테스를 대신해 리버풀의 새 감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08년 1월 22일 - '상클리의 정신'을 비롯한 리버풀 서포터들은 2대2 무승부로 끝난 아스톤 빌라와의 홈경기에서 베니테스 경질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미국인 구단주들에 반대해 항의 시위를 펼쳤다.

2008년 4월 - 지난 11월에 질렛-힉스 두 공동 구단주는 물론 릭 페리 단장 역시 클리스만을 만나 회의를 가졌던 사실이 밝혀졌다. 이를 기점으로 리버풀은 베니테스와 페리의 대립 양상을 띄기 시작했다

2009년 1월 - 베니테스는 로비 킨을 판매하면서 얻은 자금을 통해 새 선수 보강을 원했으나 구단주들은 베니테스의 제의를 거절했다. 또한 베니테스가 수비수 다니엘 아게르의 재계약을 구단에 강력하게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현지 언론들은 베니테스가 선수 영입 권한을 잃게 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들을 내보냈으나 베니테스는 여전히 선수 영입권한이 자신에게 있다며 부인했다.

2009년 3월 - 챔피언스 리그 16강전에서 리버풀과 레알 마드리드가 격돌하게 되자, 베니테스가 레알 마드리드의 새 감독직에 오르게 될 것이라는 루머들이 떠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페리가 단장직 사임을 발표하면서 이 루머는 진화되었다.

2009년 여름 - 크리스티안 퍼슬로우가 새 단장으로 리버풀에 부임했다. 그는 성명을 통해 1억 파운드의 투자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정작 리버풀은 사비 알론소와 알바로 아르벨로아를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시키는 대신 알베르토 아퀼라니와 글렌 존슨을 영입하는 선에서 여름 이적 시장을 종료했다.

2009년 9월 - 질렛은 리버풀 서포터들과의 미팅을 통해 베니테스를 강도높게 비난했다. 한편 힉스는 서포터들에게 "리버풀은 맨유보다도 재정적으로 건전하다. 빚 때문에 선수를 파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새 구장은 리버풀의 미래를 바꿀 것이다"고 설명했다.

2010년 1월 - 힉스 구단주의 아들인 톰 힉스 주니어가 클럽 이사진에 가세했으나 힉스 주니어는 안필드에서 팬들이 자신에게 야유를 보내자 "바보같은 것들. 지옥에나 가라. 난 너네한테 지쳤다"고 욕하다 구설수에 올라 해임되었다. 결국 힉스 주니어의 자리는 이안 아이레와 필립 내쉬가 대신하기에 이르렀다.

2010년 3월 - 뉴욕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론 그룹에서 1억1천만 파운드의 자금을 활용해 40%의 리버풀 주식을 매입할 것이라는 루머가 터져나왔다.

2010년 4월 - 질렛과 힉스는 첼시 서포터로 알려진 브리티시 에어웨이의 회장인 마르틴 브로튼을 새 회장으로 임명했다.

2010년 5월 - '선데이 텔레그라프'는 DIC가 5억만 파운드에 리버풀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0년 8월 - 중국의 사업가 케니 황이 리버풀 인수에 흥미를 보였다. 그는 자신이 중국 정부의 신임을 얻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로이 호지슨 감독이 원하는 선수를 영입해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시리아의 사업가 야야 키르디도 리버풀 인수에 뛰어들었고, 8월 15일 아스널과의 개막전이 시작하기 전까지 인수를 마무리 짓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두 개의 제의는 모두 힉스와 질렛의 반대에 부딪쳐 무산되었다.

2010년 9월 - 10월까지 로열 뱅크 오브 스코틀랜드(이하 RBS)에 2억8천만 파운드의 부채를 상환하지 못할 경우 경영권이 박탈될 위기에 처하자 힉스는 블랙스톤으로부터 대출을 받으려는 시도를 감행했다. 하지만 이는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2010년 10월 - 보스턴 레드 삭스를 소유하고 있는 NESV에서 리버풀 인수를 제의했고, 이를 브로튼과 퍼슬로우, 그리고 에이레 이사진이 수락하면서 리버풀 매각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힉스와 질렛 공동 구단주는 당연히 매각 반대 성명을 냈고, 결국 RBS는 고등법원에 소송을 걸기에 이르렀다.

2010년 10월 13일 - 이번 소송의 판결을 맡은 플로이드 판사가 RBS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제 리버풀은 본격 매각 활동에 들어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힉스와 질렛은 미국 법정에다가 리버풀 매각이 사기라며 소송을 걸었고, 관련 심사는 10월 25일에 이루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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