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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따라한 잉글랜드, 대세는 철퇴 축구?
By Hyunmin Kim
2012. 6. 12. 오전 8:00:00
[골닷컴] 김현민 기자 = 잉글랜드 대표팀이 프랑스와의 EURO 2012 본선 조별 리그 첫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소기의 성과를 올렸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가 자존심을 굽혔다. 그들은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자신들의 전력적인 열세를 인정이라도 하듯 전체적인 라인을 내린 채 선수비 후역습의 실리적인 축구를 채택했다. 아무리 상대가 강호 프랑스였다고는 하지만 축구에 있어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잉글랜드 입장에선 상당히 놀라운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실제 결과는 1-1이었으나 경기 내용은 판이했다. 점유율에선 무려 6.5대3.5로 프랑스가 크게 앞서있었고, 슈팅 숫자에서도 20대5였으며 코너킥에서도 11대4로 프랑스의 우세였다. 심지어 프랑스의 패스 성공률은 무려 92%에 달했다. 잉글랜드가 단 5개의 슈팅을 기록한 건 EURO 1980 이래로 최소이다. 그마저도 유효 슈팅은 단 한 번이 전부였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간접 프리킥 상황에서 중앙 수비수 졸레온 레스콧의 헤딩슛으로 단 한 번의 유효 슈팅을 골로 연결시키는 효율성을 보였다. 이는 마치 첼시와 바르셀로나의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1, 2차전, 그리고 바이에른 뮌헨과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기록 수치와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잉글랜드는 촘촘하게 간격을 유지하며 프랑스에게 좀처럼 위협적인 찬스들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프랑스 원톱 공격수 카림 벤제마는 좀처럼 페널티 박스 안에 진입조차 하지 못했다. 세컨볼(흘러나온 공)의 대다수가 잉글랜드의 차지였다는 점이 잉글랜드가 이 경기에서 얼마나 간격 유지를 잘 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전반 30분경 레스콧의 선제골이 나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잉글랜드는 몇 안 되는 공격 기회에서 효율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프랑스를 위협했다. 애슐리 영과 대니 웰벡, 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공격 듀오의 움직임이 유기적이었고, 깜짝 선발 출전한 18세의 신예 알렉스 옥슬레이드 체임벌린도 이따금씩 센스 넘치는 플레이를 펼쳐보였다.
문제는 동점골이 터진 이후 너무 일찍 잠그기로 전환한 게 화근이었다. 프랑스는 35분경에 터져나온 사미르 나스리의 강력한 중거리 슈팅 덕에 승부를 원점으로 돌릴 수 있었고, 이를 기점으로 기세를 타며 잉글랜드를 압박해 나갔다.
이후 경기는 프랑스의 주도 속에서 이루어졌다. 후반 들어 체임벌린이 지친 기미를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고, 후반 막바지에 들어서자 잉글랜드는 노골적으로 비기기에 돌입했다. 조 하트 골키퍼가 의도적으로 골킥을 느리게 처리한 게 대표적인 사례였다.
잉글랜드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프랭크 램파드와 가레스 베리, 게리 케이힐, 잭 윌셔, 그리고 카일 워커 등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해 상당한 전력 누수가 발생했다. 이에 더해 리오 퍼디난드는 존 테리와의 불편한 관계로 인해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에이스 웨인 루니마저 몬테네그로와의 EURO 2012 예선 최종전에서 비매너 태클로 퇴장을 당해 2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잉글랜드의 본선 조별 리그 첫 상대는 D조 최강 프랑스였다. 잉글랜드 입장에선 무승부도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이 바로 로이 호지슨 잉글랜드 신임 감독이 수비적으로 프랑스 전에 임한 가장 큰 이유였다. 중립 팬들이 보는 입장에선 다소 지루할 수도 있었으나 실리적인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안 그래도 호지슨 감독은 EURO 2012 본선을 앞두고 우승 가능성을 묻자 "EURO 1992의 덴마크와 EURO 2004의 그리스를 언급하고 싶다"고 답했다. EURO 1992의 덴마크와 EURO 2004의 그리스는 EURO 본선 역사상 가장 큰 이변을 연출한 두 팀이다. 이는 돌려 말하면 호지슨 감독 스스로 잉글랜드의 전력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도리어 이로 인해 잉글랜드는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조직적인 축구를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보여주었다.
이것이 바로 호지슨 감독은 경기가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 "조직적인 수비를 펼쳤고, 프랑스를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기에 만족한다. 우리 골문 앞에서 프랑스는 많은 상황을 만들지 못했다. 운이 좋았다면 우리가 두 번째 골을 넣을 수도 있었다. 공격의 마무리는 좋지 못했지만, 선수들이 잘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줬다. 잉글랜드의 경기력은 매우 자랑스러웠다. 어느 선수 하나 실망을 안기지 않았다"며 경기 내용에서 프랑스에 열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만족감을 표한 이유이다.
현재, 축구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건 스페인식 점유율 축구이다. 실제 이번 EURO 우승후보 삼국(스페인, 독일, 네덜란드)이 점유율 축구를 구사하고 있다. 지난 남아공 월드컵에서 빠른 역습으로 많은 축구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던 독일 역시 이젠 느린 템포의 점유율 축구에 더 집착하고 있다. 이에 대해 독일 대표팀 주장 필립 람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더이상 빠른 역습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어떤 팀을 상대해도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는 좋은 선수들을 보유했다"고 평한 바 있다.
하지만 2011/12 시즌, 첼시는 실리적인 축구를 바탕으로 바르셀로나와 바이에른 뮌헨을 꺾고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신선한 충격을 선물했다. 국내에선 울산 현대의 '철퇴 축구'가 인기 상품으로 떠오르고 있기도 하다. 만약 잉글랜드 대표팀이 첼시와 같은 실리적인 역습 축구로 우승을 차지한다면 현대 축구의 헤게모니가 전복될 가능성도 일정 부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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