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AL 현장포인트] EPL의 단단한 기반, 英 풀뿌리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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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AL 현장포인트] EPL의 단단한 기반, 英 풀뿌리 축구

[골닷컴 김찬희 에디터] = 국내 축구팬에게 제이미 바디, 찰리 오스틴은 '잉글랜드 하부 리그를 거쳐 EPL까지 올라온 선수들'로 유명하다. 잉글랜드 하부 리그 선수가 프로팀과 계약했다는 소식은 심심찮게 들려온다. 15-16시즌 EPL 우승팀인 레스터 시티는 지난 4월 7부 리그 윙어와 프로계약을 맺었고 지난 6월에는 잉글랜드 4부 리그 스테버너지 FC가 공장노동자로 일하는 선수와 프로계약을 맺어 화제가 됐다. 대한축구협회가 1~7부 리그 통합 디비전 구축을 진행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EPL의 단단한 기반으로 기능하는 잉글랜드의 풀뿌리 축구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지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잉글랜드 축구협회(FA)에 등록된 축구 클럽의 개수는 해마다 변동이 있긴 하지만 평균적으로 약 5,300개다. 디비전 피라미드의 최상위에는 ‘프로’ 축구 리그인 프리미어리그(1부)와, 잉글리시 풋볼 리그(2~4부)가 있다. 그 밑에는 내셔널 리그 시스템(5~11부)이 있다. 통상 5~8부 선수들은 세미프로, 9부 리그부터는 아마추어 선수들이다. 5부 리그 이하 리그들은 지역별로 치러진다.

풀뿌리 축구의 피라미드는 22부까지 이어진다. 지역별로 독립적인 리그가 진행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리그 간 승강제가 적용된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풀뿌리 축구팀도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할 수 있다. 각 리그에는 리그 경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컵 대회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FA컵은 1~10부 팀들이, EFL컵은 1~4부 팀들이 참가하는 대회다. 그 외에 EFL Trophy(3~4부), FA Trophy(5~8부), FA Vase(9~11)부 등의 컵 대회도 있다.

FA Vase컵은 9~11부 리그 팀들이 참가하는 컵 대회지만 결승전은 우리에게 익숙한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치러진다. 이 날만큼은 아마추어 선수들도 프로축구선수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지난 5월 21일에 치러진 FA Vase컵 결승전에는 놀랍게도 만 명 이상의 관중이 입장했다. 9부 리그 팀들의 서포터라고는 믿기지 않는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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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런던의 9부 리그 팀 North Greenford United(이하 NGU)의 Reserve팀 코치를 경험했다. NGU는 1944년에 설립된 클럽이다. 작은 클럽이지만 회장과 의사결정을 논의하는 이사회도 있다. 클럽에는 경기장, 작은 규모의 관중석, 체인징 룸, 샤워실, 세탁실 그리고 경기 후 맥주와 핫도그를 즐길 수 있는 바(Bar)도 있다. 한국의 아마추어 클럽과는 사뭇 다르다. NGU는 1군(First team), 2군(Reserve team), 18세 유스(U-18 team)팀 스쿼드를 보유하고 있으며 각 팀은 별개의 리그에 참가한다. 팀 훈련은 매주 목요일 저녁에 진행되고 주로 화요일, 토요일에 리그 및 컵 경기를 치른다.

NGU의 재정수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후원, 경기장 및 연회장 임대 수입, 바(Bar) 수입이 그것이다. 작은 클럽이지만 후원기업이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후원기업은 훈련용품 및 유니폼 구매를 책임지고 현금을 기부하여 클럽 운영 자금에 힘을 보탠다. 유니폼에 회사명을 새기기도 하지만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홍보효과는 미미하다. 축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우선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클럽의 지출은 각 리그별 참가비 520파운드(한화 약 75만 원. 참고로 K3리그 신규 팀 가입비는 5천만 원이다.)를 포함해 경기 후 선수들에게 제공되는 식사비용, 시설관리 비용, 상주하는 여덟 직원의 인건비 등이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지역 주민들이 맥주를 들고 삼삼오오 경기장에 모여든다. 입장료는 6파운드(한화 약 8,600원)다. 60파운드(한화 약 86,000원) 상당의 시즌 권을 가진 서포터도 있다. 선수들은 체인징 룸에서 감독, 코치들과 가볍게 팀 톡(Team talk)을 나누고 웜업을 시작한다. 경기에 나서기 전에 눈 두덩이, 광대뼈 등에 바세린을 바르는 선수들도 있다. 헤딩 경합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가 엿보인다.

경기 중에는 경기장이 시끄럽다. 격려와 욕설이 난무하고 심판과 감독의 설전도 잦다. 끊임없이 '앞으로(Forward)!'를 외치는 감독도 있고 말없이 경기를 지켜보는 감독들도 있다. 하프타임 팀 톡은 얼마 전 언론에 공개된 퍼거슨 감독의 팀 톡 영상과 다르지 않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감독과 코치가 전반전에 대한 피드백과 후반전 계획을 전달한다. 선수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고 감독-선수 간에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형편없는 전반전 이후엔 심한 욕설을 들을 수도 있다.

