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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닷컴] 정재훈 기자 = 이제야 몸에 맞는 옷을 입었다. 지난 1년 6개월 동안 마치 남의 옷을 빌려입은듯 불편해 보였다. 최강희 전북 감독 얘기다.

'봉동 이장' 최강희 감독이 다시 전주성으로 돌아왔다. 최강희 감독은 위기를 맞았던 태극호의 선장이 되어 대한민국의 월드컵 8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업적을 이뤄냈다. 물론 경기 내용이 좋지 않았기에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역사는 최강희 감독이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일궈낸 9번째 감독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최강희 감독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차라리 잘됐다. 최강희 감독은 멋들어진 정장보다는 조금은 촌스러운 밀짚모자가 더 잘 어울리니 말이다.

최강희 전북 감독은 오는 30일 K리그 클래식 15라운드 경남 FC와의 홈경기를 통해 본격적으로 팬들 앞에 나선다. 계약 기간은 2016년 12월까지다. 화려한 멤버를 자랑하는 데 반해 기대에 못 미치는 경기력으로 7위에 머무르고 있는 전북은 최강희 감독의 복귀로 반등의 기회를 잡았다.

만년 중위권이던 전북을 우승 후보로  

비록 국가대표팀 수장으로서 전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실패했지만, 전주에서만큼은 알렉스 퍼거슨이 부럽지 않은 최강희 감독이다. 2005년 전북의 지휘봉을 잡은 최강희 감독은 중위권에 머물던 팀을 K리그 클래식 최고의 팀으로 올려놨다.

최강희 감독은 전북을 2005년 FA컵 우승으로 이끌었고, 2006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당시 수많은 명승부를 연출하며 '역전의 명수'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 또한, 2009년과 2011년에는 K리그 클래식(당시 K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승부차기 끝에 알 사드에 패해 2관왕을 놓친 것은 아직도 아쉬움이 남는다.

K리그 출범 30년 동안 1990년대 초중반과 2000년대 초반의 성남 일화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의 수원 그리고 2000년대 중후반의 전북을 최고의 팀으로 꼽을 수 있다. 최강희 감독은 짧은 기간 동안 중위권이던 전북을 당대 최고의 팀으로 탈바꿈시켰다.

다시 한 번 '닥공'의 매력을 볼 수 있을까

성적도 성적이지만 최강희 감독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바로 확실한 축구 색깔이 있다는 것이다. 전북은 최강희 감독의 지휘 아래 확실한 색깔을 가진 축구팀이 됐다. 앞서 언급했듯이 2006년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전북은 불리한 상황을 뒤집고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저력을 보였다. 특히 당시 '아시아 깡패'로 불리던 이천수의 울산과의 경기는 아직도 회자되는 명승부 중의 명승부였다.

이제는 전북 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닥공'이다. K리그 클래식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북 = 닥공'이라는 공식을 대답하는 데 1초도 걸리지 않는다. 그만큼 팀에 확실한 색깔을 입혔다는 점이 높게 평가받는다.

FC 바르셀로나는 감독이 바뀌어도 팀의 색채는 바뀌지 않는다. 새롭게 선수가 영입되고 기존의 선수들이 팀을 떠나도 그 색깔을 바꿀 수 없다. 물론 틀 안에서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는 하지만 큰 틀만큼은 그대로다. 성적이 떨어지더라도 그 클럽의 정신은 전통을 따랐다.

전북 역시 마찬가지다. 최강희 감독이 국가대표 지휘봉을 잡으며 전북과 잠시 이별했지만, 이흥실 전 감독대행은 전북의 '닥공 정신'을 계승시켜 나갔다. 비록 지난 시즌 우승에 실패했지만, 전북의 공격력은 리그 최고였다. 그리고 팬들은 우승 실패의 아쉬움보다 닥공 시즌2에 대한 만족감이 더 컸다.

아직 전북의 '닥공'을 바르사의 철학과 비교하기에는 그 역사가 짧아 단순비교에는 무리가 있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전북의 축구 스타일을 어느 정도 정착시켰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국가대표 감독은 실패 아닌 실패

대표팀 위기에 대한 해결사로 선임된 배경도 마찬가지였다. 마땅한 대안이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전북에서 보여준 최강희 감독의 능력이라면 대표팀의 구원 투수로서 손색이 없었다. 당시 국민들의 기대도 상당히 컸다.

물론 결과는 알다시피 실패 아닌 실패다. 최강희 감독은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음에도 씁쓸한 퇴장을 했다. 전북에서 보여줬던 인상 깊은 경기력을 대표팀에 입히지 못한 것이다.

소위 말하는 뻥 축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선수 기용에 관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최강희 감독은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한 가지 목표에만 매달렸고 그 목표를 달성했으니 결과적으로 성공이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무언가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전주성의 알렉스 퍼거슨이 돼라

대표팀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고 해서 최강희 감독이 여태껏 쌓아온 업적이 물거품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최강희 감독은 근 10년 동안 K리그 클래식에서 가장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대표적인 감독이다. 비슷한 기간에 그에게 견줄 감독은 세르히오 파리아스 전 포항 감독정도뿐이다.

최강희 감독은 그저 클럽팀 감독에 최적화 되어있을 뿐이다. 과거 최강희 감독은 "나는 대표팀 감독과 맞지 않는다. 나는 매일 선수들의 얼굴을 보고 고민해야 하는 유형이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손꼽히는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감독도 스코틀랜드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퍼거슨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스코틀랜드를 이끌었으나 1무 2패의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실패라는 쓴잔을 마셨다.

하지만 누구도 퍼거슨을 실패한 감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퍼거슨은 이후 맨유를 27년 동안 지휘하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 13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등 총 38개의 우승 트로피를 수집했다. 맨유 하면 퍼거슨이 떠올랐고, 퍼거슨 하면 맨유가 자연스레 그려졌다. 게다가 퍼거슨은 맨유를 넘어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1년 6개월이라는 외도가 있었지만, 최강희의 전북은 퍼거슨의 맨유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 아직 K리그 클래식의 기반과 인기가 프리미어리그와 크게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무리가 있지만, 적어도 최강희의 전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번에 최강희 감독은 2016년 12월까지 계약을 맺었는데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친다면 2005년부터 12년 동안 전북 지휘봉을 잡게 되는 것이다. 1년 6개월의 대표팀 감독 기간을 제외해도 10년이라는 시간을 전주성에서 보낸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성공적인 감독 생활을 통해 감독직을 연장한다면 '최강희 = 전북'이라는 공식은 자연스레 성립된다.

최강희 감독은 이제 대표팀 수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촌스러운 밀짚모자를 쓴 '전주성의 봉동 이장'으로 돌아왔다. 마치 주제 무리뉴 감독이 첼시에 복귀한 것처럼 기대되는 것은 왜일까. 퍼거슨 감독이 맨유의 전설이 된 것처럼 기대되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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