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영원, 니폼니시와 부천의 아름다운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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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폼니시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의 시를 읊으며 부천FC와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골닷컴, 부천] 서호정 기자 = “모든 것은 한 순간에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부천FC 1995의 창단 10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은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은 기자회견 도중 시의 한구절을 읊었다. 자신의 조국인 러시아 출신의 대문호 알렉산더르 푸시킨의 그 유명한 시 ‘삶’이었다. 

그는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항상 기분 좋다. 하지만 과거 안에서만 살 수 없다. 오늘이 있고, 내일도 있다. 우리가 추억을 나누는 것은 현재의 팀이 성장해 가길 바라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을 떠난 지 19년이 된 지금도 자신을 기억하며 한국으로 초대한 부천 팬들에 대한 헌사이자 감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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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부천SK(당시 유공 코끼리)의 감독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니폼니시 감독은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카메룬 대표팀을 이끌고 8강에 오르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축구 지도자였다. 부천을 다이아몬트 4-4-2 포메이션의 패스 축구로 탈바꿈 시킨 그는 열악한 스쿼드로도 정교한 공격 축구를 만들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윤정환, 이을용, 김기동, 故 윤정춘의 미드필드진은 K리그판 환상의 4중주로 통하기도 했다. 

4년 간 들어올린 트로피는 컵대회 1개에 불과했지만 일명 ‘니포 축구’는 K리그와 한국 축구에 새로운 자극과 발전의 계기를 줬다. 부천SK가 2006년 연고 이전을 택하며 제주 유나이티드로 변신한 뒤 남은 팬들이 부천FC를 만들어 K3에서 출발해 프로 2부까지 돌아올 수 있었던 원동력도 니포 축구 시대의 팬층이 두터웠기 때문이다. 

부천FC의 정식명칭이 부천FC 1995인 것도 니포 감독을 팀의 아버지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부천의 서포터인 헤르메스는 니포 축구에 빠진 이들이 1995년 만들었다. 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모처럼 한국을 찾은 니폼니시 감독은 9일부터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선수단을 만나 격려했다. 부천 정갑석 감독은 세계적인 지도자를 만나 팀 운영에 조언을 구했다. 니폼니시 감독은 선수들에게는 “관중석의 팬들을 위한 축구를 하라”며 ‘니포축구’의 DNA를 설파했다. 

부천 구단의 손님 맞이도 특별했다. 홈구장인 부천종합운동장 관중석에서는 니폼니시 감독의 얼굴이 들어간 대형 현수막이 펼쳐졌다. 구단 직원과 팬들은 니폼니시 감독의 얼굴이 들어간 티셔츠를 입었다. 

하이라이트는 팬들과의 만남이었다. 경기를 앞두고는 니폼니시 감독이 토크 콘서트를 통해 팬들과 재회했다. 오랜 부천 팬으로 니포 축구 시대를 함께 했던 박찬하 축구해설위원의 진행 속에 다양한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갔다. 니폼니시 감독은 철학적인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해 박수를 받았다. 

방탄소년단의 팬이어서 니폼니시 감독을 졸라 함께 한국을 찾은 10살 난 외손녀 리사는 할아버지가 위대한 감독인 것을 이번에 확실히 느끼고 갔다. 부천 구단은 매치볼을 심판에게 전달하는 기회를 리사에게 제공했다. 하프타임에는 니폼니시 감독이 직접 팬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서포터석을 비롯한 관중석을 돌며 인사했다.

Bucheon FC

20년지기 팬들을 만난 니폼니시 감독은 “그때 어린 팬들이 이제 다 아저씨가 돼 있었다. 이제 나도 노인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이어서는 “나를 추억해주는 팬들의 부름에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앞으로도 모두 부천을 통해 행복했으면 좋겠다”라며 축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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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폼니시 감독의 제자인 최윤겸 감독도 경기장을 찾았다. 부천SK 시절 코치로서 니폼니시 감독을 보좌했던 최윤겸 감독은 9일 베트남에서 강원FC의 친선 경기를 치르고 옛 스승을 만나러 비행기를 탔다. 최윤겸 감독은 “정말 신사였고, 존경할 수 있는 지도자셨다. 20년이 지났는데도 많은 이들이 감독님을 추억한다는 것이 그 증거다”라고 말했다. 

정신적 지주의 방문에 부천 선수단도 멋진 승리로 화답했다. 부천은 니폼니시 감독이 추구했던 빠른 패스 축구를 앞세워 홈에서 서울 이랜드를 몰아쳤다. 전반 15분 문기한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마무리한 바그닝요의 선제골로 앞서간 부천은 김신의 강력한 슛이 골대를 맞고 나오며 추가골 획득에 실패했다. 부천은 김신, 서울 이랜드는 로빙요가 페널티킥을 한번씩 실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후반에 서울 이랜드가 공격적으로 나오며 양팀이 치고 받는 공방전은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 줬다. 니폼니시 감독이 늘 강조하던 '팬들을 위하는 좋은 축구'였다.

추억을 되살린 아름다운 만남. 그 앞에서 펼쳐진 팀의 밝은 미래를 보여준 경기. 10일 밤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이뤄진 니폼니시 감독과 부천FC의 재회는 푸시킨의 시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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