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 출전 못한 비운의 전설들(上)
[김현민] 마침내 아프리카 대륙을 제외한 월드컵 각 지역 예선이 모두 막을 내렸다.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크로아티아, 체코, 터키, 이스라엘, 스웨덴, 그리고 에콰도르 같은 팀들이 고배를 마셨고, 이와 함께 많은 스타 플레이어들이 월드컵 본선 출전에 실패하고 말았다.
2009. 10. 15. 오후 12:49:09
과거에도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라는 명성을 얻으면서도 정작 월드컵 본선엔 단 한 번도 출전하지 못한 비운의 선수들이 다수 있다. '세계인의 축구 네트워크' GOAL.com은 월드컵에 단 한 번도 참가하지 못했던 비운의 축구 선수들을 2부에 걸쳐 소개하도록 하겠다.
# 라이언 긱스
맨유의 살아있는 전설인 긱스는 35살의 노장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클럽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8번의 리그 우승과 2번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비롯해 무수한 우승 트로피를 자랑하고 있지만, 월드컵엔 단 한 번도 출전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잉글랜드 청소년 대표팀에서 활약한 전력이 있는 그를 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의 국적인 잉글랜드가 아닌 어머니의 국적인 웨일스를 선택했다. 그리고 언제나 조국을 향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아직도 잉글랜드 국민들은 '긱스가 잉글랜드를 선택했더라면 잉글랜드의 월드컵 우승도 가능했을텐데...'라며 아쉬워하고 있다.
# 발렌티노 마졸라
'그란데 토리노(Grande Torino: 위대한 토리노)'의 핵심 멤버였던 마졸라는 1940년대에 토리노의 세리에A 5연패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는 1949년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당시 비행기에 탑승했던 토리노 선수들 중 단 한 명의 부상을 제외하곤 전원 사망했다).
1940년대 마졸라를 비롯한 토리노 선수들은 이탈리아 대표팀의 중추를 이루고 있었으나, 그들의 전성기엔 세계 2차 대전으로 인해 월드컵이 12년간 열리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들의 사후에 월드컵이 재개되었다는 사실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게 한다.
# 조지 웨아
아프리카의 전설적인 공격수이자 라이베리아의 영웅 웨아는 1995년 FIFA 올해의 선수상과 발롱 도르, 그리고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상을 동시에 석권했으며, 챔피언스 리그 우승도 차지하는 등 명예를 독차지한 선수이지만 그의 조국 라이베리아가 약소국이었기에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는 조국의 월드컵 진출을 위해 식비와 호텔비도 제공하는 등 헌신을 다했으나 번번히 고배를 마셔야 했다.
# 조지 베스트
벨페스트에서 태어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영원한 등번호 7번 조지 베스트는 1968년 맨유의 유러피언 컵(챔피언스 리그 전신) 우승을 일구었을 뿐 아니라 발롱 도르까지 동시에 석권하며 유럽 최고의 선수로 발돋움했었다.
하지만 클럽에서의 영광에도 불구하고 유럽 무대의 약소국인 북 아일랜드 출신이었기에 아쉽게도 월드컵 무대에선 그의 활약을 볼 수 없었다.

# 아르세니오 에리코
파라과이 출신인 에리코는 파라과이 적십자 소속으로 차코 전쟁(편집자 주: 파라과이와 볼리비아 간의 영토 분쟁 전쟁)을 위한 자금 모집을 위해 아르헨티나 투어를 떠났다가 아르헨티나 클럽들의 눈에 띄게 되었고, 결국 아르헨티나의 명문 인디펜디엔테로 이적하기에 이르렀다.
아르헨티나 국내 리그에서 많은 골을 성공시키며 스타 플레이어로 거듭났던 그는 1938년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승선할 기회가 있었으나 조국 파라과이를 버릴 수 없다며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의 제의를 거절했다. 그는 파라과이 대표팀이 비공식적으로 가진 26경기에 출전해 56골을 성공시켰고, 아직까지도 파라과이 역대 최고의 선수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 던칸 에드워즈
'버스비의 아이들'의 일원인 에드워즈는 1958년 뮌헨 참사로 인해 21살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뮌헨 참사가 있기 전까지 맨유에서 5시즌을 활약하며 2번의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웨인 루니와 티오 월콧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잉글랜드 대표팀 역대 최연소 승선 기록 역시 세운 불세출의 천재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그로 인해 월드컵에 단 한 번도 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만약 그가 생존했었다면,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전세계 축구팬들은 잉글랜드가 낳은 천재 플레이어의 활약을 지켜볼 수 있었을 것이다.

