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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닷컴] 김현민 기자 = 독일 축구계의 암흑기를 지탱하던 '거인' 미하엘 발락이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했다. '세계인의 축구 네트워크' 골닷컴은 이번 기회에 발락의 선수 경력을 돌이켜보도록 하겠다.

'구동독 유스 시스템이 배출한 마지막 스타', '미들라이커(미드필더+스트라이커)의 전형', '등번호 13번의 사나이', 그리고 '독일의 암흑기를 지탱한 거인'에 이르기까지 발락은 많은 수식어구를 가지고 있는 선수이다. 하지만 발락에게 있어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구는 바로 '위대한 2인자'라고 할 수 있겠다.

역사는 언제나 최고만을 기억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스포츠계에서 준우승은 무의미하다는 소리도 있다. 하지만 발락은 독일 축구사는 물론 세계 축구사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사실 발락이 준우승만 한 건 아니다. 실제 발락은 카이저슬라우턴과 바이에른 뮌헨에서 도합 4번의 분데스리가 우승과 3번의 DFB 포칼 우승을 기록한 바 있다(특히 카이저슬라우턴에서의 분데스리가 우승은 2부 리가 승격 첫 해에 거둔 기적과도 같은 우승이었다). 또한 첼시에서도 1번의 프리미어 리그 우승과 3번의 FA컵 우승, 그리고 1번의 칼링컵 우승을 거두었다. DFB 리가포칼과 커뮤니티 실드까지 포함하면 도합 14번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발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락이 '위대한 2인자'로 기억에 남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바로 2002년과 2008년의 안타까운 준우승 행진들에 기인하고 있다.

먼저 발락은 2001/02 시즌 바이엘 레버쿠젠 소속으로 당시로선 전무후무한 분데스리가 최초 트리플 러너업(3개 대회 준우승)에 그쳤다. 분데스리가에선 32라운드까지 1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시즌 종료 2경기만을 남겨놓은 시점에서 뉘른베르크에게 1-2로 패하며 승점 1점차로 아쉽게 우승을 놓쳤고, 포칼 결승전에선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선제골로 앞서나가고도 2-4 역전패를 당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쉬운 건 바로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패배였다. 당시 레버쿠젠은 레알 마드리드를 거세게 몰아부치며 마지막 하나 남은 우승 트로피를 향한 열망을 드러냈으나 전반 종료 직전 지네딘 지단의 환상적인 논스톱 발리 슈팅이 골로 연결됐고, 68분경 주전 골키퍼 세자르 산체스의 급작스런 부상으로 인해 긴급 교체 투입된 이케르 카시야스(당시 카시야스는 만 20세에 불과한 어린 골키퍼에 불과했다)가 환상적인 선방쇼를 펼친 탓에 1-2 패배의 쓴 잔을 마셔야 했다. 지단의 발리 슈팅은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골로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지단의 슈팅 순간 뒤에 서있었던 선수가 바로 발락이었다.



발락의 2002년 불운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이어진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도 발락은 준우승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사실 한일 월드컵 당시 독일은 에이스 메멧 숄과 떠오르는 스타 제바스티안 다이슬러, 독일 수비의 핵 옌스 노보트니 등이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들어야 했다. 그런 독일이 결승까지 오를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발락과 올리버 칸의 활약에 기댄 것이었다(물론 대진운이 따랐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발락은 한국과의 준결승전에서 1-0 승리를 확정짓는 결승골을 넣었으나(월드컵 3호골) 아쉽게도 경고 누적으로 결승전에 출전할 수 없었고, 결국 벤치에서 독일의 결승전 패배를 지켜봐야 했다.

결국 발락은 4개 대회 준우승에 그치며 아쉬운 한 해를 보냈다. 심지어 발락은 분데스리가 17골로 마르시우 아모루소(도르트문트)와 마르틴 막스(1860 뮌헨)에게 한 골차 뒤져 득점왕조차 놓치고 말았다.

