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러시아' 피케 손에 울고 아킨페프 손에 웃다
Igor Akinfeev vs Gerard Pique
Getty Images
스페인, 러시아에 승부차기 접전 끝에 1-1 무. 승부차기 접전 끝에 탈락. 피케, 핸드볼 반칙 범하면서 페널티 킥으로 동점골 허용. 아킨페프, 슈팅 9회 선방+승부차기 킥 2개 선방하며 승리 견인

[골닷컴] 김현민 기자 = 러시아가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승부차기 접전 끝에 승리하며 극적으로 2018 월드컵 8강에 진출했다.


주요 뉴스  | "[영상] 독일 기자들, "한국전 패배 충격적 굴욕적""

손에 울고 손에 웃었다. 러시아와 스페인의 월드컵 16강전 키워드라고 봐도 무방하다. 스페인은 핵심 수비수 헤라르드 피케의 손에 운 반면에 러시아는 주장이자 수문장 이고르 아킨페프의 손에 웃었다.

이 경기에서 러시아는 최전방 원톱에 장신 공격수 아르템 주바 한 명 만을 포진시킨 채 수비수를 5명 배치하는 극단적인 수비 형태의 5-4-1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말 그대로 전원 수비를 하다 주바의 높이를 살린 역습으로 스페인을 공략하겠다는 포석이었다.

Russia Starting vs Spain

하지만 러시아의 계획은 초반부터 어그러졌다. 경기 시작 11분 만에 믿었던 러시아 베테랑 수비수 세르게이 이그나셰비치가 간접 프리킥 수비 과정에서 스페인의 골 넣는 수비수 세르히오 라모스를 막으려다 자책골을 넣는 우를 범한 것. 이와 함께 이그나셰비치는 월드컵 역사상 최고령 자책골(만 38세 352일)이라는 다소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세워야 했다.

이후 스페인은 패스 돌리기를 감행하면서 러시아를 괴롭혔다. 반면 러시아는 이렇다할 공격 찬스조차 만들어내지 못한 채 체력을 소진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장신 공격수 주바의 높이를 바탕으로 서서히 흐름을 잡아오기 시작했다. 36분경 주바가 헤딩으로 떨군 걸 에이스 알렉산드르 골로빈이 돌파하다 패스를 연결했고, 중앙 미드필더 로만 조브닌이 드리블 돌파를 감행하다 마르코 아센시오의 태클에 걸렸으나 재차 슬라이딩으로 패스를 내주었다. 이를 골로빈이 감아차기 슈팅으로 가져갔으나 아쉽게 골대를 빗나갔다.

이 슈팅을 기점으로 공격이 활기를 띄기 시작한 러시아는 고집스럽게 오른쪽 측면 공격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41분경 코너킥 공격 과정에서 주바가 헤딩으로 떨군 걸 피케가 팔을 들다가 손에 맞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심판은 지체없이 핸드볼 반칙을 불었다. 주바는 본인이 얻어낸 페널티 킥을 차분하게 성공시키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피케 입장에선 포르투갈과의 32강 조별 리그 1차전에 이어 2번째로 페널티 킥을 내준 셈이었다. 이는 스페인의 월드컵 역사상 특정 선수 최다 페널티 킥 허용이었다.

다급해진 스페인은 뒤늦게 공격에 감행했다. 전반 종료 직전에 이르러서야 이스코가 이 경기 첫 슈팅을 시도할 정도로 이렇다할 공격조차 시도하지 않았던 스페인이었다. 전반전 인저리 타임에 원톱 공격수 디에고 코스타가 두 차례나 연달아 슈팅을 시도했으나 모두 아킨페프의 선방에 막혔다.

후반전은 일방적인 스페인의 공세 속에서 이루어졌다. 반면 러시아는 뒷문을 걸어잠근 채 수비에 집중했다. 실제 러시아는 전반전만 하더라도 슈팅 숫자에서 스페인에 5대3으로 우위를 점했으나 후반전엔 종료 직전 2회의 슈팅이 전부였다. 


주요 뉴스  | "[영상] 조별리그 탈락에도 빛난 아이슬란드의 바이킹박수"

하지만 러시아엔 수문장 아킨페프가 있었다. 아킨페프가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선 한국과의 경기에서 실수를 저질렀기에 국내 축구 팬들 사이에선 기름손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는 '야신(역대 최고로 평가받고 있는 구소련이 자랑하는 전설적인 골키퍼)의 후계자'로 불릴 정도로 러시아가 자랑하는 골키퍼이다. 괜히 그가 러시아의 주장인 게 아니다.

그는 후반 2분경 스페인 왼쪽 측면 수비수 조르디 알바의 허벅지 슈팅을 막아냈다. 후반 39분경엔 교체 투입된 베테랑 미드필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을 선방한 데 이어 빠른 2차 동작으로 스페인 공격수 이아고 아스파스의 슈팅까지 선방했다.

Igor Akinfeev

다급해진 스페인은 연장 전반 종료 직전 아센시오를 빼고 공격수 로드리고를 교체 투입하며 공격 강화에 나섰다. 하지만 아킨페프는 연장 후반 3분경 로드리고의 단독 돌파에 이은 슈팅을 선방했다. 연장 후반 종료 직전 로드리고의 터닝 슈팅까지 막아냈다.

결국 양 팀은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스페인엔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다비드 데 헤아가 버티고 있었다. 심지어 선축도 스페인의 차지였다(승부차기는 선축이 유리하다는 통계가 있다). 하지만 아킨페프는 자신감 있게 골문을 지켯고, 스페인 3번째 키커 코케의 슈팅을 선방한 데 이어 마지막 키커 아스파스의 슈팅도 막아냈다. 아킨페프의 선방에 힘을 얻은 러시아 선수들은 자신감 있게 승부차기를 모두 성공시켰고, 승부차기 스코어에서 4-3으로 승리하며 16강으로 올라섰다.

경기 자체는 스페인이 주도했다. 점유율에선 79대21로 압도했고, 패스 횟수는 무려 1114회로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1000회를 넘겼다. 슈팅 숫자에서도 24대7로 러시아보다 3배 이상 많았다. 유효 슈팅 역시 9대1이었다. 결과적으로 피케의 안 좋은 손버릇이 악재로 작용했다. 러시아의 유일한 유효 슈팅은 바로 페널티 킥이었다. 

피케는 그 누구보다도 영리하게 손을 쓰는 선수로 정평이 나있다. 하지만 VAR(Video Assistant Referees의 약자로 비디오 보조 심판)이 이번 월드컵 들어 처음으로 가동되면서 심판 판정이 엄격해진 감이 있었고, 피케의 나쁜 습관은 페널티 킥으로 이어졌다. 피케의 핸드볼 반칙이 없었다면 스페인은 경기 종료까지 패스 돌리기만으로도 쉽게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러시아는 아킨페프의 눈부신 선방 덕에 스페인을 꺾을 수 있었다. 아킨페프는 이 경기에서 무려 9회의 슈팅을 선방했다. 특히 이니에스타의 중거리 슈팅과 로드리고의 단독 돌파에 이은 슈팅을 선방한 건 백미였다. 이와 함께 '기름손'이라는 오명도 확실하게 씻은 아킨페프이다. 그는 적어도 오늘만큼은 '야신의 후계자'라는 평가가 무색하지 않은 '신의 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