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mbnail 안녕하세요,

[골닷컴 영국] 벤 마블리, 편집 김영범 기자 = 힐스보로 참사의 원인은 마가렛 대처 수상의 고압적인 경제 정책으로부터 파생된 훌리거니즘과 국민의 안전을 등한시한 정부 관계자들의 무지 때문에 발생했다.

프리미어 리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리그 중 하나로 성장했다. 잉글랜드 구단들은 올드 트래포드와 안필드 등 유서 깊은 구장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처럼 최신식 경기장도 세워졌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스타디움들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20세기 말 한 비극적인 사건이 계기가 됐다.

지난 1989년 4월 15일, 리버풀과 노팅엄 포레스트 간의 FA컵 준결승전에서 힐스보로 스타디움(셰필드 웬즈데이의 경기장)의 레핑스 레인 테라스가 무너지며 96명의 리버풀 서포터들이 사망했다. 이 경기장은 당시 어떠한 안전 검침도 받지 않았었으며, 팬들을 여러 차례에 걸쳐 정부 관계자들에게 사고 가능성을 경고했었지만 이는 모두 무시당했었다. 참사 이후 이어진 수사에서 재판관은 사건의 원인이 경찰들이 관중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판결을 내렸고 1994년 8월까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경기장들의 모든 관중석을 좌석으로 개편하도록 명령했다.

이 판결은 결국 힐스보로 참사의 원인이 난동을 부린 리버풀 팬들에게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이었고 희생자들의 유족들은 끊임없이 사건의 재수사를 요구했지만, 당시 대법원장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재판에 대한 기록의 대부분을 공개하지 않았다. 결국 지난 2009년 '힐스보로 독립 패널'이라는 단체가 발족하면서 이 참사의 전말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단체는 전권을 위임받아 힐스보로 참사와 관련 있는 모든 기록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힐스보로 독립 패널'은 당시 경찰의 대응과 응급 처치가 빨랐더라면 최대 41명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었다는 점을 밝혀냈고, 경찰들이 책임을 면하기 위해 사망자들의 혈중 알코올 농도와 범죄 이력을 확인하는 데만 집중했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경찰과 지역 국회의원이었던 어빈 패트닉은 언론을 상대로 거짓말을 일삼았고 '더 선'은 이를 인용해 지금까지도 리버풀 팬들의 치를 떨리게 하는 '진실(The Truth)'이라는 헤드라인을 1면에 게재했다.

힐스보로 참사는 단순한 사고를 넘어서 정치-사회학적으로 매우 복잡한 사건이었다. 당시 축구 팬들(특히 리버풀 팬들)은 희생양으로 삼기에 매우 쉬운 사람들이었다. 영국 보수당 출신의 마가렛 대처 수상은 영국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자 단체들과 대립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노동자들은 급격한 산업화와 현대화로 인해 일자리를 잃었고 세금 또한 급증하면서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고 말았다. 특히 리버풀에서는 1981년 정부에 불만을 품은 서민 계급이 폭동을 일으킨 바 있다. 지난해 영국 정부는 1981년 재무장관이었던 제프리 호위가 정부에게 리버풀에서 아예 손을 떼고 그들이 서서히 몰락하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한 기록을 공개하기까지 했다.

축구는 노동자 계급의 전유물과도 같았다. 특히 이들은 입석 자리였던 테라스에서 평상시 쌓였던 울분과 분노를 표출하곤 했다. 결과적으로 훌리거니즘이 파생됐고, 훌리건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시기가 지난 1980년대였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1985년 헤이젤에서는 리버풀 팬들과 유벤투스 팬들이 충돌을 하면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 영국 정부도 훌리건들을 막기 위해 축구에 직접 개입을 할 수밖에 없었고, 대처 수상은 노동자 계급을 대하듯 축구 팬들을 상대로도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이때 대처가 훌리거니즘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우리는 알 수 있는 사례가 있다. 대처는 잉글랜드 축구 협회(FA)에 '당신'들 훌리건을 막기 위해 어떠한 계획을 갖고 있는지 물어봤고, FA의 수장이었던 테드 크로커는 "이 사람들은 사회의 문제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만들어낸 훌리건이 우리 스포츠에 유입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대처 정부는 자신들의 강압적인 방식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많은 병폐를 양산하고 있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사실 훌리거니즘도 결과적으로는 대처 정부 정책의 결과물 중 하나였다.

대처는 끊임 없는 대결 구도를 이어갔고 그들은 1985년 여름 축구 팬들을 보호하기 보다는 어떻게 격리 시켜야 하는지 고심을 이어갔다. 심지어 정부는 경기장에 철제 펜스를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했었다. 헤이젤 참사가 일어나기 18일 전 브래드포드 시티 경기장에서는 화재가 발생했었고, 만약 철제 펜스가 도입됐었다면 희생자의 숫자는 수 천명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자신들의 정책적인 착오는 모두 가린 채 모든 잘못을 팬들과 국민에게로 떠넘기기에 바빴다.

축구는 이제 세계적인 스포츠로 발전했다. 이제 축구는 국민을 하나로 모으고 세계 시민들이 교류를 할 수 있는 긍정적인 도구로써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힐스보로 참사가 주는 교훈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절대로 한 계층을 전체 사회에서부터 격리를 시키고 이 과정에서 희생양이 되는 사람도 없어져야 한다.

23년의 세월이 지났고 당시 희생자들은 마침내 스스로의 잘못으로 죽음을 자초했다는 억울한 누명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여전히 잉글랜드 축구와 사회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적어도 축구 팬들 만큼은 안전에 대한 걱정 없이 경기장을 방문해 축구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자국민의 안전을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의 최우선 목표이자 의무가 되어야 한다.

스마트폰에서는 골닷컴 모바일 페이지에 접속해 실시간으로 최신 소식을 확인하세요!

[GOAL.com 인기뉴스]

[웹툰] 레알 마드리드가 부진한 이유
[웹툰] 로스타임: Team or Eleven
무리뉴 "맨시티, 곧 챔스 우승할 것"
투레 "맨시티, 레알 꺾을 준비 됐어"
세스크 "아스널, 우승할 수 있을 것"

- ⓒ 세계인의 네트워크 골닷컴 (http://www.goal.com/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늘의 설문

실망스런 시즌 출발을 알리고 있는 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