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잉글랜드, 악몽같은 승부차기 징크스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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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콜롬비아에 승부차기 끝에 8강. 잉글랜드, 월드컵 역사상 첫 승부차기 승. 픽포드, 월드컵에서 시먼(1998년)에 이어 두 번째로 승부차기 막은 골키퍼 등극. 유로 1996 당시 승부차기 실축한 사우스게이트 감독, 승부차기 철저히 준비

[골닷컴] 김현민 기자 = 잉글랜드가 지긋지긋했던 승부차기 징크스를 깨고 12년 만에 월드컵 8강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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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가 모스크바에 위치한 오트크리티에 아레나에서 열린 2018년 러시아 월드컵 16강전에서 승부차기 접전 끝에 콜롬비아를 제치고 8강에 진출했다. 여기서 잠깐, 잉글랜드가 승부차기에서 이겼다고?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잉글랜드는 전 세계에서 승부차기를 가장 못하는 국가로 정평이 나있다. 실제 잉글랜드는 이번 대회 이전까지 메이저 대회 총 7번의 승부차기에서 단 한 번 밖에 승리하지 못했을 정도로 승부차기와 악연을 이어왔다.

먼저 잉글랜드는 3번의 월드컵 승부차기에서 모두 패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준결승전에선 서독에 승부차기 스코어에서 3-4로 패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어진 1998년 프랑스 월드컵 16강에선 아르헨티나에 승부차기 스코어에서 또 다시 3-4로 패했다. 마지막으로 2006년 독일 월드컵 8강에선 포르투갈에 승부차기 스코어에서 1-3으로 완패했다. 이 경기에서 포르투갈 수문장 히카르두는 월드컵 역사상 최다 승부차기 선방(3회)을 기록하는 역사를 썼다. 반면 잉글랜드는 오언 하그리브스를 제외한 4명의 키커가 실패(히카르두 선방 3개를 제외한 하나는 실축)하며 무너졌다.

유로에서도 총 3번의 승부차기에서 패했다. 자국에서 열린 유로 1996에서 잉글랜드는 8강전에서 스페인을 승부차기 스코어에서 4-2로 꺾고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독일에게 승부차기 스코어 5-6으로 패해 우승 문턱에서 무너졌다. 이어진 유로 2004 8강에서 잉글랜드는 개최국 포르투갈에게 또다시 승부차기 스코어 5-6으로 패했다. 마지막으로 유로 2012 8강에서 잉글랜드는 이탈리아에게 승부차기 스코어에서 2-4로 패했다. 

참고로 이탈리아와 잉글랜드의 승부차기 악연이 강한 두 팀의 맞대결로 화제를 모았는데 결과적으로 이탈리아가 웃었다. 즉 잉글랜드가 세계에서 승부차기를 가장 못 하는 나라라는 걸 인증한 셈이었다.

비단 잉글랜드의 승부차기 징크스는 성인 남자 대표팀에 국한된 게 아니다. 잉글랜드는 21세 이하 대표팀은 물론 여자 대표팀까지 모두 포함하더라도 총 14번의 승부차기에서 단 2승에 그쳤다. 심지어 영국 단일팀으로 참가한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한국과의 승부차기에서 4-5로 패해 탈락한 바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미 정규 시간에서도 잉글랜드는 주장이자 간판 공격수 해리 케인이 직접 얻어낸 페널티 킥을 과감하게 중앙으로 차서 성공시키며 선제골을 성공시켰다. 비록 잉글랜드는 경기 종료 직전 코너킥 수비 과정에서 콜롬비아 수비수 예리 미나에게 헤딩골을 허용하며 다잡은 승리를 놓쳤으나 콜롬비아의 거친 파울 속에서 침착성을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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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가 승부차기 선축으로 나선 가운데 첫번째 키커로 양 팀 간판 공격수가 등장했다. 라다멜 팔카오와 케인은 사이좋게 골을 성공시켰다. 콜롬비아 후안 콰드라도와 잉글랜드 막내 마커스 래쉬포드도 과감하게 골문 구석으로 향하는 슈팅으로 골을 기록했다. 콜롬비아 3번째 키커 루이스 무리엘이 골을 성공시킨 가운데 잉글랜드 3번째 키커 조던 헨더슨의 오른쪽 골문 구석으로 낮게 깔려가는 슈팅이 콜롬비아 수문장 다비드 오스피나의 선방에 막혔다. 