2002년 여름, 레버쿠젠을 떠나 바이에른에 입단한 그는 4시즌 중 03/04 시즌을 제외한 3시즌 동안 분데스리가 우승과 DFB 포칼 우승을 모두 석권하며 독일 최강자로 군림했다. 2002년과 2003년, 그리고 2005년엔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이는 4회 수상의 프란츠 베켄바워에 이어 제프 마이어와 함께 가장 많은 개인 수상 기록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도 하나 부족한 게 있었으니 바로 챔피언스 리그와 대표팀에서의 우승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2006년 여름, 첼시로의 이적을 감행했다.

하지만 첼시 입단 첫 해 프리미어 리그 준우승에 그친 발락은 07/08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의 커뮤니티 실드에서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패하며 불안한 출발을 알렸다.

이어진 칼링컵 결승전에서도 토트넘에게 연장 접전 끝에 1-2로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고,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맨유에 승점 2점차로 우승을 내주었다. 뿐만 아니라 대망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도 맨유에게 승부차기 접전 끝에 패하며 준우승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니콜라스 아넬카의 마지막 승부차기 슛이 들어가지 않자 눈을 감고 그 자리에 맥이 풀린 듯 주저앉던 발락의 모습은 팬들에게 많은 애환을 가져다 주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2008년 여름에 열린 EURO 2008 결승전에서도 스페인에게 0-1로 패하며 또 다시 주요 4개 대회 준우승에 그치는 불운을 맛보아야 했다.

발락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우승에 대한 상당한 열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포츠머스와의 FA컵 결승전에서 케빈 프린스 보아텡의 거친 태클에 의해 부상을 당하면서 월드컵에 참가할 수 없었고, 센츄리 클럽(A매치 100경기) 가입을 단 두 경기 남겨놓은 시점에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A매치 98경기 42골).

2010년 여름, 친정팀의 부름을 받고 레버쿠젠에 복귀한 그는 2시즌 동안 좋은 활약을 펼치며 팬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비록 지난 시즌엔 신임 감독 로빈 두트와 시즌 초반 마찰을 빚기도 했으나 챔피언스 리그와 같은 큰 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팀의 챔피언스 리그 16강 진출을 견인했다.

올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된 그는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와 호주 A리그, 그리고 중국 리그 진출 등을 모색했으나 자신의 대리인을 통해 "지난 몇 달간 휴식을 취하면서 이젠 선수 생활을 그만 둘 시기가 왔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난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어갈 생각이다. 36살이 된 현 시점에서 과거를 돌이켜 보면 난 어린 시절부터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축구 선수로서 환상적인 시간을 보냈다. 세계 최고의 감독들 및 선수들과 함께 해 영광이다. 이제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겠다"며 은퇴를 선언했다.

만약 발락의 준우승 커리어를 모두 우승으로 바꾼다면 발락은 분데스리가와 프리미어 리그, 챔피언스 리그, 독일과 잉글랜드 FA컵, 그리고 월드컵과 EURO까지 석권하며 당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군림했을 것이다. 이래저래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락이 없었다면 레버쿠젠이 챔피언스 리그 결승 무대를 밟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독일이 암흑기에 월드컵 준우승이라는 위업도 달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발락이 독일 축구의 암흑기를 지탱해주었기에 2006년 독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다시 독일 축구가 황금기에 접어들 수 있었다.

비록 발락에겐 현재 독일 축구의 주축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이나 섬세함이 없지만, 대신 그에겐 강인한 육체와 정신력이 있었다. 그의 플레이는 말 그대로 독일의 정통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독일적인 선수가 바로 발락이었다.

이제 그는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했으나 그의 정신은 오래오래 독일 축구 팬들의 가슴 속에 이어져 내려올 것이다. 또한 발락의 활약상을 지켜본 팬들의 기억 속에도 남을 것이다. 앞으로 그의 앞날에 좋은 일만 함께 하기를 바라본다. Auf Wiedersehen!




