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Player] 다비드 비야

[김현민] 현재 발렌시아의 에이스 다비드 비야를 놓고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장외 엘 클라시코 전쟁을 펼치고 있다. '대기만성의 표본'이자 '아스투리아스의 아들' 비야에 대한 프로필을 작성해 보겠다. 이적시장에 이슈가 되고 있는 선수들을 선정해 소개하는 [HOT Player]는 매주 월, 수, 금 게재될 예정입니다.

2009. 6. 17. 오후 12:11:55

David Villa - Spain (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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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다비드 비야
클럽: 발렌시아
생년월일: 1981년 12월 3일
키: 175cm
몸무게: 69kg
포지션: 공격수

스페인은 무수한 재능을 배출해낸 국가로 유명하지만, 공격수 포지션만은 예외였다. 전설적인 공격수인 에밀리아노 부트라게뇨와 위대한 바스크인 피치치(프리메라 리가 득점왕 트로피를 피치치로 부르게 된 건 그의 이름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리고 라울을 제외하곤 그리 성공적인 커리어를 밟은 공격수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한 정도이다.

하지만 최근 스페인은 라울 이후 최고의 재능이라고 불리는 '엘 니뇨' 페르난도 토레스를 필두로 다니엘 구이사, 페르난도 요렌테, 알바로 네그레도, 그리고 호세바 요렌테와 같은 공격 재능들이 속속 나오면서 공격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단연 핵심은 바로 다비드 비야이다. EURO 2008 득점왕 출신인 비야는 스페인 대표팀으로 29골을 성공시키며 라울에 이어 역대 2위의 골 기록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스타였던 많은 다른 공격수들과는 달리 철저히 무명에 가까웠던 대기만성의 표본이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

북부 스페인 아스투리아스 주의 한 작은 마을인 투이야에서 1981년 12월 3일에 태어난 그는 가난한 광부의 아들이었다. 다비드 비야의 어린 시절은 말 그대로 시련의 연속이었다. 스페인의 많은 가난한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그에게 있어 유일한 놀이거리는 축구공 하나였고, 그러하기에 그 역시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즐겼다. 그리고 9살의 어린 나이에 지역팀인 랑그레오에 입단하면서 축구선수로서의 꿈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첫번째 시련이 다가왔다. 바로 9살이 되던 해 대퇴부에 복합 골절을 당한 것. 상태가 상당히 심각했기에 그는 자칫 축구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성공적인 수술과 재활 훈련 끝에 다시 그라운드를 밟을 수 있었다.

그리고 5년 뒤,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그는 유스팀 감독으로부터 "재능이 없다. 축구를 그만두는 게 좋을 것이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통고를 받았고, 축구화를 벗을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그에겐 부모님이 있었다. 그의 부모님들은 어린 아들에게 자신을 가지라고 용기를 복돋워주었다.

그는 훗날 이에 대해 회상하면서 "어린 시절의 난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인간이었다. 단돈 10원 하나 없는 무일푼에 시즌 내내 벤치만을 지키고 있었다. 난 단지 친구들과 축구하기만을 간절히 원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를 아버지는 끝까지 믿어주었고, 나를 언제나 응원해주었다"고 술회했다.

이 사건은 어떤 면에선 비야의 발전에 매개체 역할을 했다. 유스팀 감독의 발언에 자극을 받은 그는 빠른 속도로 성장해나갔다.

하지만 17살이 되던 해, 다시 한 번 그에게 시련이 다가왔다. 자신의 주발이기도 한 오른발 부상을 당한 것.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많은 시련에 시달린 비야에게 있어 이 정도 부상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낙심하지 않고 도리어 부상을 기회의 장으로 삼으면서 오른발 치료를 하는 기간동안 왼발 훈련을 반복적으로 수행했다. 결국 그는 능숙한 양발잡이 공격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대기만성의 표본

지속적인 실력 향상으로 인해 이제 비야는 아스투리아 지방에서 주목받는 선수로 떠올랐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로컬에서나 조금 알려진 수준의 선수였고, 아스투리아주 최고 명문인 레알 오비에도는 그를 다소 재능이 부족한 선수로 평가해 그의 영입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결국 그가 선택한 건 레알 오비에도의 라이벌 클럽인 스포르팅 히혼. 히혼은 그의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퀴니' 엔리케 카스트로 곤잘레스가 활약했던 구단이기도 하다. 1968년에 데뷔해 1987년에 은퇴한 퀴니는 무려 5번이나 피치치(프리메라 리가 득점왕)를 수상하며 스포르팅 히혼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기억되고 있는 명공격수이다.