이 때만 하더라도 잉글랜드 벤치에는 암운이 드러워지는 듯싶었다. 구장을 가득 메운 잉글랜드 축구 팬들의 얼굴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차분함을 유지했다. 콜롬비아 4번째 키커 마테우스 우리베의 킥이 골대를 맞으면서 기사회생한 잉글랜드는 키어런 트리피어가 골을 넣으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바통을 이어받은 잉글랜드 수문장 조던 픽포드는 카를로스 바카의 킥을 손을 뻗어 선방했다. 잉글랜드 마지막 키커 에릭 다이어는 차분하게 골을 성공시켰다. 잉글랜드가 역사적인 첫 월드컵 승부차기 승리를 거두는 순간이었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잉글랜드 감독은 자국에서 열린 유로 1996 준결승전에서 독일에게 패했을 당시 팀의 마지막 키커로 나서 실축한 비운의 인물이다. 어쩌면 누구보다도 승부차기에 있어 큰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Gareth Southgate

하지만 승부차기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만큼 그는 승부차기가 있기 전 선수 한 명 한 명을 붙잡고 대화를 나누면서 용기를 복돋워주었다. 게다가 승부차기 준비에도 만전을 기했다. 사우스게이트는 러시아로 오기 전 선수들의 심리측정 테스트를 통해 일찌감치 승부차기 키커를 1번부터 23번까지 미리 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더해 숙소에서 선수들을 5개 팀으로 나누어 야유와 조롱 속에서 골프 퍼트를 하는 훈련을 시행했다. 

잉글랜드 축구협회(The FA) 역시 자체 분석을 통해 과거 잉글랜드 선수들이 타국 선수들보다 승부차기를 급하게 처리하려는 습성이 있다는 걸 분석해냈고, 이를 토대로 선수들에게 페널티 스폿까지 천천히 걸어가는 연습도 병행했다. 승부차기 징크스를 깨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은 잉글랜드이다.

Gareth Southgate &Marcus Rashford

사실 경기 자체는 지루하게 전개됐다. 에이스 하메스 로드리게스가 부상으로 결장한 콜롬비아는 평소와 달리 수비형 미드필더를 3명이나 배치하면서 수비적으로 나섰다. 무려 6장의 옐로 카드를 수집할 정도로 거칠게 잉글랜드를 괴롭힌 콜롬비아이다. 콜롬비아는 잉글랜드의 승부차기 징크스를 의식이라도 한 듯 경기 대부분의 시간을 무승부 작전으로 일관했다. 결국 잉글랜드는 경기를 주도했음에도 연장전 포함 120분 동안 페널티 킥 1골에 그친 채 1-1 무승부로 마무리해야 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잉글랜드가 웃었다.

한편 픽포드는 전설적인 골키퍼 데이빗 시먼과 함께 월드컵 무대에서 승부차기를 선방한 두 번째 잉글랜드 골키퍼로 등극했다. 시먼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아르헨티가 간판 공격수 에르난 크레스포의 슈팅을 선방했으나 동료 선수들의 지원을 받지 못해 패한 바 있다. 하지만 픽포드는 바카의 슈팅을 선방하며 지긋지긋한 잉글랜드의 승부차기 저주를 풀어냈다. 러시아 월드컵 이전만 하더라도 A매치 3경기에 불과했기에 많은 우려를 낳았으나 실력으로 본인의 능력을 입증해내며 영웅으로 떠오른 픽포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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