# 발락 은퇴에 대한 독일 축구인들의 말말말

요아힘 뢰브(독일 대표팀 감독) - "발락이 위대한 선수 경력을 끝마쳤다. 대표팀에서 난 언제나 발락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었다. 그라운드 위에서 그는 전력을 다해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의 미래에 좋은 일만 함께 하길 바란다"

올리버 비어호프(독일 대표팀 수석코치) - "위대한 선수 경력이 끝났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발락은 오랜 기간 가장 특별한 선수이자 대표팀을 상징하는 얼굴이었다. 난 그의 미래에 좋은 일만 함께 하기를 바란다. 그는 자신의 선수 경력을 자랑스러워할 자격이 있다"

볼프강 니더바흐(독일 축구 협회 회장) - "발락은 대표팀에서 특별한 선수였을 뿐 아니라 독일 축구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대표팀에서 그는 오랜 기간 환상적인 공헌을 했고,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을 남겨주었다.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의 활약상을 빼놓을 수 없다. 만약 발락이 앞으로도 자신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축구계에 남는다면 정말 멋진 일이 될 것이다"

베르티 포그츠(前 독일 대표팀 감독) - "내 생각에 그는 이제 더이상 자신이 빅 클럽에서 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듯 보인다.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한 건 옳은 선택이다. 난 발락이 감독이나 코치로 독일 축구계에서 활동하길 바란다. 난 그를 신임한다. 그를 잃는다는 건 독일 축구계에 있어 상당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거대한 일들을 해냈다"

토어스텐 핑크(함부르크 감독) - "그는 위대한 선수이자 수년 간 독일 축구를 지배하던 선수였다. 아쉬운 일이지만, 그는 위대한 선수 경력을 가지고 있고, 이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만 하다"

헤 리버트 브루흐하겐(프랑크푸르트 CE0) - "그는 위대한 선수이자 분데스리가가 배출한 최고의 미드필더였다. 대표팀에서도 그는 위대한 선수였다. 하지만 이제 그는 선수 생활을 끝낼 시점이다. 이제 그는 축구 경력의 제 2막을 시작할 것이다"

한스 요아힘 바츠케(도르트문트 구단주) - "그는 독일 축구가 배출한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이다. 난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올 라프 마샬(前 독일 대표팀 선수) - "발락은 대표팀 주장이었을 뿐 아니라 많은 업적을 성취한 남다른 경력을 가진 선수였다. 만약 그가 몇년 더 선수 생활을 지속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다른 측면에서 생각하자면 이젠 은퇴할 시기기도 하다. 우리는 과거 선수로 함께 뛰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도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한다"


# 발락의 우승 커리어

분데스리가 4회(97/98, 02/03, 04/05, 05/06)
DFB 포칼 3회(02/03, 04/05, 05/06)
DFB 리가 포칼 1회(2004)
프리미어 리그 1회(09/10)
FA컵 3회(06/07, 08/09, 09/10)
칼링컵 1회(06/07)
커뮤니티 실드 1회(2009)


# 발락의 준우승 커리어

분데스리가 3회(99/00, 01/02, 03/04)
챔피언스 리그 2회(01/02, 07/08)
DFB 포칼 1회(01/02)
프리미어 리그 2회(06/07, 07/08)
칼링컵 1회(07/08)
커뮤니티 실드 1회(2007)
월드컵 1회(2002)
EURO 1회(2008)


# 독일 올해의 선수상 최다 수상 기록

프란츠 베켄바워 - 4회(1966, 1968, 1974, 1976)
미하엘 발락 - 3회(2002, 2003, 2005)
제프 마이어 - 3회(1975, 1977, 1978)
게르트 뮐러 - 2회(1967, 1969)
귄터 네처 - 2회(1972, 1973)
우베 젤러 - 2회(1960, 1964)
베르티 포그츠 - 2회(1971, 1979)
위르겐 클린스만 - 2회(1988, 1994)
로타르 마테우스 - 2회(1990, 1999)
마티아스 잠머 - 2회(1995, 1996)
토마스 해슬러 - 2회(1989, 1992)
하랄드 슈마허 - 2회(1984,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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