# 파스 윌크스
윌크스는 네덜란드 축구계의 전설로 남아있는 선수로 1940년부터 1964년 사이에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활약했던 축구 초창기 용병 스타 중 하나였다. 그는 네덜란드의 오렌지 유니폼을 입고선 38경기에 출전해 35골을 넣는 경이적인 득점력을 과시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는 1949년부터 1955년 사이에 네덜란드 축구 협회와 마찰을 빚어 대표팀에서 제명됐었고, 결국 그는 선수 경력 내내 단 한 번도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레알 마드리드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디 스테파노는 무려 5번의 유러피언 컵(챔피언스 리그 전신) 우승을 차지했고, 2번의 발롱 도르를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엔 단 한 번도 출전하지 못하는 불운을 감내해야 했다. 그리고 그의 월드컵 불참은 실력 문제가 아닌 아르헨티나 국내 문제 때문이었다는 게 더 아쉬운 일이다.
아르헨티나는 브라질과 함께 1950년 월드컵 유치 신청을 했으나 1938년 월드컵에 불참했다는 사실을 이유로 월드컵 유치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자 분노한 아르헨티나 정부는 1950년 월드컵 불참을 선언했다. 결국 디 스테파노는 아르헨티나 정부의 결정으로 인해 월드컵에 출전할 수 없었다.
월드컵 출전 욕구에 가득찼던 디 스테파노는 1954년 월드컵을 앞두고 콜롬비아 국적으로 옮겨탔으나, 이번엔 FIFA의 반대에 부딪쳐 또 다시 월드컵 출전에 실패하게 됐다.
1956년 스페인 국적을 획득한 디 스테파노는 '무적함대'와 함께 1958년 스웨덴 월드컵과 1962년 칠레 월드컵에 연달아 도전했다. 비록 1958년엔 유럽 지역예선에서 탈락하면서 본선 진출에 실패했으나, 칠레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그는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스페인의 월드컵 본선 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가? 그는 월드컵 본선을 1년 앞둔 상황에서 심각한 부상을 당하며 꿈에도 그리던 월드컵 무대 진출에 실패했고, 결국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 라이언 긱스
맨유의 살아있는 전설인 긱스는 35살의 노장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클럽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8번의 리그 우승과 2번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비롯해 무수한 우승 트로피를 자랑하고 있지만, 월드컵엔 단 한 번도 출전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잉글랜드 청소년 대표팀에서 활약한 전력이 있는 그를 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그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의 국적인 잉글랜드가 아닌 어머니의 국적인 웨일스를 선택했다. 그리고 언제나 조국을 향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아직도 잉글랜드 국민들은 '긱스가 잉글랜드를 선택했더라면 잉글랜드의 월드컵 우승도 가능했을텐데...'라며 아쉬워하고 있다.
# 발렌티노 마졸라
'그란데 토리노(Grande Torino: 위대한 토리노)'의 핵심 멤버였던 마졸라는 1940년대에 토리노의 세리에A 5연패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는 1949년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당시 비행기에 탑승했던 토리노 선수들 중 단 한 명의 부상을 제외하곤 전원 사망했다).
1940년대 마졸라를 비롯한 토리노 선수들은 이탈리아 대표팀의 중추를 이루고 있었으나, 그들의 전성기엔 세계 2차 대전으로 인해 월드컵이 12년간 열리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들의 사후에 월드컵이 재개되었다는 사실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게 한다.
# 조지 웨아
아프리카의 전설적인 공격수이자 라이베리아의 영웅 웨아는 1995년 FIFA 올해의 선수상과 발롱 도르, 그리고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상을 동시에 석권했으며, 챔피언스 리그 우승도 차지하는 등 명예를 독차지한 선수이지만 그의 조국 라이베리아가 약소국이었기에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는 조국의 월드컵 진출을 위해 식비와 호텔비도 제공하는 등 헌신을 다했으나 번번히 고배를 마셔야 했다.