경기가 종료되면 모든 관계자들이 악수를 나누며 서로 격려한다. 체인징 룸으로 돌아와 감독과 코치가 경기에 대한 피드백을 전달하고 나면 선수들은 유니폼을 벗어 모아놓고 샤워를 한다. 9부 리그 팀이지만 팀 차원에서 유니폼 세탁을 해준다. K리그 챌린지 일부 팀 선수들이 스스로 유니폼 세탁을 해야 하는 것과 대비된다. 샤워 후 바에 모인 선수들은 핫도그와 맥주를 즐기며 담소를 나눈다. 감독과 심판이 함께 맥주를 마시며 경기에서의 결정을 복기하기도 한다.

시즌 말에는 클럽차원에서 시상식(Presentation Night)을 진행한다. 각 팀 스쿼드 별로 ‘코칭 스태프가 뽑은 올해의 선수’,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를 선정하여 트로피를 수여한다. 클럽 회장과 후원기업의 사장 등이 마이크를 잡고 한 해 동안 수고해준 모두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코칭스태프들은 모두 무급으로 일한다. 지난 시즌 아스널과 FA컵에서 격돌한 5부 리그 서튼 유나이티드 감독 또한 무급으로 일한다. NGU의 감독은 지도자 자격증을 갖고 있지 않지만 수석코치는 UEFA B 지도자 자격증을 갖고 있다. 코칭 스태프가 되는 데에 필요한 자격기준은 따로 없다. 하지만 그들의 축구에 대한 식견은 매우 훌륭하다. 9부 리그 팀이지만 코칭스태프 중에는 물리치료사도 있다. 그는 전기 회사의 CEO이지만 선수들을 위해 응급처치를 하고 물통에 물을 채우는 일에 사명감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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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은 모두 아마추어 선수들이다. 의료 기업 종사자, 부동산 에이전트, 건설 노동자, 대학생 등 다양하다. 재능 있는 선수라면 16살이어도 1군 팀에서 뛸 수 있다. 실제로 올해 16살인 NGU의 Tobi선수는 과거 설기현이 뛰기도 했던 레딩 FC(2부)의 관심을 받고 있다. 잉글랜드의 프로팀들은 전국 각지에 스카우터를 파견하여 좋은 선수들을 주시한다. 잠재력이 있는 어린 선수들은 프로 유스 팀과 계약하게 되고 뒤늦게 재능이 만개한다고 하더라도 프로팀과 계약할 수 있다. 바디나 오스틴 같은 선수들이 EPL을 누비게 된 배경이다.

잉글랜드에는 우리나라처럼 엘리트 선수/비 엘리트 선수의 구분이 없다. 따라서 스카우터들은 모든 선수들을 편견 없이 관찰한다. 전국 각지에서 치열한 리그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니 선수들의 경쟁력은 높아지고 인재풀은 점점 더 넓어진다. 얼마 전 치러진 U20 월드컵에서 잉글랜드가 우승하고 그 직후 치러진 U21 유로 대회에서 잉글랜드가 가장 먼저 준결승 진출을 확정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잉글랜드 풀뿌리 축구의 역사는 1888년에 시작되었다. FA는 오랜 기간 동안 제도를 다듬어 왔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풀뿌리 축구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지도자 교육 과정도 새롭게 구성했다. 축구 교육에도 백년대계가 적용된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잉글랜드 선수의 입지가 줄어들고, 잉글랜드 대표팀의 메이저 대회 성적은 여전히 미적지근하지만 풀뿌리 축구 시스템의 완성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렇게 튼튼한 기반이 존재하는 한 EPL과 잉글랜드는 앞으로도 세계 축구의 선두주자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엘리트 스포츠는 본래 국위선양의 도구로서 기능했다. 프로 축구 출범은 국민의 관심을 정치로부터 스크린, 스포츠, 성으로 돌리기 위한 3S정책의 일환이었다. 스포츠 태동의 계기가 잉글랜드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만큼 한국 축구는 역사도 짧고 문제도 많다. K리그의 텅 빈 경기장, 학원축구/취미반의 이분법적 구조, 학원축구의 입시비리, 은퇴 선수의 진로 문제, 경직되고 강압적인 코칭 문화 등이 그것이다.

다행히 올해 대한축구협회는 1~7부 리그 통합 디비전 시스템을 도입했다. 긍정적인 움직임이지만 앞으로 지속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협회는 앞으로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여 1~7부 통합 디비전 시스템을 한국 축구를 지탱할 근간으로 키워내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잉글랜드 풀뿌리 축구 시스템을 무조건 모방할 수는 없다. 재정 확보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축구 문화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벤치마킹을 하다보면 분명히 우리가 차용할 장점들이 있을 것이다.

수십 년이 흘러 정착된 문화를 바꾸는 것은 결국 시스템과 제도다. 히딩크 감독은 2002년 대한민국 대표팀에 부임하며 경기력에 악영향을 주는 한국 특유의 문화들을 뜯어고쳤다. 선후배가 한데 섞여 식사하도록 했고 운동장에서는 존댓말을 하지 않도록 했다. 처음에는 낯설지만 시스템과 제도는 결국 사람들의 생각을 바꾼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면 새로운 문화가 생겨난다. 한국적인 풀뿌리 축구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다면 한국 축구 문화가 선진화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한국 축구의 경쟁력을 향상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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