비야는 자신의 우상인 퀴니의 발자취를 따라 차근차근 단계별로 성장해가기 시작했다. 99/00 시즌과 00/01 시즌, 2군팀에서 12골과 13골을 넣으며 잠재력을 보인 그는 성인팀에 데뷔하자마자 첫 시즌에 18골을 넣으며 세군도 리가(2부 리가)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다음 시즌인 02/03 시즌엔 20골 고지를 점령하며 많은 프리메라 리가 팀들의 구애를 받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건 프리메라 리가 승격팀 레알 사라고사였다. 당시 사라고사는 야심찬 선수 영입과 함께 프리메라 리가에서의 성공을 추진하던 클럽이었다.

처음으로 프리메라 리가 무대에 선을 보인 비야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시작으로 1부 리그 데뷔 시즌에 무려 16골을 성공시키며 스타덤에 올랐다. 또한 그는 코파 델 레이(스페인의 FA컵)에서만 4골을 성공시켰고, 그런 그의 활약에 힘입어 승격팀 사라고사는 코파 델 레이 우승과 함께 UEFA컵 진출권을 획득했다.

04/05 시즌, 처음으로 대외컵 대회(UEFA컵)에 발을 내디딘 비야는 국내외를 오가며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시즌 18골과 함께 자신이 반짝 스타가 아님을 입증해냈다.

이제 그는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다. 스페인 대표팀에도 차출되기 시작했고, 많은 명문 클럽들의 러브콜을 얻기에 이르렀다. 결국 그는 2시즌 만에 1200만 유로의 이적료와 함께 발렌시아로 이적했다.

 


박쥐군단의 영원한 에이스

발렌시아 입단 첫 해(05/06 시즌), 그는 프리메라 리가에서만 무려 25골을 성공시키며 1골차로 아쉽게 피치치 수상에 실패했다(바르셀로나의 사무엘 에투가 26골로 피치치 수상).

하지만 이 시즌을 계기로 그는 큰 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하는 선수임을 입증해냈고,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입지를 넓혀 나가기 시작했다. 참고로 발렌시아 선수로서 25호골 고지를 점령한 건 에드문도 수아레스 이래로 60년만에 처음 있는 쾌거이기도 하다.

06/07 시즌에도 그의 활약은 계속됐다. 독일 월드컵과 챔피언스 리그 등을 소화하며 그는 이례적으로 많은 경기를 소화해야 했다. 하지만 체력적인 부담에도 불구하고 그는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소화해냈다. 특히 챔피언스 리그에 첫 선을 보인 그는 10경기에 5골을 성공시키며 전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07/08 시즌, 발렌시아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뽑히는 로날드 쿠먼 체제가 들어서면서 비야는 급격히 부진에 빠지기 시작했다. 전반기 그는 프리메라 리가에서 단 4골만을 기록할 정도로 극심한 침체기를 맛봐야 했다. 하지만 2월 들어서면서 다시 득점 감각을 되찾았고, 쿠먼이 경질된 이후 5경기에서 6골을 넣으며 강등 위기에 빠져있던 팀을 구해냈다.

다행히 팀은 잔류에 성공했지만, 발렌시아 정도 되는 팀이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하지 못한다는 건 크나큰 타격이었다. 게다가 발렌시아는 만성적인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많은 언론들은 2008년 여름, 비야가 발렌시아를 떠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비야는 발렌시아를 향한 절대적인 애정과 충성심을 표했고, 발렌시아 잔류를 선택하면서 그는 단순한 에이스를 넘어 박쥐 군단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08/09 시즌은 그에게 있어 최고의 시즌이었다고 할 수 있다. EURO 2008 득점왕을 수상한 그는 리가에서도 연신 득점포를 쏘아올리며 팬들을 흥분시켰다. 비록 디에고 포를란(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사무엘 에투(바르셀로나)에 밀려 득점 3위를 기록했으나, 한 시즌 28골은 개인 통산 한 시즌 최다 골 기록이기도 하다.