# 조지 베스트
벨페스트에서 태어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영원한 등번호 7번 조지 베스트는 1968년 맨유의 유러피언 컵(챔피언스 리그 전신) 우승을 일구었을 뿐 아니라 발롱 도르까지 동시에 석권하며 유럽 최고의 선수로 발돋움했었다.
하지만 클럽에서의 영광에도 불구하고 유럽 무대의 약소국인 북 아일랜드 출신이었기에 아쉽게도 월드컵 무대에선 그의 활약을 볼 수 없었다.

# 아르세니오 에리코
파라과이 출신인 에리코는 파라과이 적십자 소속으로 차코 전쟁(편집자 주: 파라과이와 볼리비아 간의 영토 분쟁 전쟁)을 위한 자금 모집을 위해 아르헨티나 투어를 떠났다가 아르헨티나 클럽들의 눈에 띄게 되었고, 결국 아르헨티나의 명문 인디펜디엔테로 이적하기에 이르렀다.
아르헨티나 국내 리그에서 많은 골을 성공시키며 스타 플레이어로 거듭났던 그는 1938년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승선할 기회가 있었으나 조국 파라과이를 버릴 수 없다며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의 제의를 거절했다. 그는 파라과이 대표팀이 비공식적으로 가진 26경기에 출전해 56골을 성공시켰고, 아직까지도 파라과이 역대 최고의 선수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 던칸 에드워즈
'버스비의 아이들'의 일원인 에드워즈는 1958년 뮌헨 참사로 인해 21살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뮌헨 참사가 있기 전까지 맨유에서 5시즌을 활약하며 2번의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웨인 루니와 티오 월콧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잉글랜드 대표팀 역대 최연소 승선 기록 역시 세운 불세출의 천재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그로 인해 월드컵에 단 한 번도 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만약 그가 생존했었다면,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전세계 축구팬들은 잉글랜드가 낳은 천재 플레이어의 활약을 지켜볼 수 있었을 것이다.

# 파스 윌크스
윌크스는 네덜란드 축구계의 전설로 남아있는 선수로 1940년부터 1964년 사이에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활약했던 축구 초창기 용병 스타 중 하나였다. 그는 네덜란드의 오렌지 유니폼을 입고선 38경기에 출전해 35골을 넣는 경이적인 득점력을 과시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는 1949년부터 1955년 사이에 네덜란드 축구 협회와 마찰을 빚어 대표팀에서 제명됐었고, 결국 그는 선수 경력 내내 단 한 번도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레알 마드리드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디 스테파노는 무려 5번의 유러피언 컵(챔피언스 리그 전신) 우승을 차지했고, 2번의 발롱 도르를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엔 단 한 번도 출전하지 못하는 불운을 감내해야 했다. 그리고 그의 월드컵 불참은 실력 문제가 아닌 아르헨티나 국내 문제 때문이었다는 게 더 아쉬운 일이다.
아르헨티나는 브라질과 함께 1950년 월드컵 유치 신청을 했으나 1938년 월드컵에 불참했다는 사실을 이유로 월드컵 유치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자 분노한 아르헨티나 정부는 1950년 월드컵 불참을 선언했다. 결국 디 스테파노는 아르헨티나 정부의 결정으로 인해 월드컵에 출전할 수 없었다.
월드컵 출전 욕구에 가득찼던 디 스테파노는 1954년 월드컵을 앞두고 콜롬비아 국적으로 옮겨탔으나, 이번엔 FIFA의 반대에 부딪쳐 또 다시 월드컵 출전에 실패하게 됐다.
1956년 스페인 국적을 획득한 디 스테파노는 '무적함대'와 함께 1958년 스웨덴 월드컵과 1962년 칠레 월드컵에 연달아 도전했다. 비록 1958년엔 유럽 지역예선에서 탈락하면서 본선 진출에 실패했으나, 칠레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그는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스페인의 월드컵 본선 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가? 그는 월드컵 본선을 1년 앞둔 상황에서 심각한 부상을 당하며 꿈에도 그리던 월드컵 무대 진출에 실패했고, 결국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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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민 기자
-축구를 두배로 즐기는 웹툰이 한자리에!(http://goal.com/kr/news/1063/hit-go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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