 


그의 미래는?

현재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비야를 놓고 장외 엘 클라시코 전쟁을 펼치고 있다.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의 부임과 함께 갈라티코 시즌 2를 개막한 레알은 일찌감치 비야를 영입명단에 올려놓은 채 알바로 네그레도를 미끼로 발렌시아를 유혹하고 있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영입을 시도하다 실패한 바르셀로나 역시 이제 비야로 방향을 선회한 상태이다.

그 외 첼시와 리버풀 역시 그의 뒤를 쫓고 있다. 하지만 비야의 스페인 잔류 의지가 강한만큼 레알과 바르샤 두 구단 중 하나로 결착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아공 컨페더레이션스 컵에 참가하고 있는 비야는 뉴질랜드와의 첫 경기에서 페르난도 토레스와 찰떡 궁합을 과시하며 1골 1도움과 함께 스페인의 33경기 무패 행진을 이끌었다. 월드 레코드는 브라질이 수립한 35경기 무패 행진. 이제 어느덧 가시권에 올라온 셈이다. 또한 비야는 한 골만 더 추가할 경우 라울에 이어 최초로 30호골 고지를 밟는 스페인 선수가 된다.

 


등번호 7번 신드롬

EURO 2008을 앞두고 전임 스페인 대표팀 감독인 루이스 아라고네스가 라울을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하고 비야에게 등번호 7번을 주자 언론들과 스페인 축구팬들은 발칵 뒤집어졌다. 스페인 축구의 상징인 라울을 제외한 사실에 분노한 것.

하지만 비야는 2009년 3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 누구로부터 그 어떤 것도 뺏은 적이 없다. 난 단순히 클럽과 대표팀에서 좋은 경기를 펼쳤을 뿐이고, 이로 인해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난 과거 라울과 대표팀에서 함께 뛰었고, 우리는 좋은 파트너쉽을 보였다. 난 단지 나를 위해 일할 뿐이다. 단지 내 희망은 매 경기 스페인 배지를 가슴에 단 채 할 수 있는 한 많은 골을 넣는 것이다"고 토로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3골을 넣으며 팀내 최다골을 기록했고, EURO 2008에서도 4골을 넣으며 득점왕에 오른 그는 현재까지 스페인 대표팀에서 통산 29골을 기록하며 라울에 이어 역대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비야가 스페인 대표팀 통산 25호골을 기록하자 언론들은 비야가 라울의 기록을 갱신할 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자 그는 이에 대해 "난 이제 막 25골을 넣었을 뿐이다. 하지만 라울은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면서 스페인 대표팀에서 44골을 성공시켰다. 물론 나 역시 오랜 기간 스페인 대표팀에서 활약하면서 라울의 기록에 도전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미래에 다른 젊은 영건들이 내 기록을 깨기 위해 도전장을 내민다면 정말 대단할 것이다"며 포부를 밝혔다.


Did you know?

비야의 애칭인 '엘 구아헤(El Guaje)'는 그의 출생지인 '아스투리아스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참고로 그의 아디다스 축구화의 한 쪽은 스페인 기가, 그리고 다른 쪽은 아스투리아스 기가 붙어있다.

레알 마드리드의 수문장이자 스페인 대표팀 주장이기도 한 이케르 카시야스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비야는 레알과 같은 빅 클럽에서 뛸 자격이 있다"고 하자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신은 발렌시아를 빅클럽이라고 생각하냐?"고 되물은 후 기자가 "빅클럽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하자 "나도 그렇다"고 간단히 답해 발렌시아 팬들을 감동시켰다. (영상 첨부)

또한 그는 바르셀로나 팬이 비야에게 바르셀로나 유니폼에 사인해달라고 요청하자 "미안하지만 난 발렌시아 유니폼에만 사인한다"며 거절한 일화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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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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